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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손창섭 단편소설 『희생(犧牲)』

by 언덕에서 2024. 1. 15.

 

손창섭 단편소설 『희생(犧牲)』

 

 

손창섭(孫昌涉, 1922~1990)의 단편소설로 1956년 4월 [해군]지에 발표되었다. 작가가 군대 잡지에의 기고(寄稿)를 의식해서인지, 이 작품은 6·25 전쟁 중 북한군에 점령당한 서울이 국군과 유엔군에게 수복되는 사이 결혼을 약속한 남녀가 전쟁을 견뎌내다가 벌어진 참담한 비극을 담고 있다. 제1화에서 5화까지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전쟁의 비참함과 시가전(市街戰)의 참혹함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이 작품의 현장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벼랑 끝이다. 전쟁의 절박한 상황이며 작품 속의 등장인물들은 모두가 벼랑 끝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그들은 혈연이 아니면서 혈연보다 더 끈끈하게 얽혀 지낸다. 얽힐 수 없는 관계들끼리 얽히고도 끝내 절연하지 못하고 지내는 모습들이 인간적이지만 어느 편의 개인에게는 파멸을 가져온다. 손창섭은 남의 이야기를 자기 이야기처럼 소설 속에 끌어들이지 않는다. 철저히 자기를 살다가 소진하면 끝이다.

 손창섭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불행을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운명으로 간주한다. 옛 제자를 구하려다가 미군에 붙잡혀 가는 이 작품의 주인공 재성은 '운명'을 떠올린다.

 

소설가 손창섭 (孫昌涉, 1922~1990)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배경은 6·25 전쟁 중인 서울이다. 같은 초등학교의 동료 교사인 홍재성과 수옥이 주인공이다. 수색이나 송장 고개 근처에 유엔군이 다가와 있는 것은 확실하나 이화대학에 근거를 두고 있는 괴뢰군은 맹렬한 반격을 시도했다. 가옥에 포탄이 떨어지자 동네 사람들은 하수구로 들어가 총탄과 포탄을 피하는데 그곳에는 박격포탄의 파편을 맞아 복부가 끔찍하게 갈라진 수옥이 신음하고 있다.

 이북에서 중학교 교사를 하다가 월남한 재성은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는 수옥과 결혼을 약속한 사이다.

 격전은 사흘째 계속되었으나 괴뢰군은 좀체 물러나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은 하수구에 숨어있다가 전황이 조용해지면 구멍에서 기어 나와 집에 가서 밥을 지어먹곤 했다. 그 사이 수옥의 상처는 심각해져서 배밖으로 튀어나온 내장이 온통 썩어가 고약한 냄새를 풍겼다.

 어제부터는 괴뢰군 패잔병들이 들이밀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대개 군모 군복 상의마저 벗어버리고 내의 바람에 살려달라고 주민들에게 애원했다. 무작정 인민군에 징집당했다는 소년병을 발견한 재성은 그들이 빨갱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재성은 이에 안심하는 동시에, 붙들고 울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패잔병은 다름 아닌 재성의 옛 제자로 북한을 탈출할 때 도와주었던 봉균이었다. 재성은 봉균에게 옷을 갈아입히고 죽을 끓여 먹인 후 마루 밑 구석에 숨게 했다.

 연이어 닷새나 계속된 치열한 시가전은 드디어 끝장을 고하고야 말았다. 괴뢰군의 최후 방어선이 무너지고 만 것이다. 유엔군이 밀려 내려오자 집집이 태극기가 걸렸다. 그들은 집집마다 패잔병이 숨어있을 만한 데를 샅샅이 뒤지며 진격했다. 재성은 봉균을 숨긴 사실이 유엔군에게 발각되어 그와 함께 건너편 산기슭으로 끌려갔다. 누구 한 사람 재성을 위해 감히 변명해 주려 나서지 못했다. 재성은 목이 타는 것을 참고 지그시 눈을 감아보았다. 예측할 수 없는 운명에 견디려는 것이다. 그러한 재성의 뇌리에 불현듯 어제 죽은 수옥의 모습이 스쳐 갔다.

 

 

 손창섭의 작품을 전쟁 전후의 사회적 격변과 유동성의 시기를 그리고 있는 리얼리즘의 작품이라고 규정할 수도 없다여기에 손창섭 소설의 가장 깊은 비밀이 숨겨져 있다. 그의 작중인물은 피난민, 제대군인, 포로 석방자 등 이 나라 사회의 유동적 시기를 반영하는 명확한 사회적 규제를 거친 인물로 등장하지만, 그 사회적 규제를 넘어서서 독보(獨步)하는 것 같은 환상을 집요하게 독자에게 안겨준다.

 해방 전의 만주 땅을 배경으로 한 <광야>와 전쟁 시절 부산 피난지를 배경으로 한 <비 오는 날>의 혈연적 친근성 사이에서 우리는 배경과 시대의 차이성을 간과해 버린다. 이러한 특수 사정은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작가가 작중인물을 보다 더 본질적으로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손창섭처럼 직중인물의 신체 묘사를 무시하고 있는 작가도 드물다. 항용 작가들이 자질구레하게 묘사하는 신체적 특징의 디테일은 대담하게 제외되고 있으며, 단지 그들의 언동과 추태에 의해서 마술적인 리얼리티를 획득하고 있다. 존재론적으로 포착된 그의 작중인물 즉 인간은 기껏 ‘먹고 자고 배설하는’ 인간 동물에 지나지 않으며, 인생은 무의미한 낙서나 군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손창섭의 시각에 의하면 인간의 꿈이라는 것도 한갓 덧없는 치몽(稚夢)이며돌이켜보면유실몽(流失夢)에 지나지 않는 그 무엇이다손창섭처럼 인간을 모멸하고 인간의 평가절하에서 유머를 찾은 작가는 참으로 드물다그의 작품세계는 극언하면 인간 덤핑의 세계이다. 손창섭이 보여주는 인간에 대한 환멸은 6ㆍ25 체험과 피난시절의 경험에서 기인한다. 전쟁상황에서는 어떤 인격적 생활도 불가능했으며, 극한적 상황에 내몰린 절박한 인간으로서의 생명 유지만이 가능했다.

 손창섭은 이러한 극단적인 생활에 처해진 인간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손창섭 소설에 인물들은 동물원 우리 속에 갇힌 동물을 보고 있는 듯한 관찰자적 시선을 통해 희화화되고 있다. 그러기에 손창섭의 문학을 폭로의 문학이라 칭하기도 한다. 그의 작품에는 극한적인 상황에 놓인 인간이 드러내는 추한 면들이 작가의 냉소적 시각에 의해 낱낱이 폭로되고 있으나 거꾸로 극한적인 상황이 선량한 인간을 추하게 만들고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