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식 단편소설 『213호 주택』
김광식(金光植. 1921∼2002)의 단편소설로 1956년 [문학예술] 지에 발표되었다. 1957년 [현대문학상] 수상작이다. 김광식의 작품 세계는 일제 식민지 통치와 6ㆍ25 전쟁으로 황폐해진 민족적 현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삶의 내면을 다루면서, 과거의 역사적 상흔에 억압된 인간의 심리와 새롭게 변화된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는 정신적 방황이 그의 소설의 주류를 이룬다.
과거의 상흔에 시달리면서, 현실에 적응력을 갖지 못하는 인간 심리 세계는, <환상곡> <비정의 향연> <자유에의 피안> 등에 잘 나타나 있으며, 새로운 세계의 도래에 따른 정신적 방황을 다룬 소설 유형으로는 「213호 주택」을 비롯하여 <의자의 풍경> <표랑> <고목의 유령> 등을 들 수 있다. 이 작품들에서는 소외된 삶의 의식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213호 주택」은 일제 때 공고를 졸업한 인쇄소 기장 김명식이 장마 때 습기로 기계실의 잦은 모터 고장으로 권고 사직당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획일화된 현대문명 속에서 실업의 불안과 소외된 존재 의식을 보인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김명학은 일제 때 공고를 나온 인쇄소의 기장이다. 장마 때 습기 찬 기계실의 모터들이 사흘이 멀다고 고장을 일으킨다. 그래서 그는 권고사직을 당하게 된다. 회사를 나온 김명학은 동창생과 울분에 차서 술을 마시고 상도동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버스 종점에서 내린 그는 집 모양이 똑같은 주택 단지의 자기 집 213호로 향해 걸어간다. 그러나 골목길을 잘못 찾아 미국인과 한국 여자가 사는 집을 자기 집인 줄 알고 들어간다. 이윽고 그는 집주인으로부터 봉변당하고, 도둑으로 몰려 경찰서 유치장 신세까지 진다.
이튿날 아내의 부축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온 그는 부엌에서 식칼을 들고 나와 현관문 손잡이를 빨래판 모양으로 파낸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 그것을 자꾸만 더듬어 본다. 구조나 규격이 획일적으로 건축된 이른바 문화주택 단지에 이사를 온 그는 자기 집 호수가 213호인 줄을 틀림없이 알고 있다. 그러나 집 모양이 똑같아 어느 집이 자기 집인지 분간치 못했다.
그는 을호 주택 3행 길로 접어들면서 눈을 감고 소경처럼 걸어가는 것이었다. 아내는 남이 창피하다는 듯이 머리를 숙이고 땅바닥만 보고 걸어갔다. 눈을 감고 걷던 김명학은 70미터쯤에서 눈을 떴다. 틀림없이 자기 집 앞이었다. 그는 현관에 들어가 겉저고리를 벗어던지고 곳간으로 가 삽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길가에서 현관으로 들어가는 뜰길에 발자국을 내어놓고, 그 발자국 하나하나를 파내는 것이었다.
아내는 보다 못해, “왜 이러세요? 왜, 이래요.”했다.
“왜 이러긴 뭐가 왜 이래.”
그는 곳간 담 밑에 가서 벽돌을 안고 왔다. 벽돌을 수없이 날라다 놓고 그 발자국 구멍에 벽돌 둘씩을 가지런히 놓고 발디딤 길을 만드는 것이었다.
아내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이러한 남편이 슬프게만 보였다.
“여보, 당신 정말 이게 뭐예요. 사람이 돌기도 한다더니 정말 돌았수?”
“돌아? 누가…. 돌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 해 놓는 거야.”
그날, 발디딤 길이 되자 몇 번이고 그 발디딤 길을 걸어 본다. 또 눈을 감고 걸어본다. 아내는 남편이 가여웠다. 김명학은 다시 길가로 나와 현관 발디딤 길을 눈을 감고 걸어가 문의 손잡이 부분을 쓸어보고 문을 드르릉하고 열어 보는 것이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같은 동작을 하는 것이다. 그의 아내는 형용할 수 없는 서러운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
작가는 기계시대의 우연과 여기서 생기는 비극에 주목한다. 「213호 주택」의 김명학 기사가 해고당하는 이유는 발전기의 고장을 사전에 몰랐다는 데 있었다. 아무리 기계의 성능에 익숙한 기술자라 해도 그런 불의의 고장까지 예지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경영주는 그 기계의 고장을 김명학의 무능 탓으로 돌린다. 이건 감당할 수 없는 노릇이다. 기계를 기계로써 정직하게 조업하고 이용하는 김명학과, 기계를 비인간적인 목적의 합리화를 위해 악용하는 경영주 사이의 갭에서 우리는 그 누구도 탓할 수 없는 기계시대의 모순과 비극을 엿볼 수 있다.
이 작품은 현대 기계문명에 예속되고, 규격화된 삶의 틀에 적응하지 못하고, 소외된 인물의 존재 의식을 심층적으로 파헤친 문제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주인공 김명학은, 현대인의 단조로운 삶과 기계문명이 지배하는 비인간적인 상황에서, 소외감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 그래서 그는 강한 고독감을 느낀다. 따라서, 그는 남과 다른 내 집을 만들려는 몸부림을 보인다. 이는 자신의 고유한 삶의 영역을 갈구하는 태도로 나타난다. 자기 집 문간에 벽돌로 발디딤 길을 만들고, 현관문 손잡이를 빨래판 모양으로 파낸다. 이러한 그의 행위는 현대의 기계적인 삶의 상황에서, 자기 삶을 회복하려는 비극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 따라서, 현대사회의 규격화된 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 의식의 진솔한 표현을 상징적 구도로 함축하고 있다.
♣
작가는 태평양 전쟁과 한국전쟁으로 인해 식민지 지식인, 학병 도피자, 월남, 부산 피란살이, 수복 후 서울에 정착하는 커다란 변화를 겪어야만 했다. 이는 당연히 작가의 심리적 측면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또한 김광식의 삶을 살펴보면 유년 시절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시간을 동경, 잉커우, 부산, 서울 등 도시의 한 중심에서 생활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작품에 도시인의 비극성을 문제의식으로 표출할 수 있는 지식인들을 형상화한다.
김광식의 작품에서 도시는 지식인에 속한 인간들이 문명화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노출하는 배경으로 작용한다. 이 때문에 작중인물들은 거의 예외 없이 박탈감, 결핍감, 상실감, 무력감, 고립감, 불안, 공허 등을 보인다. 작가는 이 도시를 통해 인간이 갖고 있는 소외의식을 드러낸다. 한국전쟁 후 우리나라 문단에 유입된 소외의 개념은 역사철학적 관점으로 김광식의 소설에서 작가의식으로 드러나고 있는 소외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요즈음은 아파트라는 이름으로 한국인이 생활하는 주택의 절대다수를 이루고 있지만 작가가 이 작품을 쓸 때는 공동주택의 개념조차 희미하던 시절이었다. 구조나 규격이 획일적으로 건축된, 이른바 문화주택 단지에 이사 온 주인공이 자기 집 호수가 213호인 줄 알면서도 집 모양들이 똑같아 어느 집이 자기 집인지 분간치 못했다는 사실을 통해 이 소설이 제기하고 있는 문제점이 있다. 한 가지 더 큰 문제점은 인간이 필요하여서 기계문명을 이룩해 놓은 것이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기계문명이 그 자체로서 독립하여 막상 그것을 만든 인간을 오히려 지배한다는 메커니즘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메커니즘의 횡포를 신랄하게 비판함으로써 기계문명 속에 사는 생존의 허망함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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