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강술래’의 어원
이제는 이 고유한 민속으로서의 원무(圓舞)가 차차 스러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지만, 전라도, 특히 도서지방을 인근한 곳에서는 휘영청 밝은 가을달 아래 아름답게 메아리쳐 가던 ‘강강술래’였다.
이희승 편 <국어대사전>에서 ‘강강 수월래’를 찾아보면, ‘부녀자들의 민속적인 원무. 강강 수월래라고 소리를 하면서 둥글게 늘어서서 추는 춤인데, 임진란 때부터 유래하여, 목포·남해도 등에 성행함’이라는 뜻풀이가 되어 있다. 여기서도 ‘강한 오랑캐가 물을 건너온다’는 뜻을 지닌 한자로서의 표기 ‘强羌水越來’는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강강술래가 임진왜란 때 생겨났다고 하는 점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이설이 많다. 임진왜란 때 생긴 것이란다면, 이충무공의 <난중일기>에 한 줄이라도 비쳤어야 옳을 게 아니냐는 이야기 같은 것이다.
어떤 뜻에서건 그것이 팔월 한가위를 중심해서의 민속적인 놀이이고 보면, 농업과 관계를 짓는 것이 아니겠느냐, 따라서 반드시 임진왜란 때 생겼다기보다는 훨씬 이전부터의 일종의 추수감사의 성격을 띤 놀이라고 봄이 마땅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는 학자들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학설은 타당성을 띤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강강술래는 한가위로 다가서면서 또는 지내고서도 아주 성행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댕기를 늘어뜨린 동네 처녀들이 모여 처음에는 ‘가-앙, 가-앙, 수-울래’ 하며 늘어진 소리를 내다가 한가운데 서서 사설(이것을 해남지방에서는 설소리라 한 것 같다) 외는 이가 차츰 템포를 빨리 해 나가노라면, 원무도 그 템포 따라 빨라지고, 나중에는 그 치렁치렁한 댕기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품이 지금 생각하면 달빛 아래 로망, 그것이 아니었던가 기억되고 있다. 무용과 가사는 항시 공존했던 고대의 제정일치시대(祭政一致時代)를 생각한다더라도, ‘강강술래’는 우리 겨레가 농사를 지어 신에게 감사드릴 줄 알았던 그런 시기의 자연발생적인 공동무용 형태였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강강’의 ‘강’은 둥긂(원)을 나타내는 호남지방의 방언이고, ‘술래’는 ‘수레’, 즉 그 또한 ‘輪’읋 나타내므로, ‘둥글게 둥글게 돌자’는 뜻을 갖는다는 것이 김정업님의 설이었다. 한편 정익섭님은, ‘강강’은 징이나 꽹과리 같은 악기를 울릴 때 나오는 ‘꽹꽹’ㆍ‘꽝꽝’ 소리를 그대로 옮긴 것이며. ‘술래’는 수레(輪)‘, 옛말 '술위'에서 왔다, 따라서 '술위'에는 '둥글다', '서리다' 따위 뜻이 있으므로, 결국 '강강술래'는 '강강소리(징이나 꽹과리 소리)에 맞춰 둥글게 돌다', 또는 ‘강강소리에 맞춰 둥글게 서리다’의 뜻이 아니겠느냐고도 말하고 있다.
최상수님은, ‘강강’에 대해서는 호남지방의 방언인 ‘원(둥긂)이라 했지만, ‘술래’는 한자말 ‘순라(巡邏)’에 연유하므로 결국 ‘주위를 경계하라’는 말이라고 주장했다. 최 교수의 이러한 풀이는 임진왜란 때 발생한 것이라는 밑받침으로서 나온 말이었다.
한편 가람 이병기님은 ‘강강술래’라는 말에는 별 뜻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한 일이 있었다. 우리의 민요 또는 가요의 후렴 같은 곳에 있는, 아무 뜻이 없는 일련의 말들과 같은 경우로 생각한 것이었으리라.
‘강강 수월래’냐 ‘강강술래’냐에 대해서도 말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수월래’는 한자의 ‘水越來’를 생각하면서의 갖다 붙임 같은 느낌이 없잖아 있다. 또 ‘술'을 길게 늘여 발음하다 보면, ‘수울-수월’로 소리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말밑(語源)으로서의 ‘술래’ 그것이 옳지 않나 생각된다. 사실, 해남이 고향인 필자가 어린 날 실제로 들었던 소리도 ‘술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옛날부터 있어온 민속무용, 시들해져 가고 있는 현실이 애달프다.
-박갑천: <어원수필(語源隨筆)>(19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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