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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희곡

유치진 희곡 『토막(土幕)』

by 언덕에서 2024. 11. 7.

 

유치진 희곡 『토막(土幕)』

 

유치진(柳致眞, 1905~1974)이 지은 2막으로 된 장막희곡이며 그의 처녀작이다. 1931년 12월에서 1932년 1월에 걸쳐 [문예월간]에 게재되었으며, 1933년 2월 [극예술연구회]에서 공연하였다. 작가의 첫 희곡이자 동시에 [극예술연구회]의 첫 창작극이었다. 1920년대의 우리 농촌을 배경으로 최명서와 강경선이라는 빈농들의 집안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일제에 수탈당하여 가난에 허덕이는 소작농의 참상을 소재로 한 것이며, 이러한 유의 농촌 드라마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1920년대 절망적인 농촌을 배경, 일제의 악랄한 수탈상, 이에 대한 삶의 몸부림과 저항을 담고 있다. '토막'이라는 어둡고 숨 막힐 듯한 분위기를 바탕에 깔고, 그 위에서 삶의 기반을 상실하고 철저하게 파멸해 가는 한 가정의 비극을 통해 일제하의 참담한 민족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명서와 명서의 처는 일본에 간 아들 명수만을 믿고 의지하며, 이제는 명수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가난한 농촌의 부부이다. 이웃에 사는 경선과 경선의 처는 장릿쌀 가마니를 꾸어다 먹은 것으로 잡행이 나와 집을 빼앗긴다. 그러던 중, 구장이 명서의 아들 명수가 해방 운동을 하다 종신징역살이를 하게 되었다는 기사와 함께, 명수의 사진이 실린 신문을 가지고 찾아온다.

 구장은 명수가 하는 해방 운동이란 것이 훔치기와 같은 것이라 말해 준다. 그러나 명수의 여동생 금녀는, 처음에는 구장의 말만을 믿고 오빠가 한 일이 무엇인지를 잘 알지 못하다가 점차 그 일이 우리 민족을 일제의 억압과 그로 인한 절망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것임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한편, 집을 빼앗겨 처자를 고향에 남겨두고 떠돌이 등짐장사를 하던 경선이가 돌아와 처자를 데리고 야반도주를 한다. 어느 날, 명서의 집에 일본으로 건너간 동네 청년 삼조에게서 소포가 오게 된다. 비로 명서 가족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아들 명수의 백골 상자였던 것이다.

한국 연극의 개척자이지만 연극계 대표 친일 매국노로 추락한 인물. 지금까지도 친일 논란의 한 가운데 서 있는 극작가 유치진이 올해로 탄생 110주년을 맞았다. 그의 첫 희곡 ‘토막’이 오는 11월1일까지 일정으로 지난 22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 위에 올랐다. /사진제공=국립극단

 

 ▶제1막 : 막이 열리면 문자 그대로 오두막집이 나오고 거기에 명서의 처가 남편을 나무라는 장면이 나타난다. 그녀의 남편 명서는 일본에 건너간 아들에게 편지를 쓰는 중이다. 마침, 삼조라는 동리 청년이 일본에 건너간다. 그 인편에 역시 일본에 건너가 있는 아들에게 사연을 전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 편지가 며칠 걸려도 완성되지 못했다. 이에 명서의 처가 남편에게 닦달질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남편은 여전히 꾸물댄다.

 그러는 동안에 삼조는 길 떠난 채비를 다한 차림으로 나타난다. 이제 아들에게 쓰는 편지를 다 써서 보내기에는 틀린 셈이다. 부득이 명서 일가는 아들에게 전할 사연을 말로 한다. 그 내용은 대충 아들한테 곧 고향으로 나오라는 말들이다. 그러지 못하면 돈이라도 부치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그들은 가난에 찌들 대로 찌들었다. 그 숨통을 아들을 통해 열어보자는 속셈들이 뚜렷이 나타난다. 삼조를 떠나보내고 또, 이웃 사람들이 쪼들리는 살림에 다투는 모양들이 나타나면서 구장이 등장한다. 그의 손에는 신문지가 들려 있다.

 구장은 명수가 잡혀 들어갔다고 말한다. 영서와 명서의 처는 물론 그 까닭을 묻는다. 구장은 그 죄목이 해방운동을 했다는 것이라고 알린다. 명서 일가는 물론 그걸 믿지 않는다. 세상에는 같은 이름 가진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명서는 구장에게 불길한 소식을 가져왔다고 화를 낸다. 구장도 화가 나고 어처구니가 없어하면서 퇴장해 버린다. 명서도 불길한 생각에 넋을 잃는다.

 ▶제2막 : 명서네 이웃에 사는 경선과 경선의 처가 나타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전에 경선이는 가난에 시달리다 못해 부부 싸움을 하고 떠돌이를 한 사람이다. 그가 나간 동안에 그들을 집까지 남의 손에 넘겼다. 그리하여 밤에 몰래 일가족이 도망치기 위해 잠깐 나타난 것이다. 그들을 보내는 명서네의 심정도 참담하다. 경선네를 보낸 다음 명서의 처는 별안간 정신이상의 증상을 보인다. 오랜 가난에 아들명수의 소식을 듣지 못한 긴장이 겹친 탓이다.

 그때 밖에서 우체부가 나타난다. 우체부는 소포를 전한다. 그 소포는 명수네 일가가 목이 빠져라고 기다린 아들 명수가 보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삼조가 보낸 것이다. 내용을 펴보는 그들은 크게 놀란다. 거기에는 백골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야 궤짝에 쓰인 글자가 눈에 띈다. '최명수의 백골' 결국 명수는 그들을 하늘 같이 믿는 명서네 일가 앞에 백골로 나타난 것이다.

 

 

 동랑 유치진은 1920년∼1930년대 당시의 현실적인 모순 속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우리 민족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작가였다. 체념과 허탈 속에서도 웃음으로 넘기고 있으며, 절망의 구렁텅이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을 보여주고 있다. 짓밟히고 뿌리가 뽑혀도 우리 민족의 생명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시대에서 숙명적으로 리얼리즘의 세례를 받은'(작가의 말) 유치진은 이 작품을 시작으로 <버드나무 선 동네 풍경>(1933) <소>(1934) 등 당시의 농촌현실을 고발한 일련의 작품을 쓰게 된다.

 작가는 뒤에 이 작품에 대하여 '이 만큼이라도 관객의 마음을 포착한 것은 작품이 예술적인 것보다 자기표현에 굶주린 우리 관중에게 우리의 병든 현실을 추출해 준 데서 온' 것이라고 하였다. 한 작가가 '병든 현실'에 과감히 직면해서 쓴 작품으로, 솔직하고 침통하게 비극적 현실을 파헤치려는 작가정신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 작품은 1920년대 우리 농촌의 비참한 현실을 '토막'에 비유하여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토막'이란 움막 내지는 움집을 말하는데, 당시 우리 민족이 살던 현장으로 주인공들이 그곳에서 생활한다. 이런 곳에서 생활하는 우리 농가가 일제의 농촌 수탈로 인하여 피폐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작품 전체에서 풍기는 토막이라는 고정 무대의 설정과 대사에 의해 침울하고 암울하게 사건이 전개된다. 최명서의 일제에 대한 반항적인 어조, 그리고 금녀의 주제 의식이 섞인 대사 등이 주목된다.

 이 작품은 [극예술연구회]에 의해 초연되었다. 1920∼30년대는 신파극, 즉 대중 연극의 전성기였다. 이것이 활발해짐에 따라 예술적 감동을 주지 못하는 대중극에 식상한 부류들에 의해 새로운 연극 혹은 정통적 연극을 갈망하게 되었는데, [극예술연구회]는 이에 부응하여 상업주의적 대중극에 반기를 들고 이 땅에서 서구의 사실주의 연극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이 [극예술연구회]의 일원이었던 유치진이 쓴 이 작품은 한국 근대극의 출발이라는 의의를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