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터니 버지스 장편소설 『시계태엽 오렌지(A Clockwork Orange)』
영국 작가 앤터니 버지스(Anthony Burgess, 1917~1993)의 소설로 1962년 런던에서 초판 출판되었다. <시계태엽장치 오렌지>라는 제명으로도 국내에 발표되었다. 이 소설은 1971년 스탠리 큐브릭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어 더욱 유명해졌다. 이 세상에서 특별한 수단으로 악을 추방할 수 있는가의 문제와 개인의 폭력과 국가적 폭력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등 철학적 문제를 다룬 소설로서, 주인공 알렉스를 통해 그를 둘러싸고 있는 완고하고 냉정한 어른들의 세계를 비판한다. 인위적인 공상과학 세계에서 불량 청소년들은 이른바 '나스다트'라는 독특한 언어를 사용한다.
버지스는 작가인 동시에 고전 음악 애호가이자 작곡가였다. 그의 관심사 중 하나는 음악적 요소를 문학 속에 통합하는 것이었으며,『시계태엽 오렌지』는 그러한 시도의 정점에 있는 작품이다. 전체 3부 구조인 이 작품은 각각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3부의 후반부 장들은 1부의 전반부 장들을 형식적으로 반복하되, 내용적으로 반전(反轉)시키는 대구를 이룬다. 이러한 반전의 기법은 소나타의 론도 형식, 혹은 교향곡의 상승, 하강과 유사한 효과를 가진다.
예를 들어, 1부 3장에는 알렉스가 코로바 밀크 바에 앉아 죽음에 관한 아름다운 아리아를 듣는 장면이 나오는데, 3부 5장에 가면 음악에 고문당하다시피 하다가 그가 자살을 시도하게 되는 식이다. 음악적 구성과 더불어 이 작품의 뚜렷한 개성은 알렉스와 그의 친구들이 구사하는 십 대들의 은어 및 비어인 나드삿(NADSAT)에서 잘 드러난다. 작품 속의 독특한 어휘들은 당시 런던 지역의 방언인 ‘코크니(cockney)’에서 착안, 러시아어에 기초하여 직접 고안해 내었다. 그는 언어학에 관한 저서들을 냈을 만큼 언어 문제에 관심이 컸으며, 일상 언어와 문학 언어의 특질에 관한 연구에 몰두하기도 했다. 이 작품에서 버지스가 발명해 낸 비어(비어)는 알렉스와 그 또래들의 사회적 소외와 일탈성, 배타성을 드러내며, 독자로 하여금 끊임없이 문맥과 음성적 유사성에 따라 단어의 의미를 유추하게 만드는 효과 또한 지닌다. 문학 언어의 특성을 일상 언어에 대한 의심과 반성에서 찾는 그의 언어관은 반성적 주체로서의 인간에 대한 탐구라는 작품의 주제와 맞물려 있다.
이 소설『시계태엽 오렌지(A Clockwork Orange)』에서 작중 15세의 주인공 알렉스와 패거리들은 사람들을 두들겨 패고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고 강간을 하는 등 나쁜 짓을 일삼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알렉스는 살인을 저지른 뒤에 붙잡혀 국가에서 실시하는 교정 프로그램을 받게 되고 완전한 평화주의자로 길들여진다. 석방된 뒤 알렉스는 그가 과거에 습격하여 행패를 부린 사람들로부터 복수를 당한다. 이 소설은 주인공들의 온갖 나쁜 행동과 욕설 등으로 폭력을 부추긴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으나, 심오한 철학적 문제를 다룬 진지한 책으로 평가받았다. 한 불량소년이 기계처럼 교화되어 가는 과정을 통하여 인간의 본성이 정부에 의해 통제되는 미래사회를 풍자적으로 그리고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가까운 미래의 런던. 알렉스와 그의 세 친구들 피트, 조지, 팀은 미래의 방황하는 청소년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학교에도 가지 않고 그들은 코로바 우유가게(마약의 함유된 우유를 파는 가계)에 드나들며 여기저기서 온갖 비행을 일삼는다. 결국 나레이터이자 주인공인 알렉스는 친구들의 배신으로 감화원에 들어가게 된다.
감화원에서 자의에 의해 루드비코 치료원으로 간 알렉스는 온갖 고통 속에서 치료 아닌 치료(세뇌교육)을 받고 사회로 환원되나 그가 이전에 저지른 비인간적인 비행의 대가로서 피해자들로부터 다시 고통을 받게 된다. 결국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창 밖으로 투신하여 병원으로 실려간다.
그러나 병원에서 의식을 회복했을 때는 정부 시책의 하나였던 루드비코 치료법(인권을 말살하는 비인간적인 치료법)에 대한 유권자들의 비난을 무마시키기 위해 병문안을 온 정부관리는 알 수 없는 미소를 띠며 알렉스와 손을 잡는다. 그리고 고상하게 차려입은 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 여인과의 섹스를 상상하며 알렉스는 중얼거린다.
"나는 완전히 치유되었다."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하고 논쟁적인 주제는 등장인물 중 작가 알렉산더와 교도소 신부의 말 속에서 반복된다. 개인의 선택과 자유 의지가 없다면 인간은 더 이상 온전한 인간일 수 없으며 다만 태엽 달린 오렌지처럼 수동적인 기계 장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는 개인의 차원에서뿐 아니라 사회의 변화에서도 마찬가지다. 구성원들의 선택과 동의 없이 실행되는 모든 사회적 결정은 원천적으로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자유 의지의 무조건적 긍정은 주인공 알렉스의 무차별적 폭력의 자유와 맞물리며 보다 첨예한 문제의식을 요구한다.
버지스는 알렉스가 저지르는 폭력과 공동체에 미치는 해악의 강도를 극단화하면서 ‘개인의 자유를 옹호한다면, 폭력의 자유까지 인정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버지스는 선과 악, 그리고 자유의 한계라는 통념을 모두 거스르는 인물로 알렉스를 설정함으로써, 자유와 윤리에 대한 상식적인 논리의 구도를 깨뜨리려 한다. 알렉스는 범죄를 저지르지만, 아직 열다섯 살에 불과한 미성년자이며, 자신의 행위의 영향이나 의미에 대해 알지 못한다. 또한 대중문화의 사회 통제적 속성에 반감을 갖고 있으며 고급문화의 향유자이기도 하다. 절대적인 선인도 악인도 아닌 미성숙한 인물, 모든 통제에 반대하며 절대적인 자유를 원하나 그 자유의 한계를 의식하지 못하는 완벽한 반항아로서 알렉스는 윤리적, 문화적, 세계관적 자기모순에 빠진 현대인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재현한다.
현대인에게 선과 악이란, 그것이 종교적인 덕목이든 공동체의 규범이든 법적인 규칙이든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며, 마찬가지로 자유 의지 또한 선이나 악 어느 한쪽으로 정향(定向)되어 있지 않다. 여기에 어떤 강요나 억압이 가해질 때, 즉 순수한 개인의 선택이 아닌 경우, 그것은 인정될 수 없다고 버지스는 역설한다.
♣
작품의 배경인 미래의 런던은 온갖 범죄가 난무하며 이에 맞서는 사회 통제 또한 범죄의 강도에 못지않은 폭력성을 지닌 암울한 디스토피아다. 학교나 교도소 등의 국가 장치는 아무 구실도 하지 못하며, 오직 순응적 인간과 비순응적 인간을 격리하는 데 주력할 뿐이다. 알렉스의 폭력성과 비규범성이 이러한 환경에 의해 생겨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가 체포된 후 겪는 교도소 생활은, 환경적 요인으로써 인간의 심성을 변화시키려는 의도가 무용함을 보여 준다.
알렉스가 자원하여 받는 루도비코 요법은, 인위적인 실험을 통해 인간의 범죄적 속성을 통제하려는 환경 결정론의 극단화된 형태다. 피실험자는 인간으로서의 주체성을 상실하고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자기 변화의 가능성을 빼앗긴다. 버지스가 보기에 이와 같은 환경 결정론의 오류는 죄악의 근원을 따져 보려는 사고방식이 일종의 무균질 인간이라는 허구를 전제하고, 한 인간이 겪는 복잡다단한 삶의 이력을 통제하거나 변형할 수 있다는 인위적 시술의 가능성을 상정하는 데 있다. 버지스가 교도소 신부의 입을 빌려 펼치는 “악을 선택하는 사람이 강요된 선을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보다는 낫지 않을까?”라는 모순적인 주장은, 무엇이 좀 더 인간적인가라는 반문이며, 그 토대 위에서 개인의 삶과 공동체 조건의 개선 가능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죄악의 근원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이러한 인간적 진실의 질문, 즉 자신의 사고와 행위에 대한 반성의 기회가 점차 박탈되어 왔으며, 현대에 들어와 그 양상이 더욱 심화되었다는 데 있다. 신화와 종교, 사회적 기제라는 외부의 권위와 위협 속에서 한 개인이 자유롭게 사고하고 반성할 수 있는 여지는 점점 줄어들어 왔다. 특히 사회 통제의 장치가 고도화되고 대중 매체의 영향력은 절대적으로 커져, 사유하고 반성하는 주체로서 인간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고 할 수 있다. 작품 제목 그대로 태엽 장치를 달고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이 주체적인 반성의 능력을 잃어버리면서, 윤리와 도덕에 대한 의식 또한 상실할 위기에 처해 있으며, 이러한 조건이 곧 죄악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영화 ‘시계태엽장치 오렌지’>
영국 작가 앤터니 버지스(Anthony Burgess)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1971년 호크 필름스(Hawk Films Ltd.), 폴러리스 프로덕션스(Polaris Productions), 워너브라더스 픽처스(Warner Brothers Pictures)가 공동으로 제작하였다.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이 감독하고 맬컴 맥도웰(Malcolm McDowell), 패트릭 매지(Patrick Magee), 필립 스톤(Philip Stone) 등이 출연하였다. 감독과 저자가 공동으로 각본을 썼다.
인간을 기계처럼 교화시키는 미래사회를 풍자적으로 그린 영화로 버지스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아내가 미군 병사에게 윤간을 당한 뒤 학살당한 처참한 기억을 바탕으로 현대인의 폭력성을 규명하고자 영화작업에 참여하였다. 한 불량소년이 기계처럼 교화되어가는 과정을 통하여 인간의 본성이 정부에 의해 통제되는 미래사회를 풍자적으로 그리고 있다.
지나친 폭력 묘사가 논란이 되어 영국에서는 수십 년 간 상영이 금지되었고 미국에서는 X등급을 받았으나 뛰어난 작품 성으로 1971년 뉴욕 비평가협회에서 주는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하였다.
친구들과 어울려 강간과 살인 등의 비행을 일삼던 알렉스(맬컴 맥도웰)는 친구들의 배신으로 감화원에 들어가게 된다. 정부는 새롭게 개발한 '루드비코 요법'의 실험대상으로 그를 선택하고 실험을 통하여 알렉스는 폭력이나 성적충동을 느끼면 심한 구토를 느끼도록 개조된다.
석방된 알렉스는 예전에 자신이 괴롭혔던 사람들에 의해 잔인한 보복을 당하고 괴로움을 참지 못해 자살을 기도하다가 병원으로 실려간다. 의식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알렉스가 받은 비인간적인 실험의 실상이 공개되자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병문안을 온 정부관리는 신문기자들 앞에서 알렉스의 손을 잡는다. 사방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자 알렉스는 한 여인과의 섹스를 상상하며 자신은 치유되었다고 중얼거린다는 줄거리다.
'외국 현대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스토옙스키 장편소설 『지하 생활자의 수기(Записки из подполья)』 (2) | 2024.08.22 |
---|---|
노발리스 장편소설 『푸른 꽃(Heinrich von Ofterdingen)』 (0) | 2024.07.19 |
만초니 역사소설 『약혼자(Promessi Sposi)』 (0) | 2024.07.06 |
스탕달 장편소설 『파르므의 수도원(La Chartreuse de Parme)』 (28) | 2024.06.22 |
발자크 장편소설 『랑제 공작부인(Antoinette de Langeais)』 (6) | 2024.05.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