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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을 읽다

밀턴 서사시 복락원(復樂園. Paradise Regained)

by 언덕에서 2024. 1. 24.

 

 

밀턴 서사시 복락원(復樂園. Paradise Regained)

 

 

영국 시인 J. 밀턴(John Milton.1608∼1674)의 서사시로 <투기사 삼손>과 함께 1권으로 1671년 간행되었다. <실낙원>의 원고를 읽은 한 청년이 ‘낙원 발견(paradise Found)'을 주제로 한 속편을 작자에게 요망하자, 이응 응하여 1665년∼1666년경에 쓴 작품이다. <신약성서>의 공관 복음서, 특히 누가복음을 소재로 인용하였다.

 이 작품 속에 있는 광야에서의 그리스도에 대한 사탄의 유혹이란 주제는 밀턴의 독자적 판단으로 낙원을 잃게 된 이유는 아담과 이브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때문이며, 그 유혹을 그리스도가 극복함으로써 낙원은 회복되었다고 하는 그의 사상에 입각한다. 사탄은 단식 기도하는 그리스도 앞에 농부의 모습으로 나타나 돌을 빵으로 만들라고 하는 등 갖은 수단을 다하여 부귀와 명성ㆍ권력ㆍ지식 등으로 유혹하려 하나 이루지 못하고 물러간다는 줄거리이다.

 그리스도가 구세주·속죄주로서의 자각을 지니고 선교의 생애로 접어들기 전, 악마의 유혹을 물리치는 이야기가 이 서사시의 중심이다. 이들 유혹은 어떠한 형태이건 사람이 경험하는 내용인데, 그리스도가 인간적 차원의 존재로부터 신의 아들로서의 자각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여러 유혹을 뿌리치는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밀턴은 자신의 내면의 정화를 묘사하였다. 동시에 그리스도가 속죄주로서의 자각을 얻음으로써, 잃어버린 낙원이 인간에게 다시 주어지는 가능성을 나타냈다. <실낙원>에 나타난 구상의 웅대함과 숭고함이 없고 사탄 역시 강렬함이 부족하나, 밀턴 만년의 걸작임에는 틀림없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제1편

 예수가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을 때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아들임을 증거하는 소리가 내린다. 이를 목격한 사탄은 위기감을 느끼고 중천에서 회의를 열어 부하 천사들에게 이 비보를 전한다. 그리고 황야에서 방랑하던 예수 앞에 나타나 돌을 가리키며 ‘이 돌로 떡덩이가 되게 해 보라’며 시험한다. 예수는 사탄의 정체를 폭로하고 그를 물리친다.

 ● 제2편

 요단강에서 갑자기 사라져 버린 예수를 미래의 제자들과 성모 마리아가 찾는다. 사탄은 다시 예수 앞에 나타나 음식으로 그를 유혹하지만 예수가 끄덕도 하지 않자 부와 재물로써 다시 예수를 유혹한다. 하지만 역시 예수는 조리 있는 반박으로 사탄을 물리친다.

 ● 제3편

 사탄은 다시 예수 앞에 나타나 이번에는 피정복자인 유대 민족의 해방이라는 구실을 들어 승리의 영광과 제국의 권력으로 예수를 유혹한다. 예수가 동요하지 않자 예수를 높은 곳으로 데려가 영광스러운 제국과 강력한 무력을 보여주나, 이번에도 예수는 초연히 유혹을 물리친다.

 ● 제4편

 다시 사탄은 로마 제국의 영화를 보여주며 세상 최고의 권력으로 유혹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다. 속세의 권력으로는 예수를 움직이지 못함을 안 사탄은 이번에는 예술과 학문의 세계로 들어가 그 지적 욕구와 명성으로 예수를 유혹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예수는 일갈하여 유혹을 물리친다.

 폭풍의 밤이 지나고, 다시 예수 앞에 나타난 사탄은 예수를 공중 높이, 성전의 꼭대기 첨탑으로 끌고 가 ‘하느님의 아들이면 여기서 뛰어내려보라’고 한다. 예수가 ‘하느님을 떠보지 말라’고 하니, 사탄은 경악하여 떨어진다.

이로써 유혹의 시간은 지나고 예수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며 집으로 돌아간다.

 

영국 시인&nbsp; J.&nbsp; 밀턴 (John Milton.1608 &sim; 1674)

 

『복낙원』은 인간의 원죄를 주제로 한 종교 서사시로서 영국 르네상스시대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 명작 <실낙원>의 후속 편으로 전 4편 2,070행으로 구성된 간결한 서사시이다. 『실낙원』이 에덴에서 쫓겨남으로써 불행한 결말로 끝나는 비극이라면, 『복낙원』은 예수가 사탄을 물리침으로써 행복한 결말로 끝난다.

 유혹하는 사탄과 이를 물리치는 예수의 격렬한 논쟁을 통해, 메시아의 등장과 낙원의 회복을 알리는 지적 서사로 이루어진 이 작품을 통해 밀턴은 결국 구원의 길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달렸음을 시사하고 있다. 굳건한 신앙인이자 불굴의 혁명가였던 밀턴의 삶과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걸작이다.

『복낙원』은 전 4편 2,070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실낙원』처럼 무운시로 쓰였다.『복낙원』의 주제는 책의 첫머리에 나와 있다. “내 일찍이 한 인간의 불순종으로 인해 상실된 행복의 동산을 노래했으나, 이젠 모든 유혹을 통해 충분히 시련받은, 한 인간의 확고한 순종에 의해 온 인류에게 회복된 낙원을 노래하리라.”(제1편 1~5행) 『실낙원』에서는 아담의 불순종으로 낙원을 잃은 이야기를 했지만,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낙원을 찾게 된 이야기를 하겠다는내용이다.

 『복낙원』에서 낙원의 회복은 십자가의 부활이라고 하는 신학적 명제에 의해 이루어짐이 아니라, 예수가 황야에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침으로 성취된다. 따라서 이 시는 예수가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을 때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하는 하느님의 증거가 주어지는 장면부터, 40일간 황야를 헤매던 예수가 거듭되는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고 자신의 소명을 완전히 인식하고 황야를 떠나는 장면까지로 이루어져 있다. 갑자기 사라져 버린 예수를 찾으려는 (미래의) 제자들이나 성모 마리아에 대한 언급이 두서너 곳 나오지만, 시의 대부분은 유혹하려는 사탄과 거부하는 예수의 논쟁이 주를 이루고 있다. 성경에서 「누가복음」 4장 1~13절의 이야기가 바로 이 시의 줄거리가 되고 있다.

 

 

 황야에서 40일을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며 명상에 잠겨 방랑하던 예수에게 사탄이 나타나, 처음에는 음식으로, 그다음에는 부와 명예와 영광과 제국의 권력으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학문과 예술의 지적 욕구와 명성으로 예수를 유혹하지만, 예수는 일일이 조리 있게 논박을 하며 사탄의 유혹을 물리친다. 이처럼 시 전편을 통하여 예수와 사탄의 논쟁적이고 지적인 대화가 오고 간다.

 일견 성경의 구절을 그대로 따른 듯한 단순한 내용처럼 보이지만, 『복낙원』을 읽는 한 가지 독법(讀法)은 이 시를 ‘예수의 자아발견’ 이야기로 읽는 일이다. 이 작품에서 사탄은 복음서에서처럼 타자(他者)가 아니라 예수의 또 하나의 내면이라 할 수 있다. 외부의 유혹이 아니라 내부의 유혹을 스스로 계속 거부해 가는 과정에서 진정한 메시아로 거듭나게 되는 예수의 이야기이다.

 예수는 황야로 오기 전까지는 메시아로서의 자신의 사명을 완전히 인식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40일을 황야에서 헤매면서 육체적 욕망과 세상의 영화를 소유하고 싶은 유혹에 굴복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예수는 유혹을 이겨냈고, 이제 그는 메시아로서의 소명을 확실히 인식하고 승리를 확신하며 황야를 떠난다.

 밀턴은 이처럼 그리스도를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으로 서술하고 있다. 성자가 아닌,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 예수는 자유의지로 악을 이기고 선을 행했고, 결국 낙원의 회복은 바로 여기에 있음을, 즉 올바른 이성(자유의지)의 행사에 있음을 밀턴은 말하고 있다. <실낙원>에서도 밀턴은 아담과 하와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했다. 신은 인간의 선택에 관여할 수 없으며, 단지 인간이 선택할 바를 미리 알아서 행할 뿐이라고 하느님 자신의 입을 빌어 말하고 있다. 하느님은 인간의 자유의사에 따른 복종을 원하지, 필연의 인형(人形)이 강제로 바치는 복종은 원하지 않는다(<실낙원> 제3편 99~119행). 이런 점에서 밀턴은 단순한 청교도가 아니라 기독교적 인문주의자라고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