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용묵 단편소설 『병풍에 그린 닭이』
계용묵(桂鎔黙 ,1904~1961)의 단편소설로 1936년 [여성]지에 발표되었다. 이후 [조선출판사]에서 간행한 단편소설집 <병풍에 그린 닭이>(1944)에 수록되었다. 작가는 초기에는 경향파류의 작품을 쓰다가 뒤에 순수문학으로 전환하여 기교가 뛰어난 인생파적인 작품을 썼는데 이 작품은 그중 후기의 경향을 띤 작품이다.
한국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의 문제점을 다룬 작품이다. 즉, 병풍에 그린 닭이 홰를 치고 우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시가(媤家) 집을 떠나지 않아야 한다는 주인공 박 씨의 이야기이다.
운명적 비애를 지니고 살아가는 한국농촌의 여인상을 부각해 남아선호와 남녀차별이라는 한국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의 문제점을 사실적으로 다루었다. 병풍에 그린 닭이 홰를 치고 울더라도 시가(媤家)를 떠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주인공 박 씨의 이야기를 통해 완고한 전통사회의 풍습과 한국여성들의 비극적인 삶을 적나라하게 묘파한 세태소설류의 작품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박 씨는 가난한 집안으로 시집와 어리숙한 남편과 시어머니를 모시고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억척스레 살아간다. 그런데 10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자, 남편과 시어머니로부터 온갖 구박과 수모를 당하게 된다.
박 씨는 시어머니의 구박은 참을 수 있었지만 첩까지 얻으면서 자신을 멀리하는 남편의 행동에는 인내의 한계를 느낀다. 첩에게 쏠린 남편의 마음을 돌리는 방법은 오직 하나 자식을 낳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한 박 씨는 굿을 하겠다고 시어머니에게 말한다.
그러나 시어머니에게 모욕만 당한 박 씨는 자신의 은비녀를 몰래 팔아 자식을 기원하는 굿을 한다. 무당으로부터 슬하에 5형제를 두리라는 말을 듣고 발걸음도 가볍게 집에 돌아온 박 씨는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혹독한 매를 맞고 바람이 났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집에서 쫓겨난다.
시집에서 쫓겨난 박 씨는 하룻밤 신세를 지기 위해 지난날 함께 엿장수를 하던 조 씨의 집을 찾아가다가,
"병풍에 그린 닭이 홰를 치고 우는 한이 있더라도 그 집을 떠날 수 없으며, 죽어도 그 집에서 죽고, 살아도 그 집에서 살아야 한다."
고 생각을 고쳐먹고 다시 시가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박 씨는 씨는 굿을 하고 남은 돈으로 양초와 백지를 산 후 뒷산 서낭당으로 가서 시어머니와 남편의 마음을 돌리고, 아이도 갖게 되기를 기원한다. 시집 문전에 당도한 박 씨는 어둠에 휩싸인 채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은 불 꺼진 자신의 방으로 묵묵히 걸어간다.
계용묵은 소외받은 인간들의 삶을 통해 참된 인간애와 윤리의식을 보여줌으로써 '인생파 작가'라고 불리는 소설가이다. 삼종지도(三從之道)라는 전통적인 윤리의식을 기본바탕으로 깔고 있는 이 소설은 계용묵의 초기소설 경향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운명적 비애를 지닌 우리나라 농촌의 여인상이 부각되어 있다. 단순한 여인의 순종만 아니라 의무와 화해의 각성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하여 완고한 전통사회의 풍습과 삶의 고달픔을 하나의 인생풍정(人生風情)으로 바라보고 있다. 결국, 이 작품은 시대성보다는 인간성을 존중한 1930년대 중반 소설의 보편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
비록 주인공이 현실과의 적극적인 대결을 통해 능동적 자기 인식에 이르는 과정이 배제된 채 세태묘사에 머물렀다는 비판이 따르기도 하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인습에 얽매여 고달픈 삶을 살아가야 하는 불합리성을 이야기함으로써, 시대성보다는 인간성을 중시한 1930년대 중반 소설의 보편적인 특성을 잘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된다. 우리나라 전통 사상인 남녀 차별에 기본을 둔 이야기로, 여자로 태어났다고 하여 무조건 순응하고 복종하며 살아가야 하는 여성들의 비극을 매우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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