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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김동리 단편소설 『밀다원시대(蜜茶苑時代)』

by 언덕에서 2024. 1. 3.

 

 

김동리 단편소설 『밀다원시대(蜜茶苑時代)』

 

김동리(金東里, 1913~1995)의 단편소설로 1955년 4월호 [현대문학]에 발표되었다. 6ㆍ25 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제3회 [자유문학상] 수상작이다. 한국전쟁 당시 문화인들의 불안과 절망을 그린 작품이다.

 6ㆍ25전쟁 속에서 작가가 겪은 시련과 아픔을 토대로 시대 상황과 작가정신의 의미를 실존적 휴머니즘의 차원에서 탐색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민속적인 소재를 많이 사용하던 창작 태도에서 6ㆍ25 전쟁을 소재로 한 실존적 휴머니즘의 세계로 변화한 김동리의 창작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다. 1ㆍ4 후퇴 때 부산으로 피난가서 ‘밀다원’이라는 다방에 드나들던 문인들을 모델로 하여 그 시대의 불안한 심리를 묘사하고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배경은 한국전쟁기인 1950년. 서울이 점령을 당해 1.4후퇴를 한 후의 부산이다.

 주인공 이중구는 기차를 타고 부산에 도착한다. 갈 곳이 없어 망설이던 차에 K통신사 윤을 따라서 통신사 지국에 가서 하룻밤을 보낸다. 그곳에서 문인들이 밀다원 다방에 모인다는 정보를 얻게 된다. 밀다원 다방에는 서울에서 안면이 있던 예술인들이 상당수 눈에 띠었다. 평론가 조현식은 그를 집으로 데려간다. 피난살이하는 그곳에는 조현식의 아내와 어머니, 아이들 등 십여 명이나 있었다. 이중구는 조현식의 어머님을 보면서 서울에 어머니를 버려두고 내려온 자신을 자책한다.
 이튿날 이들은 습관처럼 밀다원으로 출근한다. 그곳에서 열악한 예술가의 처지, 부산 문인의 서울 문인 견제 등을 얘기하며 답답해한다. 그래도 커피 한 잔을 즐기며 웃을 여유는 있다. 하지만 이중구는 혼자 죽어갈 어머니가 걸려 마음이 편치 않다. 한숨이 나올 뿐이다. 그날은 오정수의 집에 가서 머무르게 된다. 하지만 그의 집은 형편이 괜찮았고 음식도 좋았다. 이중구는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고생하는데 자기만 호강하는 것 같았다. 오정수는 앞으로 계속 머물 것을 권하지만 이중구는 다시 조현식의 집을 찾는다.
 그런데 한 사건이 벌어진다. 밀다원 다방에서 29세의 젊은 시인 박운삼이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했다. 전쟁이 벌어지면서 여자 친구가 외국으로 떠나버렸고 그 충격을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일로 밀다원 다방에서 소일하던 예술가들은 쫓겨났다. 이중구는 이중구대로 주검이 되어 있을 어머니 걱정에 하루하루를 보낸다. 유엔군의 반격이 개시되면서 원주, 이천, 오산 등 탈환 소식이 들려온다. 중구는 현대신문의 논설위원을 하게 된다. 사흘 뒤, 이 신문 문화란에는 박운삼의 유작시와 조현식의 평론이 실린다.

 

 이 소설은 전쟁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전쟁 자체에 대한 해석은 부수적이다. 흔히 한국 전쟁 제재의 소설을 보고, 전쟁의 참상의 한 형태라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전쟁의 참혹성을 그리려는 의도보다는 전쟁 상황에서 겪게 된 인간 존재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에서 이 작가의 현실 인식은 매우 부족하다.

 소설가 김동리가 원래 현실보다 신화적 세계에 관심을 집중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이 작품에서도 그는 현실주의자와는 거리가 있다. 이 작품에서 서술된 밀다원에 모인 문인들의 행동은 냉철하게 분석해 볼 때, 그들은 바람직한 행동 양식을 보이지는 못한다. 그들이 모여서 하는 이야기는 잡다한 세상사나 시시콜콜한 생활사에 불과하다. 그것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전쟁 속에서 국가의 존폐와 가족의 안위는 외면하고 있어 소위 배웠다는 지식인의 고뇌와는 무관하다. 중간에 위정자들의 행태를 비판하는 대목이 있기는 하지만, 그 이야기의 대종은 문인들에 대한 대접 소홀이란 내용이어서 그들의 정신적 상태가 의심스럽기도 하다. 

 

 

 이 작품의 장인물들은 전쟁의 와중에서 그들은 마치 전쟁과 무관한 듯한 여유를 지니며, 대중들의 삶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신선놀음을 즐기는 듯한 행태를 보인다. 물론 작가가 추구하는 것은 이런 문인들의 삶 자체는 아니지만 중구가 그들을 비판적으로 보기는커녕 그들에게서 안정감을 가지는 모습에서 중구 또한 그들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 아닌가? 어쩌면 밀다원 문인 생활의 낭만을 더 부각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중구의 치열한 삶의 정신을 보면서도 어딘지 호사 취미 같은 인상을 받는 것은, 현실적 삶에서 떨어진 채 현실을 조명하며 괴로워하는 지식인의 허구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도 작가의 특성은 어느 정도 드러난다. 앞에서 인용한 첫 대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가 죽음이라는 상황에 끌려가는 듯한 생각을 하는 부분인데, 신비한 세계에의 몰입이라는 정신의 경도가 이 대목에서 읽어진다. 그를 끝없이 붙들어 매는 바다의 이미지에 의하여 그는 계속 이상한 몰입을 경험한다. 첫날밤 통신사 책상 위에서도 환청을 듣게 되고, 친구들의 집에 갔을 때도 어김없이 그 소리에 이끌려 간다.

 죽음에의 예감 같은 신비롭고 주술적인 힘에 이끌리는 세계는 김동리라는 작가의 가장 큰 특성이다. 신화가 제거된, 죽느냐 사느냐의 절박한 현실을 취재한 이 소설에서마저 주술을 축으로 삼고 있는 작가의 밑천을 재차 확인하게 된다. 이 작품에서 작가 현실 탐구 소설은 아무래도 격이 떨어지는 것 같다. 그는 천생 신화와 더불어 살아야 하는 인자를 타고났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