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우리페데스 희곡 『메데이아(Medeia)』
고대 그리스 비극작가 에우리피데스(Euripides·BC484?∼BC406?)의 비극으로 BC 431년에 첫 상연되었다. 아르고선(Argō船) 선원의 원정에 얽힌 후일담이 소재이나, 작가는 이제까지 무섭고 야만적인 마녀 메데이아의 행위라고 생각되었던 이야기에, 심리적 해석을 가하여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고대 그리스의 가장 지적이고 다층적인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에우리피데스는, 혁신적인 구성으로 관계의 복잡함과 미묘함을 표현하고 인본주의적 사상을 내포하여 근세 유럽의 비극 문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그를 “가장 비극적인 시인”이라고 평했다.
에우리피데스는 고대 아테네 3대 비극 시인 가운데 아이스킬로스와 소포클레스에 뒤이은 마지막 인물이. BC 455년에 처음으로 극을 상연하였고, 소포클레스의 경쟁자로서 아이스켈로스 이후의 아테네 비극의 대작자이었다. 그는 2대 선배와 달리 소크라테스와 같은 새로운 분위기 속에서 자라 소피스트와 이오니아 철학의 영향을 받아 신화ㆍ전설에 대담한 인간 중심의 새로운 해석을 내렸다. 그의 사실주의, 심리 해부, 소피스트적 언사, 역설에 가득한 극은 이전의 여러 작가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인간미가 있다. 극은 대부분이 언제나 그 줄거리를 알리는 프롤로고스(序詞)로 시작되어 데우스ㆍ엑스ㆍ마키나로 끝난다. 그는 BC 408년에 아테네를 버리고 마케도니아 왕궁정(王宮廷)의 객(客)이 되어 별세하였다. 그의 새로운 경향은 종교극으로서 발전한 아테네 비극의 자기 붕괴에의 일보이며, 그의 비극은 신 희극의 영역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90여 개나 되는데, 전존(傳存) 하는 것은 사튀로스(Satyros) 극 <퀴클롭스>와 위작 <레소스(Resos)>뿐이다.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전체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는 「메데이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메데이아가 황금 양털을 구하러 원정을 떠난 남편 이아손이 아니라 이아손과 관계있는 다른 모든 사람들을 죽였을 때, 마법사 메데이아는 죽은 자기 자식들을 품에 안고 아무도 닿을 수 없는 높은 지붕 위에 서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처음에는 충격을 받은 합창단이, 다음에는 메데이아의 남편 이아손이 하늘의 신과 대지의 신에게 그토록 극악무도한 잔학행위를 한 메데이아에게 복수해 달라고 호소한다. 그러나 하늘의 신과 대지의 신은 전혀 메데이아에게 복수하지 않는다. 사실 태양의 신(신화에서는 메데이아의 조상)은 전차 1대를 내려보내 메데이아를 개선장군처럼 아테네의 피난처로 태워다 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결말을 '불합리하다'라고 비난했는데, 그러나 그 불합리하다는 것이야말로 에우리피데스가 말하고자 한 요점이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메데이아는 콜키스왕이자 태양신의 아들인 아이에테스의 딸로, 황금양 신화의 주인공인 프릭소스의 부인 칼키오페와는 배다른 자매지간이며 압시르토스 등을 동생으로 두었다. 태양신 헬리오스의 손녀이며 키르케나 파시파에 등에게는 친조카가 된다.
메데이아는 황금 양피를 찾으러 콜키스에 온 영웅 이아손에게 반하게 되었으며, 이아손을 없애려는 아버지의 의도를 알고는 그들이 황금 양모를 취하게 큰 도움을 주었다. 이후 메데이아는 이아손과 함께 그리스로 도피했는데 자신들을 쫓아오는 아버지에 대항해 동생인 압시르토스를 죽여 콜키스의 배가 시신을 수습하는 동안 먼바다로 도망칠 수 있었다. 이에 신들이 분노하여 항해가 어렵게 되자 메데이아는 고모인 키르케를 찾아 키르케의 도움으로 신들의 노여움을 잠재웠고, 그제야 순조로운 귀향을 할 수 있었다.
한편, 메데이아는 지옥의 여신이자 모든 주술과 마술을 총괄하는 여신 헤카테를 숭배하는 마법사이기도 했다. 메데이아는 황금 양피를 가져오면 왕위를 넘겨주겠다던 펠리아스가 약속을 지키지 않자, 마술로 그를 속여 끓는 솥에 넣어 죽게 했다.
이에 이올코스의 백성들이 분노하자 메데이아와 이아손은 아이들을 데리고 코린토스로 피하였는데, 코린토스 왕 크레온의 배려로 편히 지낼 수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이아손은 마음이 변하여 만족(蠻族) 출신인 아내 메데이아를 점차 싫어하고 이후 코린토스의 공주 글라우케와 결혼한다. 이에 분노한 메데이아는 마법을 건 옷을 공주에게 보내 글라우케와 크레온을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이아손과 관계하여 낳은 자신의 아이들 또한 죽게 했다.
그 후, 메데이아는 할아버지인 태양신이 보내준 마차를 타고 그녀에게 거처를 제공한 아이게우스가 다스리는 아테네로 홀연히 가버린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메데이아는 비극적 운명을 맞는 악녀로 널리 알려졌다. 그녀의 이야기는 세네카, 그릴파르처, 들라크루아 등 다양한 인물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그중에서도 메데이아를 가장 잘 나타낸 인물은 그리스의 대표적 극작가 에우리피데스다. 이 작품은 기원전 431년에 상연된 그의 작품은 잔인한 여인 메데이아의 비참한 운명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걸작이다.
작가는 이제까지 무섭고 야만적인 마녀 메데이아의 잔혹한 행위라고 생각되었던 이야기에, 심리적 해석을 가하여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으며, 여자의 심리를 동정의 눈으로 묘사하였다. 극의 중심은 메데이아이며, 이아손은 금전과 권력에 눈이 어두운 파렴치하고 비열한 자에 지나지 않는다. 이 극은 에우리피데스의 다른 작품에 비하여 특히 구성이 세밀하게 정돈되었다.
이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남편에 대한 복수로 사랑스러운 두 아이를 죽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던 끝에, 드디어 정념(情念)의 힘에 꺾여 죽이기에 이르는 장면의 묘사는 순전히 시인의 창작이라고 하는데, 그로 인해 이 극은 ‘정념의 비극’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인간 내면의 비극적인 갈등을 묘사하는 데에 뜻을 둔 이 시인에게 어울리는 대표적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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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데이아」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일어나 그리스 전역에 전쟁의 먹구름이 드리우던 기원전 431년에 상연된 작품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폭력성과 그로 인한 공포가 이 작품에 드러나고 있음은 우연이 아니다. 이 비극의 중심 갈등은 이방인에다 콜키스 출신의 공주 메데이아와 그녀의 남편 이아손의 갈등이며, 새장가를 들어 메데이아를 배반한 이아손에 대한 메데이아의 복수가 중심 내용이다.
메데이아는 아버지를 배반하고 동생을 죽이면서까지 순정을 바쳐서 이아손을 도왔던 장본인이다. 또한 이아손과의 사랑에 눈이 멀어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정열적인 여인이다. 그러나 메데이아는 사랑을 배신한 이아손에게 복수하기 위해 신부인 공주와 그 아버지 크레온 왕을 죽이고, 이도 모자라 자신의 자식들까지 죽인다. 그 잔인성과 폭력성에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하는 여성이 메데이아다.
에우리피데스는 전반부에서 메데이아를 동정적인 인물로 재현한다. 그러나 극이 진행될수록 전반부에서 보여 준 메데이아에 대한 동정은 점차 사라져 버린다. 메데이아의 격정과 격렬한 분노는 도를 넘어 너무나 지나친 면모를 드러내고, 자식을 살해하는 메데이아의 행동에서 그 폭력성은 극대화된다. 메데이아가 자행하는 폭력은 '피압제자에게서 나오는 형언할 수 없이 무도한 폭력'이다.
이 작품은 이아손과 메데이아 가족의 혼란뿐이 아니라 우주의 혼란을 극화한 작품이다. 에우리피데스는 깨어진 도덕적 질서가 회복되지 않은 상태로 비극「메데이아」를 끝맺음으로써, 인간의 도덕이나 법칙에 무심한 신들의 세계와 배신과 분노가 극단적인 폭력으로 이어지는 어두운 인간 세상을 냉정하게 비추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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