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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보이콧(Boycott)’의 어원

by 언덕에서 2024. 4. 13.

 

‘보이콧(Boycott)’의 어원

 

 

 “누가 보이콧 놨냐 말이다, 네가 논 게 아니라, 그래, 상대방이 논 걸 네가 당했다는 말이지?”

 맞선 보고 온 동생의 보고를 받은 언니의 눈썹이 치켜진다.

 “아니 그래. 제 따위가 뭔데 보이콧하더란 말이야. 나 원 참. 그래 가만 두었어?”

 유엔의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소련이 보이콧 전술로 잘 나와 그 때문에 조금씩 자주 쓰이는 정치적 언어인 양 싶던 보이콧은 이제, 반대ㆍ배척의 뜻으로라면 어디서고 쓰이게 된 말이다. 사전을 찾아보니,

 ① 어떠한 일에 있어서 교제를 거절하기로 한 동맹,

 ② 불매동맹(不買同盟)

으로 나와 있어 복수적인 유대(紐帶) 감각의 냄새를 풍기는 것인데, 본디의 뜻이야 어쨌건 ‘비토(veto)' 같은 뜻으로, ‘거부권’이라고도 쓰이고, 맞선뿐 아니라 가장으로서 직장의 장으로서 친구로서, 하여간 반대ㆍ배척이면 쓰이게 되었다.

 이 말이 맨 처음 쓰인 것은 영국이었다. 아주 그럴듯한 말이었던지, 독일ㆍ프랑스 등 여러 나라에서 받아들여 쓰이게 되었는데, 본디 에이레의 지주의 마름이었던 보이콧(Captain Boycott: 1832∼1897)이라는 사람의 이름에서 연유하고 있다. 이 마름 양반께서는 어지간히 깍쟁이고 또 표독하게 굴었던 양 싶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천석꾼ㆍ만석꾼 지주보다도 그 손발인 마름 양반들의 행패가 심했던 역사를 가졌거니와, 양(洋)의 동서에도 별다른 차이는 없는 듯, 아무튼 이 친구는 농민들한테서 배척받는 건 말할 것도 없거니와 같은 처지의 마름, 나아가서는 지주들한테서까지 따돌림을 받게 되어 모든 교섭이 단절되어 버렸다.

 이게 1880년께의 일이어서 이 친구로 하여 생겨난 보이콧이라는 말인 것이다. 그러니까 본디의 뜻을 찾는다면, 배척 쪽에 강점이 있는 것이었는데, 배척을 하다 보니까 그것이 ‘거부’로도 나타나게 되었던 것 같다. 하기야 배척이나 거부나 종이 한 장의 차이이긴 하다. 그래서 우리나라 국회의 경우, 예산안 심의를 보이콧하기로 결의했다는 야당의 심사를 짚어보면, 예산 심의를 배척한다는 뜻과 거부한다는 뜻이 함께 곁들여 있었던 것이리라.

 이제 40을 넘은 노처녀가 목욕을 하고 나와 거울 앞에 제 몸뚱이를 비추어보면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보이콧에 관계된다.

 “그래, 나도 너무했어. 핑핑하던 내 육체도 인젠 시들어가는구나. 그래, 너무했지 뭐야. 세상 남자란 게 다 시시해 보여서 만나는 족족 보이콧 놓았던 게 잘못이었어. 인젠 내가 보이콧당할 처지인데, 보이콧당해도 좋으니, 만나봐 주기만이라도 했으면 좋겠어!”

 

 

 

박갑천 : <어원수필(語源隨筆)>(19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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