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진 단편소설 『열린 사회와 그 적들』
김소진(金昭晋. 1963~1997)의 단편소설로 1993년 발표한 단편집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의 표제작이다. 1991년 가난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배경으로 한 <쥐잡기>가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문단에 데뷔한 김소진은 이후 [민족문학작가회의]에 가입하여 활동하였고 1993년 단편들을 묶은 첫 창작집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발표하였다. 34세로 짧은 생애를 마치기까지 약 6년 동안 장편과 단편소설, 동화, 콩트 등 여덟 권의 책을 썼다. 1996년 문화의 날에 제4회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하였다.
카를 포퍼의 철학책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책을 제목으로 한 이 소설은 자유 투쟁을 위해 민주화운동을 하는 '학생들'이라는 소수 집단과 왼쪽 손목이 절단된 노동자 강 씨와 자신을 예술인으로 여기는 블루스 박이라는, 산업재해 보상을 위한 투쟁을 벌이는 '노동자' 소수 집단이 나온다. 의미심장한 것은 민주화운동을 하는 학생 집단이, 이 노동자 집단을 멸시한다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일반 시민들이 그 노동자들 옆에 선 학생 시위단까지 비정상으로 낙인찍기 때문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990년 민주화 시위 도중에 대학생 김귀정이 사망하자 그의 시신이 안치된 병원에 시민 단체 사람들과 대학생들로 구성된 대책위, 밥풀때기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모인다.
밤무대 연주자이지만 실제로는 시장에서 즉석 투전판을 벌이며 사는 박상선, 공장에서 일하다가 한쪽 손목이 잘렸으나 보상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아내까지 도망가 버린 강종천, 고물 장수로 밥풀때기의 대표격인 전을룡 등 자기 노동력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민중들이 바로 밥풀때기로, 이들은 과격한 행동으로 대책위 사람들과 대립한다.
이성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민주화 시위하려고 하는 대책위 사람들은 밥풀때기들이 폭력적인 방법도 불사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병원을 떠나 주기를 요구한다.
다음 날 박상선이 실족사한 상태로 발견된다.
카를 포퍼의 유명한 저서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제목을 따온 이 소설은 1990년대 한 시위 현장에서 밥풀때기라 불리는 부랑자 집단과 대책반 사람들의 대립을 보여 주고 있다. 이성과 합리로 무장한 대책반 사람들과 단순하고 무식하며 과격하기까지 한 밥풀때기 간의 대립을 작가는 담담하고 객관적으로 보여준다. 독자들은 쉽게 이들의 행동을 용인하기 어렵지만, 각자가 간직한 가슴 아픈 과거가 언뜻언뜻 보이면서, 그 누구도 적일 수 없는 현실이 드러난다. 그러나 '열린 사회'에서 밥풀때기들은 '적'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으며, 이 중 한 명인 상선이 죽음으로써 비극적 결말을 암시하고 있다.
♣
열린 사회라 함은 유토피아적이고 유토피아는 없는 것, 오지 않는 것. 그곳에 속한 사람들은 학생도, 노동자도, 시민도 아무도 없다. 우리 모두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적'이다.
자신을 예술가로 칭한 블루스 박은 "별이 빛나는 총총한 밤"에 별을 센다. 이는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 에 나오는 예의 그 아름다운 서문을 떠올리게 한다. 역시 '재현'과 '(사회)리얼리즘'은 김소진의 문학적 자의식으로 보였고, 아름다운 토속어, 사투리, 우리말의 적재적소 사용은 그 언어예술의 극단에 다름 아니다.
결말 부, 블루스 박의 실족사(자살로 보이는)를 발견한 사람은 성균관대 학생이다. 익명, 주거 불명으로 처리된 블루스 박과 달리 말이다. 그 학생은 이십 대일 것이고, 1991년에 발표된 이 소설, 30년이 지난 지금 그는 50대 혹은 60대가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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