도스토옙스키 장편소설 『여주인(Хозяйка)』
러시아 소설가 도스토옙스키(Dostoevski Fedor Mikhailovich. 1821∼1881)의 장편소설로 1847년에 발표되었다.
도스토옙스키 작품의 기조를 이루는 것은 따뜻한 인간애와 신을 향한 반항이었는데 그 심각한 심리적 해부와 서술은 고금을 통하여 그를 따를 사람이 없었다. 사상적으로는 보수적이요, 광의의 범슬랍이즘에 속하는데, 즐겨 대도시의 음침한 뒷골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동시대의 문호 투르게네프가 서구의 문명을 존중한 작가인데 반하여 그는 러시아 사람 특유의 민족성을 깊이 사랑했으며, 좋은 점이나 나쁜 점이나 슬리브혼(魂) 그대로를 체현한 작자였다.
더욱이 그는 종교의 힘이 엄격하였던 중세를 지나 근대문명의 영향을 받아 한없이 복잡해진 러시아의 혼을 그대로 새겨, 높은 슬라브혼을 그려냈다. 그는 끝없이 깊은 넋으로 끝없이 깊은 민족 전체의 마음을 그려낸 작가였다. 또한 그는 동시대의 문호 톨스토이와 아주 대차적인 위치에 서는 작가이다. 즉 톨스토이가 외적 현실이나 생활 사실의 객관적인 묘사를 통하여 존재의 진실을 확증한 데 반하여 도스토예프스키는 생활 사실과 현실의 암흑 속에 숨어있는 진실을 즉각 묘출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그의 문학 세계에서 초기의 실험적 작업으로 평가받는 소설이다. 또한 도스토옙스키 특유의 심리적 탐구와 인간의 고독, 내면의 갈등을 다루는 점에서 그의 후기 작품들로 이어지는 주제적 연결성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기도 하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가난한 젊은 서기관 바슬리 오르딘오를 중심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오르딘오는 병약하고 내성적인 인물로 자신을 세상과 단절시키고 책 속에서만 살아가는 고독한 청년이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이 세를 살던 집에서 쫓겨나고 새로운 거처를 찾기 위해 상트페테르부르크 거리를 방황하다가 우연히 아름다운 여인 카테리나와 그녀의 남편으로 보이는 무르인을 만나게 된다.
오르딘오는 카테리나에게 한눈에 반하게 되고 그녀와 가까워지기 위해 그들이 사는 집으로 들어가 세입자로 머물게 된다. 카테리나의 남편으로 보이는 무르인은 괴기스러운 인물로 부부의 관계는 매우 복잡하고 비밀스러워 보인다. 카테리나는 남편의 강력한 통제 아래 살아가며 자신의 운명에 대해 무력감을 느끼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무르인은 아내를 강하게 억압하고 있으며 오르딘오는 카테리나를 이 억압에서 해방시키고자 마음 먹는다. 하지만 카테리나는 남편에 벗어나려는 듯 보이면서도 오르딘오의 도움을 명확히 원하지 않는 모호한 태도를 취한다.
오르딘오는 카테리나를 구하기 위해 그녀의 남편과 맞설 계획을 세우다가 상황을 잘못 이해했을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낀다. 그는 카테리나 부부의 관계가 단순한 억압과 착취의 관계가 아니라 보다 복잡한 정서적 얽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로 인해 오르딘오는 자신이 무엇 때문에 싸워야 하는지, 자신의 감정이 진정한 사랑인지 혼란에 빠진다.
이후 오르딘오는 무르인과 충돌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무르인의 진정한 성격과 의도를 알게 된다(무르인은 카테리나에 대한 강한 집착과 소유욕을 가지고 있어서 카테리나를 자신만의 세계에 묶어두고 그녀의 자유를 제한한다. 이는 그의 행동의 근본적인 동기가 사랑이나 헌신이라기보다는 지배와 통제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카테리나는 더욱 모호한 태도를 취한다. 오르딘오는 자신이 그녀를 구해야 하는지 아니면 이 상황에서 빠져나와야 하는지를 고민하며 극도의 갈등을 겪는다. 그 과정에서 그의 사랑은 점차 집착으로 변해가고 카테리나에 대한 그의 이해는 더욱 왜곡된다.
결국, 오르딘오는 자신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음을 깨닫는다. 그는 카테리나의 내면적 고통과 상처를 해결해 줄 수 없음을 인정한다. 소설은 오르딘오가 다시 혼자 남아 고독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순간에서 끝난다.
『여주인』은 도스토옙스키 초기 작품 중 하나로 후속작들에서 나타날 작중 인물의 심리와 복잡한 내면을 다루고 있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도스토옙스키가 후에 본격적으로 다루게 될 구원의 문제, 정신적 고통, 사랑과 집착의 주제가 두드러진다.
주인공 오르딘오는 도스토옙스키 작품의 다른 주인공들처럼 고독하고 사회에서 소외된 인물이다. 오르딘오는 고독한 인물이어서 카테리나를 통해 그의 외로움이 채워지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가 바라는 둘의 관계는 오히려 그를 더 깊은 혼란과 절망으로 이끈다. 오르딘오는 카테리나를 구원하고자 하지만 그녀는 그에게 구원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큰 갈등을 야기하는 존재이다. 이는 도스토옙스키가 후속 작품들에서 탐구하게 될 인간의 구원과 관련된 도덕적, 심리적 갈등을 미리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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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핵심은 오르딘오의 심리적 갈등과 집착이다. 그는 카테리나에게서 자신의 외로움과 내면의 공허함을 치유받으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이후 그는 점차 그녀에게 집착하게 되고 자신의 감정에 휩싸여 정신적으로 점점 불안정해진다. 도스토옙스키는 오르딘오의 내면 세계를 심층적으로 파헤치며 독자에게 인간의 복잡한 심리와 사랑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여주인』은 도스토옙스키의 후기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주제나 심리 묘사의 깊이가 덜할 수 있지만 그의 주요 문학적 테마의 바탕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다. 인간의 고통, 내면의 갈등, 구원에 대한 문제는 도스토옙스키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주요 주제들이며 이 소설은 그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미리 제시하는 작품이다. 단편소설 『여주인』은 비록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주인공 오르딘오를 통해 인간의 내면적 고뇌와 관계의 복잡성을 보여주는 도스토옙스키 특유의 문학적 성향이 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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