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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3월로 건너가는 길목에서

by 언덕에서 2024. 2. 28.

 

 

 

 

 

 

 

3월로 건너가는 길목에서 

 

                                                                                     박목월(1918~1979)

 

2월에서

3월로 건너가는 바람결에는

싱그러운 미나리 냄새가 풍긴다.

해외로 나간 친구의

체온이 느껴진다.

 

참으로

2월에서 3월로 건너가는

골목길에는

손만 대면 모든 사업이

다 이루어질 것만 같다.

 

동·서·남·북으로

틔어 있는 골목마다

수국색(水菊色) 공기가 술렁거리고

뜻하지 않게 반가운 친구를

다음 골목에서

만날 것만 같다.

 

나도 모르게 약간

걸음걸이가 빨라지는 어제 오늘.

어디서나

분홍빛 발을 아장거리며

내 앞을 걸어가는

비둘기를 만나게 된다.

 

 ㅡ무슨 일을 하고 싶다.

ㅡ엄청나고도 착한 일을 하고 싶다.

ㅡ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2월에서

3월로 건너가는 바람 속에는

끊임없이 종소리가 울려오고

나의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아난다.

희고도 큼직한 날개가 양 겨드랑이에 한 개씩 돋아난다.

 

 

 

- 박목월 유고 시집 <크고 부드러운 손> 2000년 [민예원]

 


 

 박목월(1916~1978)이 없는 한국 현대시는 생각할 수 없다. 그는 올곧은 시 정신과 남다른 언어 감각 그리고 예민한 서정성으로 독보적인 시 세계를 확립한 시인이며, 40년 동안 쉼 없이 새로운 시 세계를 개척했던 보기 드문 시인이다. 한국문학사에서 자연을 즐겨 노래한 시인들이 허다하지만, 박목월이 노래한 자연은 어느 누구와도 변별되는 특이한 것이었다.

 박목월의 초기 시가 자연을 노래했다고 하지만, 그 자연은 실제 존재하는 자연이 아니라 박목월이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자연이었다. 그러나 인간이나 현실과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고 해서 그 자연의 가치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맑고 순수한 아름다움이라면, 인간의 삶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이 생성되었을지라도 인간의 삶에서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그리고 그러한 아름다움의 공간을 창조하는 것이 예술 본연의 역할이기도 하다. 박목월의 초기 시의 자연은 우리 문학적 상상력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아름다움의 공간을 열어주었다. 그러므로 박목월 초기 시의 미학적 공간이 인간적 삶을 외면한 것이라는 이유로 쉽게 폄하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목월이 지향했던 삶의 태도는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고 모자란 것과 서운한 것과 힘든 것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위의 시에도 시인의 정신이 은연 중에 엿보인다. 목월의 이러한 태도는 자연스럽게 질박한 향토성의 미학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삶은 어쩔 수 없이 모자라고 서운한 것이라는 생각, 여유 있을 때 하직하고 한 걸음 물러서서 관조하고자 하는 삶의 태도는 현실이 지닌 소박한 삶이 지닌 가치를 재발견하게 한다.

 그러나 늘 시 속에서 생활하고 생활 속에서 시를 썼으며, 내면의 아름다움과 진실을 중요시했기에, 목월의 일상과 내면은 그 자체로 순도 높은 시의 광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시인의 일상과 내면이 그의 시보다 더 시적이었고 또 진실하다는 점에서 목월은 왼손이 무척 튼튼했던 시인이다. 목월이 성취한 시 세계는 섬세하면서도 넓고 다양하다. 많은 사랑과 존경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한국 현대시사에서 목월만큼 깊고 넓은 성취를 보여준 시인도 흔치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