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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박완서 장편소설 『도시의 흉년』

by 언덕에서 2024. 5. 22.

 

박완서 장편소설 『도시의 흉년』

 

박완서(朴婉緖, 1931∼2011)의 장편소설로 1979년 「문학사상」에 연재되었다. 박완서는 작품 속에서 중산층의 소시민적 삶의 방식과 현실 풍속을 예리한 시각으로 비판하고 있다.

 박완서는 일제 강점기, 해방, 6.25, 민주주의 확산, 계층 격차 심화 등 삶의 여정에서 경험한 한국 사회의 빠르고 굵직한 변화상을 문학으로 끌어들였다. 한 개인의 문제를 사회적 소용돌이 속에서 해석하고, 한국 사회가 간과하던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관통함으로써, 문학의 역할을 현 사회상을 반영하고 문제의식을 환기시키는 것으로 확장시켰다. 그의 작품세계는 막힘없는 유려한 문체와 일상과 인간관계에 대한 중년여성 특유의 섬세하고 현실적인 감각이 결합되어 더욱 빛을 발한다. 끔찍할 정도로 생생하게 현실을 그려낼 뿐 아니라, 치밀한 심리묘사와 능청스러운 익살, 삶에 대한 애착, 핏줄에 대한 애정과 일상에 대한 안정된 감각이 있다.

 이 작가는 집단 속에 갇힌 개인의 상황을, 여성다운 따뜻한 면으로 감싸고 이해하는 소설 미학을 가진 작가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소설은 한국문학의 성숙을 보여주는 단적인 지표이다. 이 작품은 1988년, MBC TV에서 김지인 연출, 박순애, 김영철 주연으로 드라마화되기도 했다.

1988년 드라마 <도시의 흉년>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지수연은 쌍둥이 자매로 태어난다. 그러나 수연은 쌍둥이 남매는 상피 붙는다는 할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이모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된다. 그 후 국민학교에 들어갈 무렵, 할머니의 싸늘한 눈총을 받으며 부모의 품으로 돌아오지만 차별 대우 속에서 쓸쓸한 나날을 보낸다.

 1ㆍ4 후퇴 때 빈집을 털고, 양공주의 포주 노릇으로 돈을 모아 동대문 시장의 거부로 떠오른 수연의 엄마는 초등학생인 수빈과 수연의 뒷바라지에 물질적으로 최선을 다한다. 그 후, 수연은 여자대학에 입학하고, 수빈은 1년을 재수하여 서울대학에 입학한다.

 수빈은 대학 재학 중, 돈이면 만사가 다 해결된다는 어머니와 집안의 가치관에 환멸을 느껴, 도피처로 군에 입대한다. 군 입대 전, 사랑을 느꼈던 가난한 판잣집의 여대생 순정과의 중간 연락을 수연에게 부탁한다. 군에 간 수빈과 가난한 여대생의 연락원 노릇을 하던 수연은 집에서 금덩이를 훔쳐다가 첩 살림을 하는 아버지를 판자촌 동네에서 발견하곤 당황한다. 결국 수연은 군에 간 오빠의 뒷바라지를 빌미로 횡령한 돈을 아버지의 첩 살림에 보태주게 된다. 대신 아버지가 훔친 금덩이를 아버지(지대풍)가 직접 집에 가져다 놓게 함으로써 가정의 평온을 꾀한다.

 그런데 아들을 낳은 지대풍의 첩은 절름발이라는 약점을 이용해 교묘하게 수연과 그의 집에 접근해 온다. 그러나 수연은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첩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이 무렵 수연의 언니 수희는 법관인 서재호와 약혼을 한다. 그러나 일류병에 걸려 허세와 사치만을 좇는 어머니의 하수인 노릇을 하고 있는 수희를 시기한 수연은 형부가 될 그 남자를 일부러 유혹하여 자신의 몸을 바친다. 언니의 행복에 불행한 복선을 긋기 위해서다. 그 후 언니는 결혼을 하나 보이지 않는 불행을 잉태하고 결국에 가서는 이혼을 하고 만다.

 또한 그 무렵 휴가 나온 수빈은 순정과 장래를 약속한다. 그러나 물질 만능주의 가치관을 가진 어머니에 부딪쳐 귀대를 하루 앞둔 날 저녁, 심한 좌절감에 빠져 만취가 된 채 괴로워한다. 그날 밤 잠을 자던 수연은 수빈의 괴로움을 쌍둥이 특유의 예지력으로 예감하고 정신없이 속옷 바람으로 차고 속에서 괴로워하는 수빈을 도와주려다가 집안사람들에게 상피 붙는다는 오해를 받고 심한 구타를 당한다. 그리고 며칠 전 집에 와 있던 대고모 할머니로부터 집안의 내력을 듣고 상피 붙는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그다음 날 아침, 수연은 자신의 결백을 이야기하러 어머니에게 갔다가 최기사와 어머니의 불륜을 목격하게 되고 아버지의 첩 이야기를 한다. 결국 가정에 파탄이 오고, 할머니는 절에 있는 양로원에 들어가게 되고, 수연이 어머니는 반신불수가 된다.

 그리고 수빈은 순정과 결혼하여 그들이 바라던 가정을 꾸려 평온을 찾는다. 수연은 집을 나와 구주현이라는 애인을 면회갔을 때 만난 성미영의 집에 기거하면서 구주현이 경영하던 야간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구주현의 석방을 기다린다. 그 후 석방된 구주현이 얼마 전 별세한 아버지의 고향으로 돌아가자, 수연도 그를 따라가 그와 함께 영원한 안식을 얻는다.

1979년 초판 <도시의 흉년>

 

 20대 여대생인 주인공 수연은 수빈과 일란성쌍둥이다. 쌍둥이는 상피 붙는다는 할머니의 확고한 믿음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쌍둥이 오빠 수빈과는 대조적으로 억압받으며 살아온 수연은 돈 벌기에 혈안이 되어 갖은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 실질적 가장인 어머니의 욕망과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뒤로한 채 비도덕적인 삶을 영위하는 아버지의 부정, 돈만을 노리고 접근하는 사람들을 목도하며 어른들의 미신으로 억압받고 있는 자신의 운명을 이겨내려 애쓴다. 그러나 20대 수연이 이겨내기엔 어른들이 만든 틀은 완고하나, 논리는 비틀려 있다.

 어른들 세대의 미신이 자유로운 정신에 얼마나 큰 제약을 주는지 보여주기 위해 박완서는 상피 붙는다는 극적인 미신을 『도시의 흉년』 속으로 끌어들여 어른들이 만든 잔혹한 세상을 젊은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극복해나가고자 하는지 그려냈다.

 

 

 이 작품에서 박완서는 개인의 삶이 얼마나 사회와 밀착되어 있으며, 개인 개인이 겪는 슬픔과 기쁨, 아픔과 환희, 그리고 성공과 실패가 사회 현실의 전체적인 맥락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 준다. 그리고 구체적인 생활 체험에 뿌리를 내린 날카로운 직관력과 만만치 않은 언어 감각은 박완서의 작가적 재능을 엿보게 한다.

 그의 소설들은 개인과 사회라는 추상적인 실체들의 관념적인 상호 작용의 해부에 머물지 않고, 개인의 가장 깊은 내면적 충동과 두려움 속에서 구체적인 현실과 개인의 의식이 어떻게 만나며, 어떤 매듭을 이루며, 그 매듭 안에서 어떻게 개인과 사회가 동시에 도덕적ㆍ정신적으로 마비되고 붕괴되는가 하는 통찰을 보여 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도시의 흉년」은 예리한 비판 의식, 섬세한 심리 묘사, 밀도 있는 드라마로써 도시 속의 인간 세태를 극점까지 추적하여 부(富)를 우상화하던 70~80년대 한국인들의 삶의 현실과 내면을 파헤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