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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희곡

이강백 희곡 『봄날』

by 언덕에서 2024. 1. 2.

 

이강백 희곡 『봄날』

 

이강백(李康白. 1947∼ )의 희곡으로 늙은 홀아비와 일곱 아들의 갈등과 화해를 그린 10장으로 된 연극 대본이다. 1984년 9월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이 작품은 늙음과 젊음, 겨울과 봄이 만들어내는 갈등과 화해를 잔잔하고 아름답게 그리며 노년기의 아버지, 장년기의 장남, 청년기의 자식들, 소년기의 막내와 동녀(童女)로 구성된다.

 「봄날」은 1984년 봄에 창작되었다. 그해 제8회 [서울연극제]에서 대상ㆍ연출상과 미술상을 수상하였다. 극단 [성좌]가 같은 해 9월 28일부터 10월 3일까지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공연(권오일 연출, 오현경, 박웅, 이승철 등 출연)했다. 극단 [성좌]는 이 작품으로 제8회 [대한민국연극제]에 참가해 대상, 연출상, 미술상을 수상했다. 1997년 제15회 [전국연극제]에서 우수상과 연기상을 수상하였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나른한 봄날 외진 산마을에 늙은 홀아비와 일곱 명의 아들들이 밭을 갈며 살아간다. 가을 추수가 끝나면 돈을 구들장 속에 감추는 인색한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에게 불만이 가득한 일곱 형제들이 모여사는 집에 겨우내 식량이 떨어진 백운사 스님들이 오갈 데 없는 동녀를 맡긴다.

 아버지는 젊음을 되찾고 싶어하고 토지에 대해 집착하며 자식들을 혹사시킨다. 장남은 사랑하는 여인마저 저버린 채 어머니처럼 아버지의 시중을 들고 여섯 동생들을 보살핀다.

 아버지는 젊은 여인을 안고 자면 몸이 젊어진다는 말을 믿고 동녀를 방으로 들인다. 그는 장남과 함께 무당에게 젊어지는 비결을 물어보려고 길을 떠난다. 남은 아들들은 그사이에 동녀를 방에서 끌어내어 심하게 놀리고 막내는 동녀를 위로해 주며 두 사람은 연민을 느낀다.

 장남은 무당에게 다녀오면서 아버지를 설득하여 아들들에게 땅을 나눠줄 것을 약속받는다. 그런데 집에 있던 다섯 형제들은 배고픔과 힘든 농사일을 견디기 어려워서 미리 회춘에 좋다는 구렁이 삶은 물과 주름살을 펴는 데 쓰는 송진을 준비하고, 아버지가 송진을 발라 눈을 못 뜨는 사이에 구들장을 뜯고 돈을 훔쳐서 도망간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자 막내와 결혼한 동녀는 아기를 배게 되고 장남은 아버지를 모시고 산다. 집 나간 자식들은 잘 지낸다는 편지를 보내오고 아버지는 떠나간 자식들을 그리워하며 욕심에 사로잡혔던 지난날을 탄식한다.

연극 [봄날]

 

차남 : (관객들에게 말한다.) 봄날에 신문을 읽노라면 가출한 사람들을 찾는 광고 기사가 부쩍 늘어난다는 걸 알게 되지요. 모든 신문마다 이렇게, 사람 찾는 기사로 가득 차 있거든요. (기사를 읽는다.) 김찬식. 강원도 홍천에서 살다가 가출한 뒤 소식이 없음.
삼남 : 박범구. 충청도 예산에서 살다가 올봄에 가출하였음.
사남 : 이만기. 특징, 얼굴에 사마귀 있음. 경기도 여주에서 살다가 가출한 뒤 소식을 모름.
오남  조국진. 전라도 남원에서 가출한 뒤 행방을 모름.
육남 : 최용남. 경상도 김해에서 살다가 올봄에 가출한 뒤 돌아오지 않음.
차남 : 모든 일을 용서하겠음.
자식들 : 모든 일을 용서하겠음.
차남 : 속히 돌아오기 요망함.
자식들 : 속히 돌아오기 요망함.
차남 : 아버지.
자식들 : 아버지.
차남 : (신문을 내려놓으며) 아버지가 가출한 자식들을 찾고 있군.
자식들 : (신문을 내려놓는다.) 아버지가 가출한 자식들을 찾고 있군. - 본문 중에서

 

 ♣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왔지만 자식들은 봄의 생명력과 활기를 누리지 못한다. 아버지가 자식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며 어떤 것도 나누어 주지 않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또 백운사 중이 맡긴 ‘동녀’를 회춘에 이용하는 등 늙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이런 그의 노력이 자식들에게 위협이 되면서 아들들과 아버지 사이의 갈등은 더욱 깊어진다. 결국 다섯 아들은 아버지를 속여 눈을 멀게 하고 돈을 훔쳐 달아나 돌아오지 않는다. 어머니를 대신해 동생들을 보살피던 장남과 병약한 막내만이 동녀와 함께 아버지 곁에 남는다.

 봄이 지나가고 배경은 여름으로 바뀐다. 막내와 혼인한 동녀는 아이를 가졌다. 아버지는 늙음을 인정하고 자식들과의 갈등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다는 것을 깨달으며 자식들을 그리워한다. 자식들 또한 집 나간 아들을 찾는 신문 기사를 낭독함으로써 아버지와 화해를 암시한다. 늙음에서 젊음으로 교체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이 연극의 형식은 이중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동아시아 일대에 널리 퍼져 있는 '동녀 풍속'을 중심으로 엮어가는 줄거리와, 다른 하나는 줄거리의 장면 사이에 봄에 대한 노래ㆍ그림ㆍ영화ㆍ연주ㆍ시조ㆍ신문ㆍ약전ㆍ편지 등을 삽입하여 그 두 가지의 구조가 서로 결합되도록 짜여 있다.

 작가는, "인간의 삶의 과정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갈등과 대립으로 가득 차 있음을 알게 된다. 예를 들어 노년기와 소년기의 갈등은 마치 겨울과 봄 같다고 할 수 있다. 겨울이 모든 소유물을 상실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인색한 모습이라면 봄은 그 정반대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차지하고 싶어 안달하는 조급한 모습이다."라고 말하면서, "그 갈등과 대립에도 불구하고 삶의 전 과정을 아름답고 따뜻하게 이끌어갈 수 있다는 인간에 대한 긍정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