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창섭 단편소설 『광야(廣野)』
손창섭(孫昌涉, 1922~2010)의 단편소설로 1956년 [현대문학]에 게재되었다. 이 작품은 해방 전, 만주 벌판에서 아편 밀매상인 한국인 부부가 마적단에게 피살당하는 내용을 그린 소설 <신의 희작> 이전에 발표된 작품이지만 <신의 희작>처럼 주인공 S를 손창섭 자신이라 칭하는 구절이 나와서 작가의 자전적 소설임을 짐작게 한다.
이 작품의 주인공 승두는 손창섭 자신이며 주인공 S를 버리고 만주로 도망간 어머니와 ‘멧돼지 같은 남자’에 대한 복수의 환상이 이미 「광야」를 통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는 추측 때문이다. 병든 아버지가 죽고 아버지의 친구인 창규와 재혼한 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아버지의 죽음의 원인이 재혼남에 있다는 확신에서 소설은 시작한다. 해방 전, 간도에 이주해 살았던 한인들의 삶을 알 수 있는 작품으로 손창섭 특유의 ‘~것이다’ 화법이 획기적으로 줄어든 문장이 이채롭다. 이 소설에는 척박하고 고통스러운 환경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젊은 청춘들이 등장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광대한 만주 벌판의 한 촌락에서 살아가는 20대 중국인 귀족 청년 동오와 16세의 중국인 벙어리 소녀 춘화, 비슷한 또래의 조선인 소년 승두가 주인공이다. 춘화의 아버지인 왕 노인은 승두의 집에서 머슴살이하는 아편쟁이 노인이다. 승두는 아버지가 불시에 비명횡사한 후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만주에 와 있다. 그러나 그의 내면은 괴롭기 짝이 없다. 아버지는 그의 꿈에 나타나서 원수를 갚아 달라고 부탁한다. 승두는 아버지의 죽음이 지금의 계부 때문이라고 확신하며 계부가 자신도 죽일 것이라는 불안에 시달린다. 어머니와 계부는 승두와 잘 지내자며 회유하지만, 승두는 수락하기 싫다. 또한 그들은 중국인들을 상대로 아편 밀매하며 살아가는데 집에는 온종일 아편 중독자들이 추한 모습으로 들락거린다. 승두는 이런 집안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머슴인 왕 노인의 거처로 대피하여 춘화, 동오와 매일을 소일한다.
그런가 하면 춘화의 사정은 더 딱하다. 노름꾼인 그녀의 아버지는 아편이 없으면 살지 못하는데 딸이 자라나자 그나마 그녀를 보호하려고 승두의 집에 일자리를 구한다. 그는 부잣집 자제인 동오가 자기 딸을 소실로 삼았으면 하는 희망을 품고 있다. 소학교 교원인 동오는 혼인하여 처자식까지 거느린 몸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왕 영감의 거처로 와서 종일 잡지를 보며 소일한다. 그는 가끔 승두와 춘화를 데리고 눈 덮인 광야를 돌아다니다가 온다. 이런 동오에게 승두는 묘한 친밀감과 존경을 갖고 어머니와 계부가 자신의 친아버지를 죽였다는 자신의 개인사를 고백한 적이 있다. 한편 동오는 딸을 소실로 삼아 달라는 왕 노인의 요청과 집으로 돌아가자는 아내의 요청을 모두 거절한다. 그는 자신을 여기서 떠나게 해 달라고 요청하는 승두에게 '상해로 갈까?' 하며 제안한다. 만약 가게 된다면 춘화를 어찌해야 하나, 걱정하던 승두에게 뜻밖의 사건이 터진다. 왕 노인이 마적을 사주하여 승두의 어머니와 계부를 살해한다.
중국인 청년 동오는 마침내 승두와 젖먹이 동생 그리고 춘화를 데리고 촌락에서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그들과 비슷한 한 패가 기차를 타는 모습을 보았다는 풍문이 촌락 사람들의 귀에 들려왔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인 1956년에 발표된 단편소설 「광야」는 특이하게도 해방 전 만주(滿洲) 벌판을 배경으로 쓴 작품이다. 손창섭은 평양에서 태어났으며, 만주로 건너갔다가 그 뒤 도일(渡日)했다. 교토(京都)와(京都) 도쿄(東京)에서 고학으로 몇 군데 중학교를 거쳐 니혼대학에 수년간 다녔다. 1946년 귀국하였고, 그 후 일본으로 귀화했다.
자신의 표현에 의하면, 그의 작품은 ‘소설의 형식을 빈 작가의 정신적 수기’이며 ‘도회(韜晦) 취미를 띤 자기 고백의 과장된 기록’이다. 그러나 그의 소설이 자신을 주로 묘사하고 있다고 해서 1930년대에 유행한 신변소설류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최서해나 강경애 류의 소설에서 보이는 빈궁문학과도 차이가 있어 보인다. 신변소설의 특징인 사소한 사생활이나 친구 간의 우정은 그의 소설에 거의 등장하지 않으며, 저명인사들이 나타나지도 않는다. 그의 소설에는 자기 자신의 모습이 ‘과장되어’ 계속 드러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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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신의 희작>과 마찬가지로 어려서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환경 속에서 폭력적으로 살아온 주인공의 삶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손창섭 문학의 전반적인 연구에서도 중요한 자료로 취급되어 왔다. 때문에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았으나, 그의 부인인 치즈코 여사가 손창섭 본인의 자전적 이야기라는 종래의 설에 대해서 완전한 허구의 창작이라고 하면서 자전적 소설이 아님이 밝혀졌다.
하지만 이도 손창섭의 과거를 알 리 없는 치즈코의 주장일 뿐으로 진실은 그와 함께 죽었다고 봐도 될 것이다. 소설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승두는 소년 시절 어머니의 외간 남자와의 정사 장면을 목격하며 만주로 오게 된다. 그러나 치즈코 여사의 증언에 따르면 실제 손창섭의 어머니는 청상과부로 있다가 젊은 나이에 재가하였고, 손창섭은 할머니 손에 의하여 자라났다고 한다.
손창섭의 자기 고백적인 소설의 기조를 이루고 있는 것은 부정적 인간관이다. 이것은 비극의 원인을 신의 희롱에 둔 고대 희랍의 인간관과 상통하며, 그 자신의 개인사와 식민지ㆍ 해방 후의 혼란, 6ㆍ25라는 연쇄적인 카오스 상황이 결합하여 이루어진 듯하다. 따라서 그의 소설의 주인공들이 대부분은 불행하기 짝이 없다. 사는 장소를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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