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뵐 장편소설 『열차는 정확했다(Der Zug war pünktlich)』
독일 소설가 하인리히 뵐(Heinrich Theodor Böll, 1917~1985)의 첫 장편소설로 1949년 발표되었다. 번역자에 따라 <기차는 제시간에 왔다>, <열차는 정시에 출발했다> 등으로도 번역되었다. 이 소설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배경으로 전쟁의 부조리와 인간의 고통을 섬세하게 묘사한 전후 독일 문학의 중요한 작품 중 하나이다. 뵐은 이 작품을 통해 전쟁의 무의미함과 폭력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절망적인 모습을 그렸다.
독일 군인 안드레아스가 폴란드 전선으로 향하는 기차에 타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이후 폴란드에 도착한 그는 불길한 예감대로 결국 죽음을 맞이하고야 만다는 줄거리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젊은 독일 병사 안드레아스는 휴가를 마치고 동부 전선으로 복귀하기 위해 기차에 올라탄다. 기차가 출발할 때 울려 퍼지는 “발차!”라는 목소리를 들은 순간, 그는 알 수 없는 불안과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다. 이 소리를 듣고 그는 마치 전쟁의 시작이자 자신의 불행한 운명의 출발점인 것처럼 느끼며, 이 불안은 곧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환상으로 이어진다.
기차 안에서 안드레아스는 두 명의 동료 병사인 빌리와 지벤탈을 만난다. 그들과 함께 짧은 대화를 나누며 전선으로 돌아가는 불안감과 절망을 공유한다. 세 사람은 목적지로 가는 도중 잠시 폴란드의 한 유곽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이들은 현실의 무게와 전쟁의 참혹함에서 잠시나마 벗어나려는 마음으로 술과 여흥을 즐기기 위해서이다.
유곽에서 안드레아스는 폴란드 여인 올리나를 만난다. 그녀는 그와 같은 나이의 젊은 여성으로, 전쟁 속에서 삶을 빼앗긴 희생자이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국적과 적국이라는 사실을 잊은 채 유대감을 느끼며 전쟁의 고통 속에서 위안을 얻는다. 이 짧은 만남을 통해 안드레아스는 자신이 사랑과 연민을 느낄 수 있는 평범한 인간임을 깨닫는다.
올리나는 안드레아스를 전선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독일 장교의 차를 이용해 그를 탈출시키기로 한다. 그녀는 안드레아스에게 "내가 인도하는 곳에는 삶이 있다"라고 말하며 희망을 주려 하지만, 안드레아스는 여전히 자신이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예감에 휩싸인다. 두 사람이 타고 있던 차가 예상치 못한 사고로 폭파되며, 안 드레아스는 자신의 불안했던 예감이 사실로 드러나는 순간을 맞이한다.
전쟁과 죽음의 어둠 속에서 잠깐의 희망과 인간적인 교감을 느꼈지만, 그는 끝내 전쟁의 비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삶을 마감한다. 안드레아스의 죽음은 전쟁이 인간에게 남긴 고통과 희생의 상징이 되며, 그의 여정은 비극적인 결말로 마무리된다.
이 작품은 독일 전후문학의 대표 작가이자 1972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하인리히 뵐의 데뷔작이다. 뵐은 치열한 전투 장면 대신 전쟁이라는 커다란 소용돌이에 휘말린 병사들의 무기력과 공포, 불안을 그리는 데 주력한다. 주인공 안드레아스는 휴가를 마치고 동부 전선으로 돌아가는 열차 안에서 강렬한 죽음의 예감에 휩싸이고 열차는 그저 전장을 향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안드레아스의 죽음으로 소설은 끝나지만, 그의 죽음을 통해 뵐은 전쟁이 어떻게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의미를 파괴하는지를 보여준다. 소설은 그의 죽음이 전쟁의 무자비함과 무의미함을 상징하는 동시에, 전쟁이 개인의 삶과 꿈을 얼마나 잔인하게 짓밟는지를 서술한다. 뵐은 이 작품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을 비판하고, 전후 독일 사회에 인간의 존엄성과 평화에 대한 고민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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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는 정확했다』는 제목에서부터 나타나듯, 전쟁 속에서 인간의 죽음이 마치 예정된 운명처럼 '정확하게' 찾아온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전쟁이 개인의 의지나 감정과는 무관하게 거대한 시스템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행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작가는 전쟁 속에 놓인 개인의 고통과 불안, 무기력함을 탁월하게 그려내었다. 또한 이 작품을 통해 전쟁의 폭력성과 무의미함을 강하게 비판한다.
뵐은 직접 전쟁을 겪었고 그곳에서 살아 돌아왔다. 그는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한 것을 작품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하고자 했다. 뵐은 “군인보다 더 무의미하고 권태로운 존재는 없고, 전쟁이란 지루한 기계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진정성 있는 목소리로, 그가 “히틀러를 위해 죽을 수는 없었던” 것처럼 “어떤 인간도 아무 의미 없는 승리를 위해 죽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때 전쟁에 휘말려 어이없게 사라져야 했던 인간이 있다. 그들이 바란 것은 전쟁에서의 승리가 아니다. 삶이다.
뵐은 전후 독일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전쟁에 대한 혐오와 인간적 고뇌는 그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난다. 『열차는 정확했다』는 전후 독일 문학에서 전쟁과 인간의 관계를 깊이 있게 다룬 초기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이후 뵐의 작가적 세계관과 문학적 주제의 토대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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