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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조선시대 노래 모음집 『청구영언(靑丘永言)』

by 언덕에서 2024. 10. 11.

 

 

조선시대 노래 모음집 『청구영언(靑丘永言)』

 

조선 영조 때의 가인(歌人) 남파(南坡) 김천택(金天澤, 1680년대 말(추정) ~ 미상)이 편찬한 가집(歌集)으로 필사본(1권 1책)으로 전한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가집(歌集) 중에서 편찬 연대가 가장 오래되었으며 방대한 것으로 <해동가요(海東歌謠)> <가곡원류(歌曲源流)>와 아울러 3대 가집(歌集)으로 꼽히는 책이다.

 이 책의 제1차 초고가 완성되었을 때는 1727년(영조 3), 제1차 수보(修補) 완료는 1728년, 제2차 수보를 마친 때가 1732년으로서, 이때에는 상당한 시조가 증보된 듯하므로 실제 완성된 시기를 1728년으로 본다. 고려 말엽부터 편찬 당시까지의 여러 사람의 시조를 모아 1728년(영조 4)에 엮은 고시조집이다. ‘청구’는 본래 우리나라를 뜻하는 말이고, ‘영언’은 노래를 뜻한다(歌永言).

 ● 가람본 Ⅰ·Ⅱ는 이병기(李秉岐)가 소장하다가 가람문고에 소장된 이본들로, 가람본 Ⅱ의 제목은 ‘청구영언(靑丘詠言)’이다.

 ● 연민본(淵民本)은 이가원(李家源)이 소장한 이본으로, 이한진(李漢鎭)이 1815년(순조 15)에 자필로 쓴 책이다. 

 ● 육당본(六堂本)은 육당 최남선(崔南善)이 소장하였다가, 6ㆍ25 때 소실되었다.

 ● 「송곡편가집(松谷編歌集)」은 김득신(金得臣)의 서문에 ‘가집편기(歌集編記)’가 나오므로, 그 책을 가칭(假稱)한 이본의 명칭이다.

 

 

『청구영언』은 책 제목이 같지만, 제각기 특색을 지니며 내용도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원전으로 추정되는 진본에 수록된 작품 수는 580수이다. 편성내용은 본 내용을 중심으로 앞에는 정윤경(鄭潤卿)의 서문과 뒤에는 김천택 자신의 자서와 마악노초(磨嶽老樵)의 발문으로 되어 있고, 본편은 13항으로 나누어져 있다.

 첫 번째 항은 초중대엽(初中大葉)ㆍ이중대엽(二中大葉)ㆍ삼중대엽(三中大葉)ㆍ북전(北殿)ㆍ이북전(二北殿)ㆍ초삭대엽(初數大葉)ㆍ이삭대엽(二數大葉: 원문에는 없으나, 빠진 것으로 생각하여 보충함) 등의 곡목 다음에 각각 한 작품씩을 수록한 부분이다.

 두 번째 항은 ‘여말(麗末)’이라는 제목 아래 고려말 작품 6수를 싣고 있다. 세 번째 항은 ‘본조(本朝)’로 조선조에 41명이 쓴 작품 203수를 수록하고 있다.

 네 번째 항은 ‘열성어제(列聖御製)’로 세 왕의 작품 5수를 싣고 있다.

 다섯 번째 항은 ‘여항육인(閭巷六人)’으로 6명의 작품 65수를 수록하고 있다.

 여섯 번째 항은 ‘규수삼인(閨秀三人)’으로 3명의 작품 5수를 싣고 있다.

 일곱 번째 항은 ‘연대결고(年代缺考)’로 3명의 작품 3수를 싣고 있다.

 여덟 번째 항은 ‘무명씨(無名氏)’라는 제목으로 104수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아홉 번째 항의 제목은 ‘삼삭대엽(三數大葉)’으로 55수를 싣고 있다.

 열 번째 항은 ‘낙시조(樂時調)’로 작품 10수를 수록하고 있다.

 열한 번째 항은 ‘장진주(將進酒)’ 1수이며,

 열두 번째 항은 ‘맹상군가(孟嘗君歌)’ 1수이다.

 마지막 항은 ‘만횡청류(蔓橫淸類)’라는 제목 아래 작품 116수를 싣고 있다.

  이들 각 항목에서 작품을 배열한 기준은 작가의 연대와 신분, 작품의 내용, 곡목 등이다. 작가는 먼저 호(號), 다음에 성명을 쓰고, 끝으로 경력을 작은 글씨의 주(註)로 달고 있다.

 

『청구영언』은 다음과 같은 이본(異本)들이 있다.

 (1) 육당 본 : 사학자 최남선(崔南善)본으로 수록 작품은 시조 999수와 가사 16편이다. 25종 곡목(曲目) 해설이 있고, 곡목에 따라 작품을 배열하였다. 1930년 경성제국대학에서 간행한 바 있어 대학본(大學本)이라는 별칭이 있고, 39년에 조선문고본으로 간행되었으며 46년에 신문고본으로 간행된 통문관본(通文館本) 등이 있다.

 (2) 오씨 본 : 월북시인 오장환(吳章煥)본으로 수록된 시조는 580수이다. 정윤경이 쓴 서문에서 김천택이 이 가집을 편찬하였다고 말하였고, 1728년에 쓴 남파(南坡)의 자서(自序), 27년에 쓴 마악노초(磨嶽老樵) 제(題)가 있어 이 책을 원본으로 추정한다. 10항목의 곡목으로 나누어 지명씨(知名氏) 작품을 연대순으로 배열하고, 이어 실명씨(失名氏)의 작품을 수록하였다. 1948년 조선진서간행회(朝鮮珍書刊行會)에서 간행한 것을 <진본청구영언(珍本靑丘永言)>이라 일컫는다. 1967년 정주동ㆍ유창균의 주석본이 나왔다.

 (3) 이희승 본 : 국문학자 이희승 (李熙昇)본으로 그의 호를 따서 <일석본(一石本)>이라고도 한다. 이 책은 제목만 <청구영언>으로 되어 있을 뿐이고, 수록 내용으로 보아 <가곡원류>의 이본이다.

 (4) 홍씨 본 : 국문학자 홍재휴(洪在烋)본으로 수록된 시조는 310수로서, 6종의 곡목과 해당 작품을 열거하고, 지명씨(知名氏) 작품을 연대순으로 배열한 다음, 실명씨 작품을 실었다.

 (5) 이병기 본 청구영언 : 시조 시인 이병기 (李秉岐)본으로 ‘가람본청구영언’이라고도 한다. 수록된 작품은 시조 596수와 가사 11편이다. 5종 곡목과 시조 17수, 2삭대엽(二數大葉)부터 태종(太宗) 등의 어제(御製) 시조 7수를 비롯한 지명씨의 시조를 연대순으로 싣고 이어 실명씨작(失名氏作)을 실었다.

 (6) 이가원 본 : 국문학자 이가원 (李家源)본으로 <연민본(淵民本)>이라고도 한다. 1815년(순조 15) 이한진의 자필 편저본으로 다른 <청구영언>과는 전혀 별개의 책이라 할 수 있다. 1961년 한국어문학회 자료총간 2집으로 영인되었다.

 (7) 오쿠라본 : 일본 언어학자 오구라 신페이(小倉進平)본으로 현재 일본 도쿄대학에 소장되어 있다.

 

 

 ■ <홍씨 본>은 진본에 비하여 몇 가지 특성을 보인다. 앞에 떨어져 나간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74면인데, 없어진 부분 일부에 가지곡목형용(歌之曲目形容)의 일부를 가지고 있다. 작품분류는 유명씨와 무명씨로 나누고, 그다음에 한산인(閑散人)이라는 난을 두었다. 잡휘란(雜彙欄)에는 무명씨의 작품을 열거하면서, 기류(妓流)의 작품은 모두 무명씨로 처리하고 있다. 삼국시대의 작품까지 등장시키는데, 이는 <가곡원류>와 비슷하다.

 ■ <가람 본 Ⅱ>는 진본에 비하여 가지풍도형용십사조목(歌之風度形容十四條目)과 오음통유(五音統諭)ㆍ태사공예악서(太史公禮樂序)ㆍ소자(邵子)ㆍ역(易)ㆍ사조별형용의태상괘(四條別形容意態象卦)ㆍ장단점수(長短點數)ㆍ장단격법(長短擊法) 등이 첨가되어 있다. 또한, 시조 작품 끝에는 <어부사(漁父詞)> 등의 11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 <연민 본>은 진본에 비하여, 호 위주로 작품 257수를 싣고, 끝에 <속어부사(續漁父詞)>를 수록하고 있다.

 ■ <육당 본>은 진본에 비하여 서문 외에도 <해동가요록> 등을 옮겼다. 더불어 곡목과 작품을 더하여 진본을 증보하고 발전시켰다. 수록 작품은 시조가 999수이며 <상사곡(想思曲)> 등의 가사 16편을 수록하고 있다. 진본의 곡목이 9 곡목인 데 비하여 25 곡목으로 상세하게 나누었고, 곡목 위주로 편찬하였다. 삼국시대의 작가는 한데 묶고, 왕실과 기류를 묶어 놓으나 유명씨와 무명씨를 구분하지 않고 있다. 육당 본은 지금까지 밝혀진 가집 중에서 가장 오래된 현존 시조집으로, 후대 가집의 편찬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 만큼 문학사적인 가치가 크다. 영인본으로는 연민본이 1961년에 한국어문학회(韓國語文學會) 자료총간 제2집으로 나왔다. 또한 육당본은 경성대학(1930)에서 인쇄되고, 다시 조선문고본(1939)ㆍ통문관신문고본(通文館新文庫本, 1946)으로 출판되었다.

 진본은 오한근이 조선진서간행회(朝鮮珍書刊行會)에서 1948년에 간행하였는데, 이 책에는 많은 오식(誤植)이 포함되었음을 필자가 밝혔다. 이에 따라 이 서문과 <송곡편가집>은 깊은 관계에 있으며, 여러 가집을 보완, 윤색한 것이 진본이며 '육당 본'이라는 학설이 나오기도 하였다. 「청구영언」에 대한 연구는 원류에 대한 문제에서부터 재고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사료의 출현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