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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김승옥 단편소설 『서울의 달빛 0장』

by 언덕에서 2024. 1. 29.

 

 

김승옥 단편소설 『서울의 달빛 0장』

 

 

김승옥(金承鈺. 1941~ )의 중편소설로 1977년 [문학사상]에 발표되었다.  김승옥은 1941년 전라남도 순천에서 태어났으며 서울대학교 불문과를 졸업하였고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생명연습>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김현, 최하림과 함께 동인지 [산문시대]를 창간하고 여기에 <건(乾)> <환상수첩> 등을 발표하였다.

 김승옥은 1960년대 새로운 문체의 미학, 감수성의 혁명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등단했는데 이 작품은 제1회 [이상 문학상] 수상작이다. 단편소설 『서울의 달빛 0장』은 1970년대 성(性) 관념을 소재로 하면서도 도식성(圖式性)에 빠지지 않고 뛰어난 통찰력과 풍부한 문학적 상상력으로 이 시대의 인간 문제를 그려낸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소설가 김승옥(金承鈺.1941~ )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나는 아내와 이혼하자마자 대학 강사 자리를 그만둔다. 그리고 어머니와 형님 몰래 아파트를 팔아 작은 아파트를 사고 차를 구입하며 나머지는 헤어진 아내에게 줄 예금통장을 만든다. 이혼 후 삶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른다. 갑자기 무수히 많은 위로전화를 받고 술집을 전전하며 수없이 많은 여자들과 동침하면서 스스로에게 환멸을 느낀다.

 아내를 처음 만난 것은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비행기 안이다. 인기탤런트 한영숙인 아내를 처음 본 순간 나는 운명적 예감을 느끼고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결심한다. 결혼할 즈음 나는 전인격적인 사랑의 성취에 감격한다. 성병 경험이 있던 나는 혹시나 하는 염려에 성병 검사까지 받는다.

 그러나 첫날밤 그녀가 처녀가 아님을 안 나는 이후 그녀의 추악한 음부를 보며 구토를 느낀다. 신혼여행 후 나는 요도염에 걸리고 아내는 자연유산이 된다. 아내의 과거에 괴로워하는 가운데 동창생들과 어울린 술자리에 아내가 호스티스로 나타난다.

 나라고 착각하고 있던 이전의 나로부터 점점 멀어짐을 느끼면서도 아내에게 가까이 가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그녀를 완전하게 소유할 수 없다는 좌절감이 더욱 커질 뿐이다. 그 와중에 나는 그 여자의 과거까지도 소유하고 싶은, 불가능한 욕망을 갖고 있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이제 나는 아내를 만나러 가며 다시 시작해 보자는 제안을 할 의향이다.

 그녀에게 예금통장과 도장을 건네며 ‘가끔 놀러 가도 되겠어?’ 하고 묻자 아내는 첫날밤처럼 두 눈을 깜박이며 나를 응시한다.

 

 

 이 작품은 그 표현 문체와 구성에 있어서 참신하고 탄력 있는 양식미가 돋보인다. 또한, 참신한 구어체 문장, 내적 체험의 시간들을 치밀하게 재구성한 플롯, 피상적이고 일시적인 사회성보다는 의식의 내부에서 본질적인 문제를 끌어낸 주제 의식, 그리고 관념이나 정감을 감각적인 영상으로 기술하는 표현 기법 등 문학적 공감을 자아내는 높은 수준과 넓은 폭을 지니고 있다.

 김승옥 소설의 특색은 일상적 소재에서 인간의 기미, 특히 성을 모티브로 포착하여, 그것을 통해 개아의식(個我意識)을 자각해 나가는 데 있고, 그런 의미에서 개체와 전체와의 관계, 인간관계가 중요한 주제로 부각되고 있다. 사랑과 증오, 연민과 분노 등의 교감 문제나 소외의 문제는 모두 이 같은 주제의식과 관련되고 있으며, 밀도 있는 유려한 문체로 그의 소설을 성공으로 이끌고 있다. 그의 작품 세계는 주로 자기 존재 이유의 확인을 통해 지적 패배주의나 윤리적인 자기 도피를 극복해 보려는 작가의식을 보이고 있다. 그는 한국 소설의 언어적 감수성을 세련시킨 작가로 평가받고 있으며, 평자들은 흔히 그를 내성적 기교주의자의 대표적 작가로 내세운다.

 

 

 결혼과 이혼이라는 모티프를 통해 가족의 사회적 의미와 1970년대 삶에 대한 은유가 담겨 있는 이 소설은 모든 것을 자본(돈)으로 교환할 수 있다는 부패한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환멸을 표현하고 있다. 나와 아내인 한영숙은 성과 사랑까지도 돈으로 교환할 수 있다는 타락한 사회에 살고 있지만 자신들조차 뚜렷한 세계관이나 가치관을 가지지 못한 타락한 인물들이다.

 이 소설을 통하여 작가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은 근대화, 산업화, 도시화로 규정될 수 있는 1970년대적 사회이다. 인간에 대한 가치가 상실되고 대신 돈과 가짜 욕망이 출렁이는 사회에서 두 남녀의 만남과 관계가 어떻게 어그러지는가를 여실히 보여주지만 참다운 삶을 위한 비전이나 대안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