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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을 읽다

삼국유사에 실린 『김현감호설화(金現感虎說話)』

by 언덕에서 2024. 4. 5.

 

 

삼국유사에 실린 『김현감호설화(金現感虎說話)』

 

 

통일신라 때 설화로 <호원(虎願)>이라고도 한다. 고려 초에 박인량(朴寅亮)이 엮은 <수이전(殊異傳)>에 실렸다 하는데 지금 이 책은 전하지 않고 현재 <삼국유사> 권5 ‘효선편(孝善篇) 김현감호조’와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권 15에 수록되어 전해지는 사원연기(寺院緣起) 설화의 하나이다. ‘호원설화(虎願說話)’라고도 한다.

 이 작품은 『김현 설화』와 <신도징 설화>로 두 편으로 나누어 구성되어 있다. 이 두 편의 범 설화를 <삼국유사>에 편입시킨 일연의 의도는 한국 설화인 <김현 설화>와 중국 설화인 <신도징 설화>를 통하여 전자에 나타난 범의 좋은 구실과 후자에 나타난 나쁜 구실을 대비하여, 범의 좋은 구실을 내세우는 데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통일신라 원성왕(元聖王) 때 김현(金現)이라는 청년이 밤늦게 탑을 돌다가 한 처녀를 만나 사랑을 맺게 되었다. 그러나 김현이 숲속으로 돌아가는 처녀의 뒤를 밟아보니 그녀는 사람이 아니라 호녀(虎女)였다.

 호녀에게는 사나운 세 오라비가 있었는데 하늘에서는 마침 한 마리를 죽이려던 참이었다. 오라비를 대신하여 죽기로 결심한 호녀는 김현에게 “내일 저자에 나타나 많은 사람을 해칠 것이니 낭군은 나를 잡아 그 공으로 높은 벼슬을 하라”고 하였다.

 김현이 사랑하는 이를 죽일 수 없다고 거절하였으나, 하늘의 명이니 어쩔 수 없다고 낭군 손에 죽기를 애원하였다.

 이튿날 과연 범이 많은 사람을 해쳐 나라에서 큰 상을 걸고 범을 잡도록 하였다. 김현이 어제 그 숲에 가자 호녀가 나타나 기꺼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죽으니 곧 범의 사체로 변하였다. 높은 벼슬에 오른 김현은 호녀를 위하여 호원사(虎願寺)라는 절을 세우고 호녀의 명복을 빌었다.

 

 

 이 이야기는 <수이전>에 <호원(虎願)>으로 실렸던 것이 '대동운부군옥'에 전제되어 전하기도 한다. 사찰의 연기설화(緣起說話) 역할도 하는 이 이야기는 호랑이가 등장하는 많은 설화 중의 하나이면서 소위 '변신형(變身型)' 설화에 해당한다. 호랑이와 인간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다. 이 설화가 나오게 된 동기는 호랑이가 많이 나타나서 사람을 해치자 호환을 막아달라고 절을 세우고 그런 이야기를 지어냈을 가능성도 있다. 혹은 호랑이가 죽음으로써 상대를 출세시키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호랑이답지 않은 이 행동은 불가능한 조건을 무릅쓰고라도 사랑을 옹호하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최자의 <보한집>에 ‘호랑이와 승려(虎僧)’라는 내용으로 살렸다.

 「김현 설화」는 호랑이가 처녀로 변신하여 김현과 부부의 인연을 맺은 뒤, 자기의 세 형을 살리고 국가의 어지러움을 없애며, 김현을 출세시키기 위하여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는 살신성인을 그 주제로 하고 있다. 호랑이에서 인간으로 변신한 여인은 스스로 목숨을 던져서 성안에 들어온 호랑이가 사람을 해치는 일을 막는다. 김현은 그 아름다운 마음에 감화받아 절을 짓고 좋은 업보를 이어 나간다.

 이 설화를 <삼국유사>에 옮긴 것은 승려 일연(一然)이었다. 자비로운 마음가짐으로 부처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불교적인 가르침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단순한 불교의 교리에서 벗어나 인간 자체의 이름다운 인연과 사랑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신도징 설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국 당나라에 살던 신도징이 야인으로서 한주(漢州) 지방 현위(縣尉)에 임명되어 임소로 가다가 진부현(眞符縣)에 이르러 눈바람을 만났다. 이를 피하여 어느 모사(茅舍)에 들어갔다가 그곳에서 부모와 함께 사는 처녀를 만났다. 그녀는 허름한 차림으로 있었지만, 살결과 얼굴은 매우 아름다웠다. 신도징은 그 집에서 하루를 묵는 동안에 늙은 주인의 후대를 받고, 처녀와 혼인의 예를 올려 그 집의 사위가 되었다.

 그 뒤 신도징은 그 처녀를 데리고 임소에 이르렀다. 봉록은 매우 적었으나 그의 아내가 힘써 살림을 잘 꾸려 나갔고, 또한 1남 1녀를 얻어 그녀는 현모양처가 되었다. 신도징은 임기가 끝나자 가족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아내가 고향을 그리워하여 함께 처가에 갔다.

 그러나 처가의 식구는 아무도 없었다. 아내는 부모를 생각하며 종일토록 울다가 벽 모퉁이에서 호피 한 장을 보고는 크게 웃으며, 그 호피를 쓰자 호랑이로 변하여 나가 버렸다. 이에 놀란 신도징이 두 자녀를 데리고 쫓아가 숲속을 찾아보았으나 끝내 아내의 행적을 알 수 없었다.

 이처럼, <신도징 설화>에서는 호랑이의 구실이 사람에게 이로움을 주는 것보다는, 호랑이가 처녀로 변신하여 신도징과 부부의 인연을 맺고 자식까지 낳아 가정을 이루었으나, 다시 호랑이로 되돌아가 신도징을 배반함으로써 가정을 버린다는 좋지 않은 구실을 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어, 앞의 「김현 설화」 와는 대조를 이룬다. 일연이 호랑이가 아름다운 구실을 하는 「김현 설화」와 모진 구실을 하는 <신도징 설화>를 아울러 <삼국유사>에 삽입시킨 목적은, 호랑이의 아름다운 구실을 내세워 결과적으로 불교적 권선을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김현감호 설화」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신도징 설화>가 중국의 방대한 설화집인 <태평광기>에서 연유되었다는 사실이다. <신도징 설화>가 <태평광기>에 삽입된 <신도징(申屠澄)>과 직결됨으로써, 우리는 일연이 <삼국유사>를 편찬할 당시 이미 <태평광기>를 접하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이로써 중국의 <태평광기>가 이미 13세기에 한국 문헌에 그 내용이 반영되기 시작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