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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희곡

함세덕 희곡 『무의도기행(舞衣島紀行)』

by 언덕에서 2024. 1. 11.

 

함세덕 희곡 『무의도기행(舞衣島紀行)』

 

 

월북 극작가 함세덕(咸世德, 1915~1950)이 지은 희곡으로 1941년 4월 월간 [인문평론]에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보통학교를 최우수로 졸업한 천명을 데릴사위 삼아 의사로 만들겠다는 한의사 구주부와 그를 뱃사람으로 만들려고 하는 외숙부 공주학의 갈등을 주된 축으로 한다. 천명의 부모는 두 사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가난 때문에 결국 아들을 바다에 내보낸다. 작품은 그 때문에 죽음을 맞는 주인공 천명의 비극을 보여 준다.

 함세덕은 유치진의 제자로서 1935년부터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1950년 6·25 전쟁 중 사망할 때까지 15년 동안 극작활동을 하였다. 1935년부터 1950년까지는 역사적으로 광복·분단·전쟁 등으로 이어진 현대사의 격동기였다. 따라서 함세덕은 몇 번의 작품변모를 보였으며, 이 작품은 그의 순수하였던 초기작품에 속한다. 그의 초기작품은 대부분의 민족항일기 작가들처럼 리얼리즘에 바탕을 두고 처절한 현실을 묘사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그는 답답한 현실을 부정적 시각으로 묘사하면서도 사랑을 가미시킴으로써 사실과 낭만을 조화시킨 극작가이다.

 희곡 「무의도기행」은 강화도의 가난한 어촌을 무대로 하여 어부들의 빈곤한 삶의 실상을 한 소학교 교원의 입장에서 담담하게 스케치한 해양극의 일종이다. 아래의 간단한 줄거리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일제의 잔악한 착취로 인해서 바닥이 난 농어민의 참담한 삶을 진실되게 묘사한 작품이다. 다만 유치진의 작품 분위기와 다른 점은 ☞싱그(Synge, J.M.)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서정성이 깃들어 있다는 점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강화도의 가난한 어촌이 무대이다. 열일곱 살 난 소년 천명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강원도에서 농사를 짓다가 여의치 않아 강화도로 옮겨와서 바다에 삶의 터전을 둔 주인공 공 씨(孔氏)는 두 아들을 바다에서 잃는다.

 형들의 죽음을 지켜본 셋째 아들 천명은 바다에 나가기를 기피하면서 출어를 희망하는 부모와 충돌한다. 셋째 아들 천명은 어부로서 보다는 뭍에서 기술자로 입신하기를 갈망한다. 천명은 출어를 희망하는 부모와 충돌한다. 그러나 부모의 끈질긴 설득으로 그리고 생존을 위해 배를 타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선택의 문제라기보다는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셋째 아들을 사위로 맞으려는 제삼자까지 끼어들어 일이 더욱 복잡하게 얽힌다. 그러나 결국 셋째 아들 천명은 부모의 강권에 못 이겨 다시 바다로 나가게 되고 그곳에서 생명을 잃는다.

 

극작가 함세덕 (咸世德, 1915~1950 )

 

「무의도기행」은 소년 천명을 가르쳤던 선생님이 여름 방학을 맞아 무의도를 찾았다가 비극적인 사실을 알고, 기행문을 쓰듯이 소년 일대기를 극화시킨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끝의 '낭독' 부분이 이러한 의도를 시사한다. 어부들의 빈곤한 삶의 실상을 한 소학교 교원이 담담하게 지켜보는 설정으로 시작되는「무의도기행」은 배경, 소재, 구성, 언어, 주제 등 여러 측면에서 <산허구리>의 발전된 역작으로 볼 수 있다. 일명 떼무리라고 불리는 인천 부근 작은 어촌이 무대가 되고, 바다에 두 아들을 잃고 딸마저 중국 유곽에 팔아버려야 했던 가난한 어민 일가족의 고달픈 삶을 소재로 했다. 남은 아들마저 물에 보내고 싶지 않지만 불가피하게 보내야 하는 부모의 처지와 두 형이 횡사한 데 깊은 상처를 받은 소년이 배를 타고 싶지 않으나 어쩔 수 없이 바다로 떠나는 과정을 짜임새 있게 그린 수작이다.

 소년을 놓고 데릴사위를 삼으려고 온갖 허풍과 모함을 꾸미는 돌팔이 의사와 소년을 숙련된 어부로 단련시켜 오래도록 이용하려는 외삼촌의 협박과 회유, 이러한 가운데서 두 형이 익사한 충격 때문에 바다와 배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소년과 생계를 위해 불안에 떨면서도 자식을 억지로 바다로 보내는 노부부의 심리와 내면 갈등이 극적인 행동으로 잘 드러났다.

 특히 소년의 절실한 꿈과 억압된 심리, 폭발적인 저항과 절망적인 순응이 작품 전편에 과장 없이 이어지고 있어 한층 현실감을 느낄 수 있다. 등장인물 각자의 처지와 개성이 심리 갈등과 행동을 점점 고조시키면서, 한 소년을 바다로 내몰아 죽게 하는 과정이 긴밀한 구성력을 드러낸다. 주변 환경을 서정적으로 느끼도록 만들어 주는 간결하고 시적인 대사가 섬사람의 향토 말씨와 어울려 독특한 맛을 느끼게 한다. 마지막에 낭독되는 소년의 최후는 비장미를 한층 높인다.

 

 

 2막으로 된 이 희곡은 1941년 발표되었는데, 함세덕 작품 세계의 초기(1935∼1941년) 작품이다. 함세덕의 희곡은 꽉 짜인 구성과 선택된 언어로 시대를 초월하여 주목을 받는다. 특히 이 시기에 발표된 대부분의 희곡들은 극적인 형식에 가난과 동경의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조국을 잃어버린 독자와 관객의 가슴에 서정적인 접근으로 울려 퍼진다. 초기 희곡 가운데 가난이 주인공의 운명에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비극적인 결말을 가져오는 것은 <산허구리>와 「무의도 기행」이다. 그러나 <동승>에서 「무의도 기행」까지의 희곡들은 가난을 반영하고 제시하는 것에 그쳤을 뿐 '식민지'라는 현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파헤치지는 못했다. 이는 1930~1940년 당시의 문화 활동에 대한 일제의 탄압 정책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무의도 기행」은 작가를 꿈꾸었던 우등생 천명이, 쓰러지는 가정을 일으키기 위해 고기잡이배를 타고 나가 결국 죽어간다는 내용이다. 식민지 시대에 발표된 리얼리즘 연극으로는 드물게 독창성을 살린 수작으로 평가받으며, 성공 사례에 속한다. 그러나 1946년에 함세덕이 월북을 했다는 이유로 공연이 금지되었다가 1988년 해금되었다. 이후 함세덕에 대한 평가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다가 1999년 4월 국립극단 공연을 계기로 함세덕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다. 1999년 공연에서 연출가 김석만은 작가 함세덕을 등장시키고 어린 주인공 천명이를 도구락 운전사에서 함세덕과 같은 작가가 되고 싶어하는 소년으로 바꾸었다. 따라서 에필로그와 프롤로그가 새로 삽입되었다.

 

 

 

 


아일랜드 극작가 존 밀링턴 싱그(John Millington Synge, 1871-1909)

 

 1871년 더블린 교외에서 태어난 싱그는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를 졸업한 후 음악을 공부하러 독일에 갔다. 이후 다시 파리로 간 싱그는 문학비평을 쓰면서 몇 해를 보내다 그곳에서 예이츠를 만났다. 싱그의 재능을 알아차린 예이츠는 그에게 아란섬(Aran Island)으로 갈 것을 권했다. 그 충고를 따라 아일랜드에 돌아온 싱그는 아란섬 사람들의 생활과 언어를 낱낱이 관찰했다. 이 기록은 후에 <아란섬>(1907년)이라는 작품으로 출판되었다.

 싱그의 극작은 짧은 일생의 마지막 6년 동안에 집약되고 있다. 최초의 <계곡의 그늘>(1903년)은 1막의 희극, 다음의 <바다로 달려가는 사람들>(1904년)은 단순한 구성 가운데 섬사람의 비참한 생활을 묘사했던 근대 1막 희곡으로서 걸작의 하나이다. 1904년, 싱그는 예이츠와 그레고리 부인 등과 함께 더블린의 애비 극장(Abbey Theatre)의 운영위원이 되었다. 희극 <성자(聖子)의 샘>(1905년) 및 <서부의 플레이보이>(1907년)는 모두 여기에서 상연되었다. 그러나 후자는 아일랜드 국민성에 대한 신랄한 풍자로 인하여 상연에 즈음해서 관객에게 폭동을 당하였다. 다음의 <땜장이의 혼례(婚禮)>는 1908년에 출판되었으나, 폭동을 우려하여 상연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