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영 장편소설 『변방에 우짖는 새』
현기영(玄基榮. 1941∼) 장편소설로 1981년부터 1982년까지 월간잡지 [마당]에 연재되었다. 제주도의 민란을 중심 소재로 다룬 내용으로 1983년 [창작과 비평사]에서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1987년에는 희곡으로 각색되어 극단 [연우무대]에서 상연된 바 있다.
조선왕조 말기에 제주도에서 3년 간격으로 발생한 방성칠((房星七)의 난(1898)과 이재수(李在守)의 난(1901)을 다룬 역사소설이다. 제주도 출신인 현기영은 당시 제주도에 귀양 온 김윤식(金允植)의 일기 <속음청사(續陰晴史)>를 근본 사료로 삼고 천주교 측의 자료와 제주 촌로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소설적 상상력을 최대한 배제한 채 이 소설을 집필했다고 한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거납(拒納) 운동으로 시작된 민란이 어째서 반봉건적 의거(義擧)․천주교 박해(迫害)로 발전되었는가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그 성격을 규명하는 데 관심을 쏟고 있다.
이 소설은 전체 17장으로 이루어졌다. 제1장은 제주 백성들의 수난사를 그려내면서 유배문화로 인식되어온 제주도에 대한 통념을 역설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제2장과 제3장은 제주민란의 증인과 운양 일행의 유배 장면을 다루었다. 제4∼7장에서는 남학당(南學黨)이 중심이 되어 시작된 방성칠의 난을 다루었으며, 제8장은 방성칠 난의 후일담을 그렸다. 제9장에서 제16장까지는 이재수의 난을 다루었고, 제17장은 그 후일담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구한말, 명성황후 시해 사건으로 친일파 김윤식이 제주도로 유배 온다. 제주 감옥에서 김윤식은 옛 동지들과 만나 고된 귀양 생활을 하다가, 제주 군수 김희주의 도움으로 출옥하여 좀 더 나은 생활을 하게 된다. 그 사이 대정군의 화전민들은 제주목사 이병휘의 수탈에 저항하며, 방성칠을 장두로 삼아 민란을 일으킨다.
방성칠과 민당은 읍성을 점거하고 목사와 군수를 공격하지만, 내부 분열로 인해 민란은 점차 힘을 잃는다. 운양 김윤식은 제주를 탈출하려 하나, 그 시도는 실패하고 제주 민란은 다시 군수 송대정과 같은 친정부 인사들에 의해 진압된다.
민란이 실패한 후, 미국과 프랑스 선교사들이 제주도에 입도하며 외세의 개입이 강화된다. 새로 부임한 목사 이상규는 무자비한 수탈 정책을 펼치며 지역 주민들을 억압하고, 이에 반발하여 제주도민들은 다시 저항의 움직임을 보인다.
이재수를 중심으로 한 민당은 교인 가족들을 포로로 잡고, 성을 공격하며 대규모 저항을 일으킨다. 성안에서도 반란이 일어나며 민당은 성내에 입성하고 교인들을 색출해 낸다. 하지만 프랑스 군함이 도착해 외세의 무력 개입이 시작되며, 민당의 저항은 더욱 어려워진다.
결국, 프랑스 군대와 조선 관군의 개입으로 민란은 진압된다.이재수와 민란의 지도자들은 체포되어 신식 재판을 받는다. 민란 지도자 중 몇 명은 처형되고 나머지는 징역형에 처해지며 민란은 종결된다.
장편소설『변방에 우짖는 새』는 구한말 제주도 전 도민이 봉기한 최대 민란이었던 방성칠란과 이재수란의 전 과정을 당시 제주도에 유배되어 있던 구한말의 정치가 김윤식의 기록을 기본 사료로 하고 천주교 측의 자료 등과 민간 취재를 추가해 생생한 모습으로 복원해낸다.
소설은 명성황후시해사건의 연좌로 김윤식이 제주도로 귀양을 떠나는 장면으로 시작해 중앙 정부와 토호들의 수탈에 시달려온 제주도 수난의 역사를 그려 보인다. 제주목사 이병휘의 가혹한 징세가 극에 달하자 방성칠을 장두(狀頭)로 한 대정읍의 화전민들이 제주성으로 몰려가 조세의 폐단을 성토하는 소장을 올리는 일이 일어난다. 이에 이병휘가 은밀히 주모자들을 잡아들일 계획을 세우자 그 사실을 안 화전민들이 각 마을에 통문을 돌려 만 명 가까운 민당(民黨)을 모아 제주성으로 진군하여 목사 이병휘를 비롯한 탐관들을 붙잡고 징세 문서와 호적을 불태운다. 제주성을 점령한 민당 지도부는 남학당(南學黨)을 중심으로 진열을 정비하고 제주도에 유배된 적객(謫客) 최형순과 김낙영을 끌어들여 제주도 삼읍 수령을 혁파하고 환곡 부담을 반으로 줄인다는 방을 써 붙이며 정감록에 근거한 역성혁명을 기도한다. 그러나 이에 반발한 토착 양반들과 김윤식 일행을 비롯한 적객들이 대항군을 조직하고 최형순·김낙영과 내통하여 계략을 내어 방성칠을 비롯한 지도부를 붙잡으면서 민란은 진압되고 만다.
그러나 방성칠란이 수습된 뒤에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는다. 새로 부임한 제주목사 이상규와 왕실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봉세관(封稅官)으로 온 강봉헌의 가혹한 수탈이 이어진데다, 이 무렵 전해 내려온 천주교가 교세를 확장하면서 프랑스 신부의 권력을 등에 업은 일부 교인들의 횡포가 심해지고, 특히 천주교인들이 봉세관의 마름으로 고용되면서 세금과 천주교로 인한 폐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나아가 반(反)기독교 격문을 내건 유생이 천주교 교인들에게 폭행당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에 위기를 느낀 유생들은 대정 군구 채구석의 후원하에 상무사(商務社)라는 결사를 조직한다. 때마침 상무사의 우두머리인 오대현을 능멸한 교인을 치죄한 데 반발해 교인들이 관가에 보복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이에 상무사는 오대현을 장두로 하여 민란을 주모하기에 이른다. 이들의 봉기는 애초에는 프랑스의 개입을 우려해 봉세관의 수탈에 항의하는 차원에 그치고자 했으나, 천주교 측이 협상을 가장해 민당을 기습, 지도부를 생포하고 사상자가 발생하자 사태는 민당과 천주교 측의 전면적인 충돌로 치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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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노 출신인 이재수가 강우백과 더불어 새 장두로 자원해 나서면서 민당은 진열을 정비해 교인들이 피신해 점거하고 있는 제주성으로 진격한다. 성안의 교인들과 성을 포위한 민당이 대치하는 가운데 교인들의 발포로 민당 측의 사망자가 늘어나자 민당 측도 성 밖의 교인들을 색출해 처형하기 시작한다. 열흘이 넘는 격렬한 대치 중에 성안에서도 무녀와 퇴기(退妓) 등이 주축이 된 여성들이 개문(開門) 투쟁을 벌여 마침내 성문이 열리고, 제주성에 입성한 이재수의 주도로 숨어 있던 교인들 수백 명이 색출 당해 피비린내 나는 살육이 벌어진다. 그러나 입성 후 유생들이 지도하는 강우백의 동진(東陳)과 민중들이 주도하는 이재수의 서진(西陳) 간의 분열이 불거지고, 프랑스 군함의 무력 시위와 관군의 개입으로 이재수를 비롯한 장두들이 체포되면서 민란은 종식된다.
작가 현기영은 거납(拒納) 운동에서 시작된 민란이 민중에 의한 천주교인 박해로 이어지게 된 국내외의 복합적인 시대적 요구임을 사료에 근거해 치밀하게 파헤침으로써 두 민란의 역사적 성격을 구명하는 데 힘을 쏟는다. 그럼으로써 『변방에 우짖는 새』는 그 중요성에 비해 역사적 연구가 전혀 없다시피 했던 두 민란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 연구라 할 만한 성과로서 완성되었다.
이 소설은 국내외의 여러 가지 시대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그 성격을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려운 이재수의 난과 방성칠의 난을 사료에 근거한 집요한 천착으로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역사소설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1987년 희곡으로 각색되어 극단 연우무대에서 연극으로 공연되었으며, 1999년 영화감독 박광수(朴光洙)에 의해 <이재수의 난>으로 영화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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