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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미하일 바쿠닌(Mikhail Aleksandrovich Bakunin)

by 언덕에서 2024. 4. 20.

 

 

미하일 바쿠닌(Mikhail Aleksandrovich Bakunin.1814∼1876)

 

 

러시아 혁명가. 무정부주의와 인민주의의 지도자. 트베리주 출생. 포병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군대에서 복무하다가 철학에 관심을 가져 퇴역하였다. 모스크바에 살면서 N.V. 스탄케비치의 서클에 가입하여 V.G. 벨린스키·A.I. 헤르첸 등과 어울려 독일 관념론철학, 특히 J.G. 피히테와 G.W.F. 헤겔의 철학을 공부하였다.

 1842년 독일 베를린대학에 유학, 헤겔좌파로 급속히 기울었다. 1848∼1849년의 혁명에 참가하여 드레스덴봉기를 주도, 작센의 경찰에게 체포되어 러시아정부에 인도되고, 시베리아유형살이를 하였다. 1861년에 탈출하여 런던으로 건너가, 거기서 러시아의 전제(專制)에 대항하여 일어난 폴란드국민들의 반란을 지지하며 러시아 국내의 청년들에게 혁명을 호소하였다. K. 마르크스의 이론을 중앙집권적인 위로부터의 사회주의라고 비판하고, 이에 대항하여 밑으로부터의 자유의지에 입각한 연합과 무정부를 주장하였다.

 이러한 바쿠닌의 사상은 이탈리아·스위스·에스파냐의 사회주의와 무정부주의 혁명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 뒤 1870년의 리옹봉기, 1874년 볼로냐봉기에 참가한 뒤 스위스 베른에서 병사하였다.

 미하일 바쿠닌은 조제프 프루동과 함께 19세기 무정부주의의 주창자로 평가되고 있다. 논리적인 이론체계가 마련된 것도 아니고 의욕에 찬 방대한 저술들은 미완성인 경우가 많았지만 바쿠닌의 명성과 매력은 유럽 곳곳에 숱한 추종세력을 형성시켰다. 영국ㆍ스위스ㆍ독일에 적은 수이지만 무정부주의 조직이 구축되었고 프랑스에서는 비교적 프루동주의에 가까웠지만 아나르코-생디칼리스트들이 세력을 과시했다.

 이탈리아 및 스페인에서 바쿠닌주의적 무정부주의 운동은 계속 융성했으며 특히 1936년까지 스페인의 사회주의 혁명운동을 주도한 세력은 미하일 알렉산드로비치 바쿠닌의 후예들이었다.

【저서】<신과 국가>(1871) <국가와 무정부>(18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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