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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김동인 단편소설 『포플러』

by 언덕에서 2024. 10. 8.

 

 

김동인 단편소설 『포플러』

 

김동인(金東仁. 1900∼1951)의 단편소설로 1930년 1월 [신소설]지에 발표되었다. 원제는 <아라사버들>이다. '아라사'는 '러시아'의 음역어로 '아라사버들'은 '러시아의 버들'로 해석할 수 있으나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아주 곧고 뻣뻣한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정의하고 있디. 단편소설 『포플러』는 김동인의 소설 중에서도 인간이 가진 성욕과 그것이 건전한 방식으로 해소되지 못할 때 발생하는 악마성을 적나라하게 다룬 작품이다. 

 김동인은 이 땅에 진정한 서구적 자연주의 경향의 문학을 확립했으며, 본격적인 단편소설의 기반을 최초로 확립한 작가다. 그는 단편이 지니는 속성의 하나인 유머와 위트ㆍ패러독스를 단일한 구성 속에 도입했으며, 관습적으로 이어져 오던 구어체의 문장을 혁신했다. 그는 작품을 통해 시종일관 리얼리스트로서의 자연주의 문학세계를 추구, 특히 문체에 있어서도 사실적 필치의 작품세계를 보여주었다. 그의 자연주의관이 설령 서구의 자연주의 개념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사실적 문장과 작품세계는 확고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소설의 형식을 정립함에 있어서 종래의 설교적ㆍ설화적 형식을 무너뜨리고 단일한 구성에 의한 본격적인 단편소설의 형식을 정립했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 최 서방은 외적으로는 정직하고 근면하지만, 내면에 숨겨진 성욕을 억누르며 살아온 인물이다. 그의 성실함은 그가 심고 애정을 쏟는 포플러 나무로 상징된다. 그러나 그 내면에 감춰진 성적 욕망이 폭발하면서 끔찍한 여러 성범죄와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결국 참혹한 결말을 맞이한다. 이 작품은 관리되지 않은 개인의 성욕이 얼마나 처참한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실감 있게 묘사한 리얼리즘 작품의 수작이다. 

 

소설가 김동인( 金東仁. 1900∼1951 )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배경은 일제강점기 한국의 농촌이다. 성실하고 정직한 일꾼인 최 서방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최서방은 힘이 세고 근면한 성격으로 동리의 머슴일을 전전하며 살아가지만, 정직한 삶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다. 어느 날 김 ☞장의네 집에서 우연히 일을 돕게 된 인연으로 그 집에 머슴으로 들어가 성실히 일하게 된다. 그는 김 장의의 집에서 자신이 소유한 유일한 존재인 포플러 나무를 정성껏 돌본다. 최 서방은 포플러 나무에 모든 애정을 쏟고, 마치 그것이 자신의 가족인 것처럼 여긴다. 최서방이 독신인 사실을 안타까이 여긴 주인이 결혼을 주선하겠다고 제안하지만 부끄러움에 그는 대답을 회피하고야 만다. 이후 그는 주인에게 결혼할 의사를 에둘러 표시하지만 김 장의는 최 서방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40년 넘게 독신으로 살아온 최 서방은 억눌렸던 성욕이 폭발하면서 마을에 기이한 일들이 벌어진다. 누군가가 밤이면 혼자 있는 젊은 여성에 접근하여 겁탈하고 사라지는 사건이 그것이다. 그는 점점 더 많은 사건에 연루되며 결국 여러 여성들을 성폭행하고 살해하는 극악한 범죄자가 된다. 마을의 소녀 복실이가 당한 사건부터 그해 가을 추수할 때까지 깊은 밤, 신원불명의 남자가 저지른 강간 사건이 20여 건이 생겨났다. 그 가운데 살인은 겸한 사건이 여섯 건이었다. 

 최초 범죄가 발생했을 때 경찰이 범인을 잡지 못하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비슷한 사건이 이어진다. 결국 최 서방은 경찰에 체포되어 사형을 당한다. 이 모든 일이 벌어진 후에도 최 서방이 심었던 포플러 나무는 여전히 자라고 있었다.

 

1930년대 한국 농촌의 모습

 

 

 (전략)  어떤 날, 그 새끼 버드나무의 곁에 돋아나는 잔풀을 뽑고 있을 때 김 장의가 나오다가 그것을 보고 섰다. 최 서방도 손을 멈추고 일어섰다.

 잠깐 우두커니 서 있던 주인은 입을 열었다.

 “임자두 장가를 들어서 저런 새끼들을 보아야 하지 않나.”

 최 서방은 얼굴이 벌개지며 씩 웃었다.

 “임자 장가가구 싶지 않나? 갈래믄 내 주선해주마.”

 “뭐………”

할 뿐 최 서방은 너무 부끄러워서 그 자리에 웅크리고 다시 풀을 뽑기 시작하였다.

 그날 밤 최 서방은 흥분되었다. 40년 동안을 숨어 있던 성욕이 한꺼번에 터져 올랐다.

(중략)

 그 뒤 최 서방은 여러 번 주인에게 채근 비슷이 해보았다.

 “버드나무 새끼가 한 자나 됐지요.”

하여도 보았다.

 “자꾸 새낄 더 치거든요.”

하여도 보았다. 마지막에는,

 “버드나무는 에미네 없어두 새낄 낳거든요.”

하여까지 보았다.

 그러나 주인은 그 말귀를 한 번도 채어본 일이 없었다. (후략)

 애초 주인 김 장의가 결혼을 주선하겠다는 의사를 보이자 그는 수줍어서 대답을 피한다. 좋음에도 수줍음 때문에 '좋다'라고 표시를 못하는 그를 김 장의는 결혼의 의사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후 주인에게서 동일한 제안이 오질 않자 최 서방은 결혼하고 싶다는 의사를 김 장의에게 에둘러 여러 번 표시하지만 주인은 최 서방의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 결과는 참혹한 성범죄에 이은 잔인한 연쇄살인 사건으로 연결된다. 

 

 

 이 작품은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억눌린 성욕의 문제점과 그 성욕이 건전한 방식으로 해소되지 못할 때 생기는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최 서방은 정직하고 부지런한 삶을 살아왔지만, 성욕을 억제하는 것이 불가능해지자 이성을 잃고 범죄를 저지르는 문제의 인물이 된다.

 포플러 나무는 최 서방의 소유욕과 애착을 상징하는 동시에, 그의 억눌린 성욕과 감정의 폭발을 상징한다. 포플러가 자라나는 과정은 최 서방이 자신의 욕망을 키워가는 과정과 평행을 이루며, 그의 범죄의 전모가 드러나는 순간까지 포플러 나무는 끊임없이 자라난다.

 김동인은 이 작품에서 성욕과 같은 인간의 숨은 본능이 억제될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주목하고 있다. 특히 성적 욕망이 극단적인 형태로 분출될 때 일어날 수 있는 폭력성을 직접적으로 서술하여, 당대 일제강점기 사회의 억압적인 분위기와  한 개인이 괴물로 변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장의(掌議) :「명사」『역사』 조선 시대에, 성균관ㆍ향교에 머물러 공부하던 유생의 임원 가운데 으뜸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