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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을 읽다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 설화집 『캔터베리 이야기(The Canterbury Tales)』

by 언덕에서 2024. 2. 22.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 설화집 『캔터베리 이야기(The Canterbury Tales)』

 

 

 

 

 

 

영국 중세 시인 G.초서 (Geoffrey Chaucer.1342∼1400)의 최후 작품이자 최고 걸작으로 1387년 집필에 착수, 1400년 작가의 사망으로 중단된 설화집이자 장편 서사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남부 영국의 캔터베리 대성당을 참배하는 사회 각층의 대표 31명의 순례자가 런던 템스강 변의 한 여관에서 여관 주인의 제의로 번갈아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미완성의 이야기를 포함하여 24편의 이야기가 실렸다. 중세기 설화문학의 모든 장르가 이 한 권에 집약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캔터베리 이야기』는 14세기 중세 영국의 사회상, 특히 교회의 부패상을 알게 해 주는 작품이다. 타락한 교회와 세속 권력 간의 대립은 초서 시대 이전부터 있었던 일인데, 12세기 헨리 왕의 부하 네 사람이 왕과 사사건건 맞서서 로마의 교권을 옹호하던 캔터베리 대주교 토마스를 대성당 안에서 도끼로 찍어 죽인 사건이 벌어졌다. 이 일로 토마스는 졸지에 성인으로 숭앙받게 되고 캔터베리는 신성한 순례지가 되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순례자들은 국왕과 거지를 제외한 각 사회 계층의 다양한 인물 즉 기사와 그의 종자(從者)인 젊은 무사, 수녀원 원장과 그 사제, 법률가ㆍ시골 사제ㆍ탁발수도사(托鉢修道士)ㆍ면죄부 팔이ㆍ의사ㆍ옥스퍼드 대학의 학생, 바스시(市)의 여자 직조공ㆍ선원ㆍ상인ㆍ요리사ㆍ방앗간 주인ㆍ목수를 겸한 농장주인 등, 당시 영국의 각종 직업ㆍ계층에 속한 인물들이며, 작자 자신도 이야기하는 한 사람으로 등장한다.

 이 작품은 제프리 초서가 대부분 1387년 직후에 운문으로 쓴 이야기집으로 화자가 다양하고, 화자에 대한 묘사가 생생하며, 이야기와 화자의 관계가 발전적이라는 점에서 보카치오의 <데카메론(Decameron)> 류의 여타 이야기집과는 다르다. 초서는 처음에 시인 자신을 포함한 30명의 순례자가 사우스워크의 타바드 여관을 출발하여 런던 교외를 지나 캔터베리 성당에 있는 유명한 성 토머스 베켓의 성지를 순례하고 돌아오는 과정을 그리려는 거창한 계획을 세웠다. 각 순례자는 가는 길에 2편, 오는 길에 2편씩 이야기하게 되어 있었으나, 이 책에는 24편만 실려 있고 그중 일부는 작가의 사망으로 미완성이다. 편자에 의해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 중세문학 특유의 팔리노드(취소문)를 붙여 이 이야기집을 일단 완성했다. 

 내용은 로맨스·설교 문학·해학담·성자전 및 그 밖에 유럽에서 유행한 문예의 모든 장르를 싣고 있다. 그것은 단순한 이야기를 나열한 것이 아니라 예를 들면 제1화 <기사 이야기>는 궁정의 장중·정아한 로맨스이며, 제2화 해학담 <방앗간 주인 이야기>는 제1화에 대한 패러디 즉 희작으로 되어 있다. 이야기는 서로 연관되게 진행되어 종래의 소설과는 다른 구성을 지녔다. 지은이는 종종 날카로운 풍자를 발휘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관용과 유머가 넘치며 인간의 사상과 행동의 가치를 겸손하게 인식하고 있다. 마지막의 팔리노드는 지은이의 현세 부정 사상을 나타내고 있으나, 작품세계에서는 오히려 현세에 깊은 즐거움을 느낀 시인의 인간성이 발랄하고 생기 있게 표현되어 있다. 성(聖)과 속(俗) 두 세계를 그대로 용인하는 작자의 정신이 중세의 <인간 희극>이라 할 만한 이 작품을 창조하였다고 할 수 있다.

 초서가 그의 가장 원숙기에 쓴 이 작품은 날카롭고 넓은 인간성의 통찰, 풍부한 해학, 온정적인 필력으로 사건이 전개되고 있다. 또한 이 작품에는 캔터베리를 무대로 해서 당시 순례자들을 통한 그의 신분·직업·용모·복장·성격 등과 각 방면의 인물들이 고루 등장해서 그 당시 영국 사회의 풍속이 잘 나타나 있다.

캔터베리 이야기는 인쇄술을 영국에 들여온 캑스톤(Caxton)에 의해 1478년 처음 책으로 출간되었다.

 

▲<캔터베리 이야기>의 한 장면. 이미 14세기부터 유럽의 식자층은 면죄부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어느 해 봄, 캔터베리로 순례를 떠나려는 약 30여 명의 사람이 런던의 남부 사자크라는 마을에 있는 한 여관에 묵었다. 여관 주인은 손님들을 융숭하게 대접하면서 순례를 다녀오는 도중 각자 이야기 4편씩을 해서 가장 재미있게 이야기를 한 사람을 뽑아 돌아온 날 저녁을 대접하자고 제의한다. 이에 모두 찬성하고 제비뽑기로 순서를 결정, 기사가 첫 번째로 이야기하게 된다.

 몇 편의 이야기만 소개해 보면,

<바스의 아내 이야기>는 못생긴 노파의 도움으로 궁지에서 벗어난 아서 왕의 기사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 노파와 결혼했는데, 하룻밤 사이에 노파가 미녀로 변신했다는 로맨스이다.

<수사의 이야기>는 이탈리아의 바르텔 후작이 그의 아내 그리셀다를 시험해 보기 위해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면서 그 준비를 아내에게 시키지만, 결국 그리셀다의 순종과 믿음에 감동해서 둘이 행복하게 산다는 교훈담이다. 또한 옥스퍼드의 젊은 목수가 점성학에 심취한 옥스퍼드 하숙생에게 속아 젊은 아내를 빼앗기게 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기사의 이야기>는 고대 아테네를 배경으로 하는 비극적 로맨스다. 사촌 간인 팔라몬(Palamon)과 아르시테(Arcite)가 아름다운 에밀리(Emelye)를 사이에 두고 벌이는 사랑의 삼각관계를 그리고 있다. 팔라몬은 감성적 사랑을 아르시테는 본능에 입각한 현실적 사랑을 보여준다. 이야기의 절정은 승자가 에밀리를 차지하게 되는 마상 시합에서 발생한다. 마르스 신을 섬기는 아르시테가 시합에서 승리하지만, 격분하여 놀란 말에서 떨어진 후 그 상처로 죽게 되자 결국에는 비너스를 섬기는 팔라몬이 에밀리와 결혼하게 된다. <기사의 이야기>에서 초서는 사랑의 속성 외에도 인간을 구속하고 있는 운명론과 신의 섭리, 그리고 인과관계 등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방앗간 주인의 서시와 이야기>는 나이 든 목수 존의 젊은 아내 앨리슨이 하숙생인 옥스퍼드 대학생 니콜라스와 공모하여 서방질하는 다소 상스럽고 웃기는 이야기로서 그 문학적 장르는 파블리오(fabliaux)다. 시골 교회에서 일하는 압살론 역시 앨리슨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속아서 그녀의 입 대신에 궁둥이에 키스한다. 존은 노아의 홍수가 곧 다시 밀어닥칠 거라는 니콜라스의 거짓말을 철석같이 믿고는 홍수가 났을 때 안전하게 떠다닐 수 있도록 지붕 꼭대기에 통 하나를 매달고 그 안에서 잠을 청한다. 그 사이에 앨리슨과 니콜라스는 존의 침대에서 사랑을 나눈다. 이야기의 절정은 압살론이 내민 뜨거운 보습 날에 엉덩이를 덴 니콜라스가 허둥대며 물을 찾는 소리에 홍수가 난 줄로 착각한 존이 통을 매달고 있던 줄을 끊는 바람에 바닥에 떨어져서 팔이 부러지며 동네의 웃음거리가 된다.

<옥스퍼드 서생의 서시와 이야기>는 이 이야기는 그리셀다(Griselda)라는 여자가 자기 남편 월터(Walter)에 의해서 혹독한 고통과 멸시를 받으면서도 불평 한마디 없이 모든 것을 인내한다는 종교적 상징성을 다루고 있다.

<상인의 서시와 이야기>는 제뉴어리라는 이름을 가진 늙은 남편이 젊은 아내 메이가 다른 젊은 남자와 배나무 위에서 성관계를 맺고 있는 사이에 그 배나무를 안고 있는 모습을 그린 우스꽝스러운 우화 형식의 이야기다. 제뉴어리는 신들의 개입으로 갑자기 시력을 회복하여 이들이 나누는 정사 장면을 목격하게 되지만, 메이는 자신이 젊은 남자와 사랑을 나눈 것은 그의 눈을 뜨게 하려는 그녀 나름대로 기도였다고 변명한다.

<선장의 이야기>는 우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상인의 아내가 수사에게 만일 자신에게 돈을 준다면 그와 하룻밤 자겠다고 말하자, 그 수사는 그녀의 남편에게 돈을 꾸어서 그녀와 잠을 잔다. 나중에 여행에서 돌아온 상인이 빌린 돈을 갚으라고 독촉하자 수사는 그 돈을 이미 상인의 아내에게 갚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 돈을 다 써 버렸다고 말하면서, 앞으로 그와 잠자리를 함께함으로써 그 돈을 갚겠다고 말한다.

<시골 유지의 서시와 이야기>는 브레타뉴 지방의 서정시다. 도리겐(Dorigen)이라는 부인이 아우렐리우스(Aurelius)라는 이름의 수습 기사로부터 청혼받지만, 그녀는 바닷속에 있는 모든 암초가 없어진 후에야 그의 청혼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한다. 아우렐리우스는 마법사의 도움으로 바닷속의 모든 암초를 없앤 후 그녀에게 약속을 지킬 것을 재촉한다. 그의 아내가 아우렐리우스와 맺은 약속을 알게 된 도리겐의 남편은 자기 아내에게 약속을 지킬 것을 권유한다. 하지만, 이런 남편의 정성에 감동한 아우렐리우스가 도리겐을 자유롭게 해준다.

 그러나 이 작품 중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바스 여장부의 프롤로그>와 그녀가 하는 이야기이다. 자신이 먼저 나서서 다섯 명의 남편을 맞았다고 이야기하며, 성생활에 있어서 완전한 남녀평등을 요구하는 그녀의 이야기는 현대 여성 해방론자들의 주장을 압도한다.

 

 

- 전시(全詩)와 서시(序詩) -

 

4월의 감미로운 소나기가

3월의 가뭄을 속속들이 꿰뚫고

꽃을 피우게 하는 습기로

온 세상 나뭇가지의 힘줄을 적시어 주면

서녘 바람 또한 달콤한 입김을

산 나무 밭 애송이 가지의 끝과 끝 속에 불어 넣어 준다.

나 어린 태양은 백양궁의 반 행정(멀리 가는 길)을 마쳤을 뿐이며

작은 날짐승들은 저마다 노래를 부르고……

자연이 하도 그들의 가슴을 설레게 해서……

밤이면, 온통 뜬 눈으로 잠을 잔다.

사람들이 순례를 갈망하는 것은 이때,

성지 순례자들은 낯선 나라들에 마음이 쏠리고,

먼 나라

고장마다 널리 칭송되는 여러 성인의 묘소를 찾으려 한다.

특히 영국에서는 고을마다 앞을 다투어

캔터베리로 사람들이 몰려들어,

병들어 고생할 때, 그들을 도와준

거룩하고 복된 순교자를 찾아간다.

이 계절의 어느 날,

나는 경건한 마음으로 캔터베리로의

순례를 작정하고,

싸자크의 타바트 여관에 투숙했다.

밤이 되자 그 여인숙에는

스물하고 아홉 사람의 한 떼가 들었다.

우연히 동행이 된 형형색색의 이 사람들은

모두 순례자들이었고,

찾아가는 곳은 캔터베리.

객실과 마구간은 모두 널찍널찍하고,

우리는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일언이폐지(一言以蔽之)하고 해가 져서 날이 저물기를 기다려,

나는 그들이 하나하나와 인사를 나누고,

곧 동행자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날 일찍 일어나,

캔터베리를 향하여 출발할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이야기가 너무 진행해서

때를 놓치기 전에

나는 동행자들의 각자의 외양이며,

생업, 지위,

그리고 그들의 옷차림 등을

눈에 띈 대로 미리 알려 두는 것이

사리에 맞을 것 같다.

그러면 기사(騎士)로부터 시작하기로 하자.

일행 중에 으뜸인 기사는 그 위인이 훌륭하고

싸움터에 나가기 시작하면서부터

기사도를 사랑하고,

줄곧 진실과 명예, 너그러움과 예절을 아껴 지켰다.

국왕의 싸움에서는 언제나 뛰어나게 큰 공을 세웠고,

거기에다, 기독교의 나라나 이교의 나라를 가릴 것 없이

그의 무사로서의 역량은 언제나 큰 칭송을 받았다.

알렉산드리아가 함락했을 때, 그곳에 있었고

프러시아에 가면, 딴 나라 기사들을 누르고,

으레 식탁의 상좌에 자리 잡았다.

리투아니아와 러시아에 원정했으며,

그와 같은 지위의 교인치고 그처럼 자주 원정을 간 사람은 없었다.

알제시라스의 포위전 때에는 그라나다에 있었고,

벨마리에도 출전했다.

리에이스와 사탈리아의 공략전에 참가했으며,

지중해 지역에서의

많은 성스러운 원정에도 끼었다.

생사를 건 격전에 참여한 것만도 열다섯 번,

트라미센에서는 우리의 신앙(기독교)을 수호하기 위해서

세 번이나 마상(馬上) 시합(試合)에 나갔으며 번번이 적수를 무찔렀다.

또한 이 갸륵한 기사는

한때 팔라티아의 임금 편에서

터키의 이교들과 싸웠다.

어느 때고 그를 따를 무사가 없는 일등 기사였다.

이렇게도 훌륭한 기사이기는 했지만, 남달리 생각이 깊고

그의 거동으로 말하면 마치 처녀와도 같이 유순했다.

그는 평생 누구한테고 상소리를 해 본 적이 없다.

이 사람이야말로 진실하고 완전하고 가문 좋은 기사였다.

(중략)

활기차고 장난 좋아하는 탁발승(托鉢僧)이 있었는데,

한지(限地) 탁발승이었으며 매우 존대한 인물이었다.

네 개의 교단(敎團)을 다 뒤져 보아도

그처럼 희롱 잘하고 언변 좋은 중은 한 사람도 없었다.

데리고 살다가 싫증이 나면

제 돈을 내서 시집보내 주곤 한 여자 수효는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그런데도 이 스님은 그의 교단의 큰 기둥과 같은 존재였다.

자기 구역의 지주며 유지들,

그리고 마을의 이렇다 하는 부인들하고는

이를 데 없이 친숙하고 또 그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는데,

그 까닭은, 본당 신부보다 더 큰 고해 권한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또 그것은 제 말로는, 자기가 그의 교단에서

면허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과연 그럴는지.

고해를 들어주는 모습은 인자하기 이를 데 없고,

죄장(죄) 소멸을 선언하는 태도는 천진난만했다.

좋은 보수와 선물이 있을 법한 자리에서는

그가 명하는 보속은 얼마든지 대수롭지 않은 것이 될 수 있었다.

가난한 교단에 금품을 희사한다는 것은,

죄진 교인으로서는 깊은 참회의 정을 나타내는 방법이다.

중이 희사받기만 하면, 그대가 과연 그대의 죄를 뉘우침을

내가 알고 있노라 하는 식으로 선언하기 마련이다.

많은 사람은 심장이 굳을 대로 굳어서,

뉘우침에 마음이 쓰리고 아파도 좀처럼 눈물이 나지 않는다.

그러니, 울고불고하거나, 억지 기도를 올리는 대신에

가난한 탁발승에게 동전 몇 푼 던져 주면 만사형통이다.

어깨까지 덮은 그의 두건 끝에는 언제나 칼과

핀을 차고 다니면서 예쁜 여자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곤 했다.

목소리가 또한 일색이어서

노래를 잘하고, 현악기를 잘 뜯고, 민요나 잡가를 부르는 데는

남이 도저히 따를 수 없는 명성을 지니고 있었다.

목덜미는 백합처럼 새하얗지만

힘은 씨름꾼 못지않은 장사였다.

가는 마을마다 모르는 술집이 없고,

주막집 주인과 작부를

문둥병 환자나 거지들보다 더 가까이했다.

그렇게도 훌륭한 사람의

높은 지위로 보아서

병든 문둥병 환자나 거지들과 사귄다는 것과,

가난뱅이들과 교제한다는 것은

점잖지 못하고 이득도 없는 일이며, 돈 많은

유지들이나 요식업자들과 친해서 마땅한 일이 아니겠는가.

일언이폐지(一言以蔽之)하고, 이문(利文)이 생길 것을 눈치채기만 하면,

금세 공손하고 아양이 볼 만했으니,

그렇게도 얌전한 위인을 따로 찾아보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이 탁발승이 속한 승원에는 그보다 더 잘 구걸하는 중이 없었다.

구걸하는 구역을 독점하기 위해 적잖은 권리금을 냈기 때문에,

딴 동료 탁발승은 감히 그의 구역 안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신 한 짝 제대로 신지 못하는 가난뱅이 과부를 위해서도,

'태초에 말씀이 있었느니라(In principio).' 하는 주문을

기꺼이 외고 나서는, 반드시 돈을 받고서야 놓아주곤 했다.

그러니, 그의 정규 보수보다 더 많은 잡수입을 차지할 수밖에.

그리고 사방팔방을 쏘다니는 꼴이라, 마치 삽살개.

사랑날이 오면 한바탕 큰 역할을 하곤 했는데,

차린 모습이 다 떨어진 외투를 걸친 수도승이나

가난한 학생 같지 않고

박사님이 아니면 교황같이 당당했기 때문이다.

마치, 주형(鑄型)에서 갓 뽑아낸 종과 같이 동그랗게,

겹으로 진, 짧은 털 외투를 입고 있었다.

혓바닥 위에서 영어를 아름답게 굴려 내려는 심산으로

멋을 부리다 못해 말을 어린애처럼 약간 더듬었고,

노래를 부르고 난 다음, 양금(하프)을 치노라면,

그의 두 눈알이 마치 서리 내린 밤하늘의 별인 양 두리번거렸다.

이 갸륵한 한지(限地) 탁발승의 성함은 휴버드라고 했다.

(하략)

 

 

 이 작품은 이야기의 단순한 나열이 아니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각각 그들의 성격을 이야기 속에 여실히 반영시키고 있는 점은 극히 근대적 전개법이다. 특히 서두는 순례자들의 용모ㆍ성격을 선명하게 부각한 하나의 풍속도이다.

 이처럼 이야기들이 각각 서로 유기적인 관련이 있고, 작품 전체의 긴밀한 구성에 따라 진행된다. 또한 이 작품은 '천일야화'나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존 가워의 '여인의 고해(告解)' 등에서와 같은 종래의 단순한 형식과는 다른 독특한 구성을 뒀다. 이야기하는 순례자들이 각각 그들의 신분ㆍ처지ㆍ취미ㆍ성격에 부합된 이야기를 하게 한 작가의 기발한 구상은 개개의 이야기를 대사로 하는 하나의 장대한 드라마를 만들어 낸다. 동시에 다양한 이야기에서 전개되는 세계는 당시의 영국의 종교ㆍ세계관ㆍ인생관ㆍ사회 제도ㆍ인정ㆍ풍속ㆍ습관 등을 선명하게 묘사한 중세의 파노라마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이야기는 1170년에 순교를 당한 토마스 베케트(Thomas Becket)의 묘지가 있는 캔터베리의 성지로 떠나기 위해 런던의 템스강 변의 한 여관에 순례자들이 모이면서 시작된다. 캔터베리 이야기는 순례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가고 오는 길에 각각 2개의 이야기를 하고 그중 가장 이야기를 잘한 사람이 융숭한 식사를 대접받는다는 일종의 이야기 경연대회 형식을 취한다.

 저자 제프리 초서의 문학적 업적은 17세기 비평가 존 드라이든의 ‘영시의 아버지이며…. 신의 풍요로움’이라는 평으로 집약될 수 있다. 초서는 당대의 문인들이 피했던 모국어인 영어를 과감히 사용하여 발음, 철자, 의미에 있어 통일된 언어적 규범을 제시함으로써 근대 영어의 기반을 다졌다. 또한 초서는 고대 영시의 잔재인 딱딱한 어감을 풍기는 두운법에서 과감히 탈피하여 약강격 운율을 도입하고 시행의 끝에 규칙적으로 같은 운의 글자를 다는 각운(脚韻)을 사용하는 2행 대구를 시도함으로써 영어와 영시에 부드러움과 세련미를 더한다. 그는 실로 근대 영어의 효시이자 영시의 아버지이다.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는 내용과 형식에서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 1313-1375)의 <데카메론>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초서의 작품은 보카치오의 단조로운 이야기 구성 형식을 넘어 보다 세련되고 기교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다. <데카메론>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같은 계층에 속하는 상류층의 사회 엘리트들이며, 이야기의 내용들 또한 매우 유사하여 단조로운 느낌을 준다. 이에 반해, 『캔터베리 이야기』의 화자는 다양한 신분 계층의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이 하는 이야기들 또한 그들의 신분 계층과 직업만큼이나 다양하다. 이 속에는 궁정풍의 로맨스와 성의 혁명과 여권신장을 외치는 여장부 이야기가 있으며, 또한 오쟁이 진 남편을 그리는 익살맞고 상스러운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경건한 설교조의 이야기 등이 들어 있다.

 이와 같은 다양성 때문에 초서의 이야기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가 모자라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한다. 하지만 초서의 이야기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공통된 주제를 중심으로 몇 개의 이야기가 하나의 그룹을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결혼 그룹과 인간의 저속한 욕구를 다루는 파블리오(fabliau) 문학의 범주에 드는 이야기들이다. 특정한 그룹을 통해 초서가 다루고자 하는 일관된 주제는 사랑과 성, 그리고 결혼을 둘러싼 인간성 탐구이다. 초서는 특별히 결혼생활을 둘러싼 남녀의 주도권에 관한 논의를 반복하면서 한쪽이 주도권을 앞세우면 그 관계는 파행으로 치닫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여기에는 중세 남권주의 사회의 전유물로 간주하는 조건 없는 여자의 순종과 복종에 반론을 제기하며 여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여성을 고유한 독립적인 인격체로 간주해야 한다는 초서의 강한 의도가 배어 있다. 즉 초서는 당대의 엄숙한 종교적 분위기와 남권주의 사회의 경직된 환경 속에서 까발리기 힘든 그렇지만 다루어야만 하는 민감한 주제들을 문학이라는 공공의 장소로 끌어들임으로써 듣는 이들의 의식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서로 알지도 못하는 타인들이 동행이 되어 런던 사자크의 여관을 떠나 캔터베리로 가는 순례길은 내세를 준비하며 하루하루를 고행하듯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 행로를 상징한다. 전체적으로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이야기들이 많으며,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밝고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키려는 초서의 인생관이 스며있다. 이 작품에는 중세 사회의 최상층과 최하층을 제외한 각계각층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사회적 지위가 그중 높은 기사, 착하고 가난한 선비, 성인군자 같은 본당 신부, 농부, 탈선ㆍ부패의 화신과도 같은 수도승, 수녀원장, 무역상, 옥스퍼드의 수사(修士), 법률가, 향사, 목수, 요리사, 선장, 의학박사, 마을의 교구 사제, 면죄부 파는 사람 등 30명의 순례객이 모여 가는데, 후에 연금술사와 그의 제자가 합류한다.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이들 각 인물의 용모, 성격, 말투 등을 생생하게 묘사한 후, 이들이 하는 이야기가 그들의 직업, 성격과 부합되도록 했다.

 이 작품은 이야기의 단순한 나열이 아니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각각 그들의 성격을 이야기 속에 여실히 반영시키고 있는 점은 극히 근대적 전개법이다. 특히 서두는 순례자들의 용모ㆍ성격을 선명하게 부각한 하나의 풍속도이다.캔터베리 이야기속에 스며있는 작가의 정확한 현실 인식과 풍자, 그리고 따스함과 유머로 현실을 밝게 보려는 태도는 영문학사에서 중요한 하나의 흐름을 형성했다.

 

▲루터는 교회의 변화를 요구했을 뿐, 폭력적인 혁명을 의도하지는 않았다.

 

 영국의 시인이라면 셰익스피어를 생각할 것이다. 그보다 300년 앞서 초서가 있다. 초서는 자세히는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 1342∼1400)로, 런던의 어떤 술을 파는 상점 주인의 아들로 태어나 1400년 10월 25일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힌 위대한 시인이다. 초서는 그의 출생 연월일을 정확히 모르는 것과 같이 초년의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16, 17세 때 알스터 백작 부인의 종복으로의 기록이 있을 뿐이다. 초서가 백작 부인의 종복이 된 것은 출세에의 첫걸음이었다. 우선 무엇보다도 초서는 궁정에 접근할 수 있었다. 또한 여러 귀족을 알게 되었다. 한갓 천한 평민의 아들로 태어난 초서가 궁정 출입이 자유롭고, 게다가 귀족들과 교제할 수 있다는 것은 여러모로 계몽되는 바가 많았을 것이다. 초서는 귀족의 종복으로 일하는 사이에 두 차례에 걸쳐서 출정한 일이 있는데, 그 첫 번째 출정인 1360년 프랑스군의 포로가 된 실기(實記)는 불멸의 고전이 된 캔터베리 이야기에 나타나 있다.

 초서가 위대한 시인으로 출세하게 된 것은 1366년 필립파와 결혼해서 생활이 넉넉해짐에 따라 독서를 즐기는 한편, 대륙에 빈번히 왕래하는 국왕의 외교관으로 견문이 넓어졌기 때문이었다. 특히 1370년에 잠시 프랑스에 외교 임무를 띠고 갔다가 돌아온 후 1372년에서 3년과 1378년의 두 차례에 걸쳐서 이탈리아에 여행한 행운을 가졌을 때 그는 단테는 물론 보카치오의 글을 접할 수 있었다. 영시(英詩)의 아버지라 일컫는 초서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것은 보카치오라고 한다.

 초서의 활동을 대체로 크게 3기로 분류해서 살펴볼 때 제1기가 되는 1372년경까지는 주로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다. 중세적인 우의시(寓意詩)를 즐겼고, 13세기의 프랑스 장시 <장미 이야기>를 영역(英譯)하기도 했다. 제2기는 1385년경까지로 보고,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에 접근한 시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때 단테와 보카치오에 대하여 알게 된다. 나머지 제3기가 1385년 이후로서 영국적인 문학으로 돌아간다.

 초서의 대표작 캔터베리 이야기는 1387년부터 죽을 때까지 그의 4분의 1 생애를 바쳐서 쓴 것이지만, 완성되었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어째서 그러냐 하면, 캔터베리 이야기는 1천7백여 행(行)의 운문과 약간의 산문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 내용은 29명의 순례자가 왕래한 이야기를 각기 두 편씩 하기로 했는데, 실제는 24편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량이 어떠하든지 이 작품은 작자가 시인으로서, 더욱이 중세에서 여러 가지로 혼란 속에 살면서 올바른 인생관과 원숙한 기법을 구사한 명작이다.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가 명실공히 명작이라고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 내용도 훌륭하거니와 세계에서 제일 아름다운, 이른바 ‘미장본(美裝本)’이 윌리엄 모리스가 제작한 <초서 저작집>인 것으로도 그렇다. 모리스는 19세기 후반 존 러스킨 등과 같은 석학으로, 시인ㆍ공예가 또는 사회 개량가로 여러 가지 일을 많이 한 가운데 만년에는 주로 미장본의 한정판 출판에 힘썼는데, 특히 <초서 저작집>을 1년 9개월이나 공들여 제작하는 한편, 이 책을 위해서 별스러운 활자를 고안하기까지 했다.

 

 

 이 작품의 내용은 남(南)영국의 캔터베리를 무대로 해서 당시 순례자들을 통한 그들의 신분ㆍ직업ㆍ용자(容姿)ㆍ복장ㆍ성격 등과 각 방면의 인물들이 고루 등장해서 그때 영국 사회 풍속을 잘 나타내고 있다. 전부 24편으로 나누어진 이 작품은, 그 서곡이라고 할 수 있는 프롤로그에서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4월, 달콤한 소나기가 3월 가뭄을 속속들이 꿰뚫고 꽃을 피우게 하는 습기로 온 세상 나뭇가지의 힘줄을 적셔 주면, 서녘 바람 또한 잣나무밭 애송이 가지의 끝과 끝 속에 감미로운 입김을 불어 넣어 준다. 나이 어린 태양은 람의 반 형정을 마쳤을 뿐이며, 작은 날짐승들은 저마다 노래를 부르고―자연이 하도 그들의 가슴을 설레게 해서―밤이면 온통 뜬눈으로 잠을 잔다. 사람들이 순례를 갈망하는 것은 이때, 성지(聖地) 순례자들은 낯선 나라들에 마음이 쏠리고 먼 나라 고장마다 널리 칭송되는 여러 성인의 묘소를 찾으려 한다. 특히 영국에서는 고을마다 앞을 다투어 캔터베리로 사람들이 몰려들어 병들어 고생할 때, 그들을 도와준 거룩하고 복된 순교자를 찾아간다.

이 계절 어느 날, 나는 경건한 마음으로 캔터베리로의 순례를 작정하고 서기크의 터벌드 여인숙에 투숙했다. 밤이 되자, 그 여인숙에는 스물하고 아홉 사람의 한 떼가 들었다. 우연히 동행이 된 형형색색의 이 사람들은 모두 순례자들이었고, 찾아가는 곳은 캔터베리였다.

 이렇게 시작된 캔터베리 이야기의 내용은 주로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전해지고 있는 ‘캔터베리 이야기’인데, 이 작품은 대소(大小)를 합하면 90여 종의 사본이 있다고 할 만큼 다양하다. 그리고 쓰인 말도 중세영어로 알기 어려워서 영국에서 17세기의 시인 존 드라이든이 시초로 번역한 것을 토대로 해서 현대어로 번역되었다. 원작의 대부분이 운문인 것을 산문으로 옮겨서 여러 독자에게 이해에 도움을 주게 되었다. 이 작품은 해학과 온정 어린 내용을 우려하고 경묘하게 표현한 명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