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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희곡

막심 고리키 희곡 『밑바닥(The Lower Depths)』

by 언덕에서 2023. 9. 27.

 

막심 고리키 희곡 『밑바닥(The Lower Depths)』

 

 

러시아 작가 막심 고리키(Maksim Gorikii.1868∼1936)의 4막 희곡으로 1902년 발표되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붕괴된 제정 말기(19세기 말기)의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희곡이다. 기근과 불황으로 토굴과 같은 지하 숙소에 모여 사는 부랑자들을 통해 여러 유형의 인간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막심 고리키의 본명은 알렉세이 막시모비치 페쉬코프이다. 고리키는 한때 밑바닥 생활을 겪은 사람으로서, 그 시대 전 세계 문학가들 가운데 거의 유일한 경력을 지닌 작가이다. 그는 정규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채 아홉 살 때부터 넝마주이가 되었고, 곧 집을 떠나 구둣방 보조, 디자이너 수습생, 성상화가 보조, 증기선 보조요리사, 제과점 점원, 짐꾼, 변호사 사무실 서기 등 여러 일자리를 전전하며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이어갔다. 그 비참하고 쓰라린 경험을 평생 잊지 못해, ‘쓰라림’이라는 뜻의 ‘고리키’를 필명으로 삼았다.

 고리키는 볼가강 연안 니즈니 노브고로트 출생으로 가난한 가정은 그에게 정규적인 학업을 허락하지 않았으므로, 그는 머슴ㆍ사환ㆍ접시 닦기 등 갖가지 직업에 종사하면서 고통스러운 소년시대를 보냈다. 처녀작은 단편 <마카르 추더라>(1892)인데, 그 후 코롤렌코ㆍ체호프 등과 알게 되어 그들의 영향을 받았다. 계속해서 <첼카슈>(1895), 희곡 <소시민> 등을 발표해서 조금씩 알려졌지만, 1902년 『밑바닥』이 모스크바 예술좌에 의해 상연되어 미증유의 대성공을 거두게 되자, 그의 이름은 갑자기 유명하게 되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쓰러질 듯 허름한 집에는 밑바닥 인생들이 살고 있다. 매춘부, 장사꾼, 땜장이, 도박꾼, 알코올중독자 배우 등 변변한 인간 하나 없는 이들은 자신의 인생을 한탄한다. 오스기는 집주인의 아내로 같은 집에 살고 있는 수테키치와 내연관계다. 하지만 수테키치는 오스기가 아닌 그녀의 동생 오카요를 사랑하고 있다. 오카요도 수테키치를 마음에 두고 있으나, 그의 친언니와 형부는 그녀를 놓아주려 하지 않는다. 땜장이의 아내는 죽을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고 있다. 사람들은 다른 이들을 의식하지 않고 좁은 집 안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술을 마시며 도박을 일삼는다.

 어느 날, 허름한 그 집에 떠돌이 노인 한 명이 찾아온다. 남의 이야기를 들을 줄 몰르는 그 집 사람들과는 달리 루까 노인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보듬어주는 사람이다. 그는 죽어가는 땜장이 부인에게는 죽음 이후엔 고통이 없을 것이라고 달래주고, 알코올중독자에게는 무료로 치료해 주는 성당이 있다고 귀띔해 준다. 또 수테키치에게는 오카요와 함께 먼 곳으로 떠나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노인의 조언대로 상황은 흘러가지 않는다.

 결국 땜장이의 부인은 끝내 목숨을 잃고, 유부녀 오스기는 수테키치를 향한 질투 끝에 동생 오카요에게 뜨거운 주전자를 던진다. 그동안 집주인에 대한 불만이 컸던 사람들은 모두 뛰쳐나와 집주인을 응징한다. 그날 밤 노인은 사라지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수테키치는 화를 참지 못하고 결국 집주인을 죽이고 만다. 루까 노인의 위로들이 허황된 말뿐이었음을 알게 된 알코올중독자 배우는 나무에 목을 매달아 자살하며 이야기는 끝난다.

 

 

 『밑바닥은 말 그대로 밑바닥 삶을 그린 작품이다. 도시의 변방으로 내몰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1897년에 발표한 <그들도 한때는 인간이었다>라는 소설을 희곡으로 다시 쓴 것으로 알려졌으나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한때는 인간이었던’ 사람들 말고도 ‘한때는 인간이었던’ 사람들이라고 부르기에는 아까운 젊은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러나 모두 밑바닥의 주민인 것은 분명하며, 그들이 연주하는 교향악은 겉으로는 시끄럽고 목소리가 크지만, 밑바닥에 흐르는 색조는 절망과 체념에 기초한다. 또한 이 작품은 펼쳐지는 이야기는 많지만 줄거리가 없고, 나오는 사람들도 많지만 주인공은 없다는 점이 특징이다.

 희곡 『밑바닥』에서는 매 장마다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살아갈 의욕조차 잃어버린 부랑자들의 삶은 죽음이나 다를 바 없다. 살아 있는 시체들의 각성. 밑바닥 인생들의 눈과 귀가 열린다. 이것이 바로 이 드라마의 인간적, 도덕적 의미를 담고 있다. 세계 근대극 가운데 평판과 질량 모두 체호프의 작품과 견줄 수 있는 명작 『밑바닥』은 체호프와의 인연 덕분에 1902년 러시아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처음으로 상연되었으며, 그 뒤로 오늘날까지 많은 나라에서 무대에 오르고 있다.

 사회의 '밑바닥' 생활을 하는 욕심꾸러기 남편과 바람기 있는 젊은 아내, 도둑, 부랑자, 만두장수, 옛날의 남작, 매춘부, 알코올 중독자, 노동자 등과 같이 대조적인 성격의 인물들을 보면서 당시 러시아의 모습을 읽을 수가 있다. 하급 여인숙에 모인 부랑인들의 생활을 그린 내용으로, 줄거리다운 줄거리는 없지만, 작자의 정의감이 전편에 넘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종래의 극작법의 테두리를 완전히 벗어났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연극과 뮤지컬로 더 유명한 희곡 명작으로 80년 세월 동안 러시아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극장에서 고정 레퍼토리로 사랑받았다. 지금도 이 작품에 대한 높은 평가와 관심이 여전한데, 고리키의 드라마가 삶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질문을 독자와 관객에게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좁은 여인숙에서 펼쳐지는 ‘밑바닥’ 인생의 모습을 통해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고리키는 1906년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의 기금 모집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고, 여기서 장편 <어머니>(1907)를 집필했다. 그 후 이탈리아로 건너가서 8년 동안 망명생활을 계속했다. 1913년 로마노프의 특사에 의해 조국으로 돌아와서 <유년시대>(1914)를 발표하였다. 이 시기부터 노동자에게 접근하기 시작하여 프롤레타리아문학 육성을 위해 현저한 역할을 이룩하게 되었다. 그리고 세계문학의 고전을 출판하는 [전세계문학] 출판소를 주재했다. 고리키는 1921년 건강 회복을 위해 다시 외국으로 떠났고, 그때 <나의 대학> <알타모노프 일가> <클림 쌈긴의 생애> 등의 대작을 계속해서 발표했다. 1929년 귀국 후에도 후진의 지도, 문학 이론 확립 등의 분야에서 노력을 계속했다.

 고리키는 19세기 러시아문학과 20세기 소비에트문학을 잇는 가교였다. 황금세기 문학의 찬란한 빛이 뒷산 너머로 사라질 무렵 요란한 방울 소리를 내며 문단에 나타나 20세기 새로운 러시아문학의 기초가 되었다. 소비에트 시기에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창시자’ 등으로 추앙받았으나, 정작 예술가로서의 막심 고리키는 소외되었다. 막심 고리키 작품의 시기적 배경이 1905년 혁명 이전으로 국한되어 있다는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작가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작품의 주인공 역시 그 누구도 20세기 소비에트 시대를 진정 받아들이지도 않았고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햇빛 없는’, ‘여인숙’, ‘밑바닥’, ‘삶의 밑바닥에서’ 등 『밑바닥에서』라는 제목은 어딘지 모르게 미래에 대한 희망과 전망을 품고 있는 듯 들린다. 마치 다음과 같은 질문이 이어져야 할 것만 같다. ‘밑바닥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밑바닥에서’도 삶이란 있는 걸까? 도대체 영혼을 지닌 사람들은 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