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골(리) 단편소설 『초상화(Портрет)』
우크라이나 출신 러시아 소설가 니콜라이 고골(리)(Gogoli, Nikolai Vasil'evich.1809∼1852)의 단편소설로 1835년 발표한 단편집 <아라베스크>에 수록된 소설이다. 고골(리)는 이 작품들을 통해서 혼돈과 무질서의 도시 페테르부르크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세속적인 욕망을 그렸다.
작품에서 등장하는 ‘이콘(icon(聖像))’은 동방 정교의 성상화를 가리킨다. 러시아의 이콘은 대개 캔버스 위에 금박을 입히고 템페라 화법에 의해 판화로 제작하며, 성경 속 이야기, 성모, 그리스도, 선지자들 등을 그린다. 이콘은 일상의 영역에 까지 깊이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러시아 정교 신자들의 신앙 생활 속에서 떼어낼 수 없는 하나의 예술이다. 이러한 이콘의 신성성과 보편성 때문에 러시아에서는 문학 쪽에서도 이콘과 이콘 화가를 다루는 작품도 많이 탄생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선한 이콘 화가의 타락을 그리는 고골의 「초상화」이다.
이 작품은 모두 이콘, 심지어 이콘 화가가 가진 신성성과 러시아인들이 그에 대해 가지는 정서와 러시아인의 삶 속에서 갖게 된 필수성을 문학 작품으로 나타내었다. 소설의 1부는 초상화를 구입한 젊은 화가의 파멸을 다루고 2부는 초상화가 그려진 내역을 서술하고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 1부 :
어느 날 가난한 화가 차르뜨꼬프는 미술상 앞을 지나가다가 낡은 초상화 한 점을 산다. 그것은 광대뼈가 나오고 말라 보이는 노인의 초상화였다. 그날 밤 화가는 초상화 속에서 노인이 걸어나와 돈 꾸러미를 푸는 모습을 지켜보는 꿈을 꾼다.
그런데 이것이 현실이 된다. 그는 우연히 초상화의 액자 속에서 금화를 발견하고, 이를 밑천으로 신문에 광고를 내어 명예와 부를 거머쥔다. 세속적 출세로 삶이 권태로워질 때 그는 친구의 전시회에서 강한 충격을 받는다. 그 친구는 자신과는 달리 예술의 정열을 불태우고 있었다. 화가는 후회의 눈물을 흘리면서 다시 진지하게 창작을 시도하지만 이미 재능은 사라져 버린 후였다. 그는 타락의 원인이 초상화 속 노인이 남긴 금화임을 깨닫는다. 그는 미술품을 사서 찢어 버리는 광기를 벌이다가 숨을 거둔다.
● 2부 :
시간이 흘러 이 초상화가 경매에 나오는데 경매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만 한다. 이 때 한 젊은 화가가 경매를 중지시켜 달라는 부탁과 함께 그림의 내막을 들려준다. 초상화의 모델은 지독한 고리대금업자로 이상하게도 그의 돈을 빌린 사람들은 모두 불행해졌다고 말한다.
자신의 아버지는 고리대금업자로부터 초상화를 그려줄 것을 요청받고 훌륭한 모델이라는 생각에 작업에 착수하지만 아버지 역시 그림이 완성되어감에 따라 점차 비뚤어지게 된다. 어느날 제자의 성공을 참지 못한 아버지는 콩쿨에 제자와 더불어 작품을 출품하고, 그 작품이 1등을 차지할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한 성직자가 그 작품에는 악마적인 것이 깃들여져 있으며 화가의 손이 부정한 기분에 조종되고 있음에 틀림없다는 평을 한다. 모든 사람은 그 성직자의 말이 사실임을 납득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 그림의 인물들 눈이 모두 고리대금업자의 눈과 똑같은 것이었다.
화가 난 아버지는 초상화를 없애버리려 하지만 절친한 친구가 안타까운 마음에 그 걸작을 가져가고 아버지는 수도원에 들어가 참회를 거듭하여 결국은 다시 붓을 손에 쥘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어디선가 그 초상화를 본다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찢어 없애줄 것을 부탁하고, 15년 여가 흐른 후 그 초상화를 발견하게 되었으니, 지금 경매가 진행되고 있는 바로 그 작품이라는 것이다.
고골(리)의 생각이나 삶은 기이했지만 그가 러시아 문학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대단하다. 무엇보다 벨린스키가 '수사학파' 또는 '낭만주의 학파'와는 대조적으로 앞으로 러시아 소설의 방향에 큰 영향을 줄 '자연주의 학파'의 강령을 이끌어 낸 것은 바로 고골(리)의 <검찰관> <죽은 혼> <외투> 같은 작품에서이다.
고골(리)는 처음으로 러시아의 참모습을 그려낸 작가였으며 보잘것 없는 소인(小人)을 문학의 주인공으로 형상화시킨 작가였다. 레프 톨스토이와 이반 곤차로프, 이반 투르게네프로 이어진 푸슈킨의 고전적·사실주의적 산문과는 대조적으로, 고골(리)의 화려하고 격앙된 문체는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를 거쳐 상징주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안드레이 벨리에게 이어졌으며 혁명 이후의 몇몇 소비에트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고골(리)의 고발성 사실주의가 낳은 많은 추종자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풍자작가는 살티코프 시체드린이다. 그 역시 문학의 영웅으로서 보잘것 없는 사람을 위해 싸운 투사였다. '단순한 문학'을 뛰어넘으려는 노력에서 그가 겪은 정신적 고통을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가 이어받아 한층 높은 수준으로 고양시켰다.
♣
이 작품의 2부에서, 세월이 흐른 후 어느 경매장에서 노인이 그려진 초상화가 다시 등장하고, 초상화의 내역이 밝혀진다. 초상화를 그린 이는 당대 최고의 이콘 화가였고, 초상화 속 인물은 고리대금업자였다. 그림의 내역을 알고 있는 이는 화가의 아들로서, 그는 초상화를 회수하고자 했으나 한눈을 파는 사이에 초상화는 사라져 버린다.
고골(리) 역시 "죽은 혼"을 집필한 후로 후속편에서 주인공의 구원을 그리려다 실패하고는 신이 자신에게서 구원적 면모를 거두어간 거라며 뚜렷하게 광신적으로 변해갔다고 하니. 딱 '초상화'에 등장하는 화가들이 매달렸던 것이나 그의 생이나 다름이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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