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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손창섭 장편소설 『피해자』

by 언덕에서 2023. 12. 26.

 

손창섭 장편소설 『피해자』

 

 

손창섭(孫昌涉. 1922∼2010)의 장편소설로 1955년 3월 [신태양]에 발표되었다. 평양 출신의 손창섭은 전후 남한에 정착하여 착실한 필치로 이상 성격의 인간들의 모습을 그려내어 1950년대의 불안한 상황을 형상하는 데 주력했다. 대표작으로는 <비 오는 날>, <잉여 인간>, <낙서록> 등이 있다. 그는 6ㆍ25 전쟁의 충격으로 뒤틀린 한국 현실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불구 상태를 압축하여 인간 본래의 면목을 드러내는 다수의 작품을 썼다.

 손창섭은 고독한 인간에 대한 관심이 많은 작가이다. 소설이 인간에 의해, 인간에 관해 쓰인 읽을거리라고 할 때, 인간에 대한 관심이 없는 작가는 없다. 그러나 그의 인간에 대한 관심은 남다르다. 그가 그리는 인간상은 '인간에 대한 환멸'과 '인간 자체에 대해 냉소'로 일관된다. 그는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을 '먹고 배설하는' 인간 이하의 존재로 묘사하여 인간을 동물적 존재로 전락시킨다.

 

소설가 손창섭 ( 孫昌涉 . 1922 &sim; 2010)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병준은 40세의 나이에 동네 반장의 강권으로 팔자에 없는 결혼하게 되었다. 한국전쟁 후 일가붙이 하나 없이 고독하게 떠돌아다니는 병준을 필요 이상 걱정해 준 애꾸눈 반장은 느닷없이 그에게 다가와 결혼하라고 권했다. 병준은 얼굴이 못생기고 등이 굽었으며 지위도 돈도 없는 자기에게 결혼할 여자가 있으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반장의 말에 의하면 여자는 서른두 살 먹은 과부로 드물게 보는 미인이며 여자의 의향을 미리 듣고 온 터라 병준만 승낙하면 된다고 했다.

 병준의 방에 도착한 순실은 반장 말대로 보통 이상의 미모였고, 아무리 밤이 깊어도 돌아가지 않아 그들은 그날 밤부터 부부가 되었다. 알고 보니 순실은 반장의 딸이었고 둘째 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두어 살짜리 딸이 딸려있었다. 병준은 이왕 할 수 없으니 제 자식같이 길러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 뒤 사흘이 지나서 육칠 세 먹었을 ‘달영’이라는 낯선 사내아이가 방 안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 애의 머리는 보통보다 확실히 배는 컸고 목이 가는 기형아였다. 순실은 병준에게 첫 번째 남편의 아이라고 말했다. 순실은 사내아이도 병준의 자식이니 책임지고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양 식구가 늘자 병준은 자기만이 부당하게 손해를 보는 것처럼 의식되었다.

 '나는 괄시받기 위해 사는 것일까.'

 출판사에 다니는 병준은 몇 달 치 밀린 월급을 사장에게 채근해 보았지만, 사장은 도리어 화를 내었다. 돈이 있고도 안 주는 것이냐고 주장했다. 주지 않는 월급을 받아올 재간이 병준에게는 없었다. 그가 빈손으로 돌아오자 장인은 하얀 약 열 알을 내놓으며 어서 먹고 죽으라고 권했다. 이제 병준은 결혼을 저주하기 시작했다. 며칠 밤을 두고두고 벼르다가 아내의 이불속으로 슬그머니 기어들어 갔다가는 무안만 당하고 밀려 나왔다. 사뭇 성가시다는 듯 사십이 넘은 양반이 왜 이리 채신머리없이 구냐고 구박했다. 병준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자기의 잘못으로 해석되었다. 결국 석 달 치 밀린 월급을 받지 못한 병준은 장인과 아내가 두려워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굶주린 채 거리를 헤매다가 동네 뒤편 공동묘지에서 실신 상태로 발견되었다.

 자기 집으로 옮겨진 그는 아내에게 용서해 달라고 말하며 밖으로 나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죽겠노라고 졸라댔다. 이튿날 새벽에 병준은 마침내 숨을 거두었다. 마지막 소원마저 무시당한 채, 아내와 의붓자식과 장인 영감을 비롯하여 이웃 사람 두서넛이 구경하는 가운데서, 병준은 모든 것을 단념한 듯이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다.

 

1955년 [신태양] 5월호. '불구자를 기도로 완치하는 장로가 서울에 나타나다'라는 기사가 표지에 쓰였다.

 

 손창섭의 작품에 친숙한 사람들은 작중인물이 한결같이 결핍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결핍된 사람들’의 신분적 명세는 실직자, 무능자, 병자(病者) 등 세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 실직자는 남성 등장인물의 많은 수를 차지한다. <혈서>의 ‘준석’과 ‘달수’, <생활적>의 ‘동주’, <미해결의 장>의 ‘나’, <설중행>의 ‘관식’, <유실몽>의 ‘나’, <잉여인간>의 ‘익준’ 등은 그 대표적인 보기이다.

 둘째, 무능자는 직업이라고 하는 사회적 기반에 간신히 매달려 있으면서도 제 구실을 못하고 남의 피해만 받거나, 설혹 재산이 있으면서도 생활에의 의지를 상실한 인물들을 망라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천성이 모질고 영악하지 못한, 선량한 이도 범주에 포함될 될 수 있다. 「피해자」의 ‘병준’, <광야>의 ‘동오’, <잉여인간>의 ‘봉우’ 등을 예로 지목할 수가 있다.

 셋째, 여성들이나 소년들이 선천적인 불구자 내지는 환자로 등장한다. 육체적 질환을 안고 있는 경우도 많다. 죽음을 앞두고 있거나 몸을 못 쓰고 있다는 점에서 여성의 경우를 제외하곤 남성도 무능자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혈서>의 ‘창애’, <생활적>의 ‘순이’, <비 오는 날>의 ‘동옥’, <광야>의 ‘춘화’, <피해자>의 ‘달영’ 등은 간질병, 벙어리, 대두증 등 선천적 불구나 고질병을 타고났고, <사연기>의 ‘성규’, <미해결의 장>의 ‘문 선생’ 등은 중병에 걸려 죽기 일보직전이거나 절망 상태에 빠져 있다. 

 실직자, 무능자, 병자의 범주에서 간신히 도망칠 수 있었던 작중인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은 대개 창녀생활을 하거나 직업이라고 하기엔 그 기반이 너무나도 맹랑한 아편 밀매인이거나 구두닦이거나, 뚜쟁이거나 요컨대 뿌리 없는 사회의 하층민들이다. 여기다가 천애의 고아나 일가친척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는 많은 피난민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실증적ㆍ구체적 명세를 염두에 두고 ‘결핍된 사람들’이란 공분모를 붙여 본 이들 작중인물을 다시 사회적으로 규정해 보게 된다. 작가가 의도했건 아니건 손창섭의 작품들은 한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만든다. 전쟁은 인간을 얼마나 비참하게 만드는가?

 

 

 손창섭이 보여주는 인간에 대한 환멸은 한국전쟁 체험과 피난시절의 경험에서 기인한다. 부산 피난시절 많은 사람들은 임시로 지어진 가건물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었는데, 손창섭의 생활 또한 예외일 수 없었다. '바라크집' 또는 '판잣집'이라고 불리는 가건물에서의 생활은 오물처리가 안 되는 것은 물론이고, 상수도 시설은 상상도 할 수조차 없는 생활이었다. 바라크집 또는 판잣집에서는 어떤 인격적 생활도 불가능했으며, 극한적 상황에 내몰린 절박한 인간으로서의 생명 유지만이 가능했다.

 손창섭은 이러한 극단적인 생활에 처해진 인간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손창섭 소설에 인물들은 동물원 우리 속에 갇힌 동물을 보고 있는 듯한 관찰자적 시선을 통해 희화화되고 있다. 그러기에 손창섭의 문학을 폭로의 문학이라 칭하기도 하는데 작품에는 극한적인 상황에 놓인 인간이 드러내는 추한 면들이 냉소적 시각에 의해 낱낱이 폭로되고 있다.

 이러한 폭로는 인간 본질에 대한 폭로라기보다는 전쟁이 만든 인간의 다양한 모습 중 한 측면에 대한 폭로다. 즉 손창섭은 인간 삶의 한 순간을 포착하고, 그 단면을 드러냄으로써 인간이 지닌 수성(獸性: 사람이 가지고 있는 동물적인 성질)을 폭로하는 데 성공했다. 따라서 손창섭의 소설이 대체로 인생의 단면과 상황에 대한 묘사에 적합한 단편소설 양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특징들로 인해 그는 한국문단에서 이단아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전쟁이 왜 일어나서는 안 되는 가를 설명하는데 이보다 더 적합한 소설이 어디 있을까?

 손창섭 소설은 특히 당대의 젊은 세대에게 인기가 있었는데, 그것은 작품 속에 드러나 있는 우중충하고 암울한 분위기, 절망적이고 무기력한 인물들의 심리상태, 불구적인 인물들이 드러내는 자조의식과 자기모멸의 감정 등이 전후의 젊은이들의 심리상태를 대변해 주었기 때문이다. 당시 젊은 세대들은 손창섭 소설의 인물들에게서 자조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으며, 그 인물들을 통해 자기 연민의 감정까지 느꼈기 때문이다.

 

 

 

 


월간 [신태양지] : 

 1949년, 신태양사에서 황준성이 소설 · 수필 등의 문학 작품과 정치 · 경제 등에 관련된 논문을 수록한 월간 잡지.  발행인 겸 편집인은 황준성(黃俊性), 발행소는 서울 중구 태평로2가 신태양사였다. 판형은 A5판, 면수는 350면 내외였다. 1959년 6월 1일 통권 제80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되었다.

 이 잡지는 소설·수필·희곡 등 문학작품뿐만 아니라, 시사정보 및 국가·사회·경제 등에 관련된 논문을 수록함으로써 종합잡지의 구색을 갖추었다. 당시의 정세가 6·25로 인하여 어려운 경제사정 속에서도 종합잡지의 면모를 갖추고 내용도 충실하였으며, 용지의 질도 향상되고 꾸준한 발행부수를 유지하여 당대의 대표적인 종합잡지의 하나가 되었다. 표지는 컬러판으로 인쇄하였고 주요내용을 선별, 표제를 달았던 특징이 있다. 이밖에 독서안내, 문학·미술·음악감상란 등을 두어 종합매체로서의 면모를 갖추는가 하면 월간타임란을 두어 급변하는 국내외정세에 따른 다각적인 정보를 제공하였다. 특기할 것은 당시의 다른 잡지에 비하여 10년이라는 장기간을 발행한 점을 들 수 있다.

 『신태양』은 한국전쟁기에 창간돼 국내외 정치상황의 동향에서부터 사회문화, 시사, 일상 풍속까지를 망라한 종합지의 전형적 면모를 갖춘 종합지로서 1950년대 한국사회의 격동적 변화상을 아래로부터 종합적으로 수렴해냈다. 또한 당대 문예지에 필적할 만한 문학적 규모와 체계를 지니고 있다. 특히 편집노선의 지속적 갱신을 통해 통권 44호(1956.4 혁신호)를 기점으로 서로 다른 잡지, 즉 전반기의 ‘반공 중심, 대중 중심’의 대중교양지에서 사회비판적 의견지로 탈바꿈함으로써 담론의 기조와 편폭이 타 잡지에 동태적이다. 이와 대응해 문학의 선택과 배치가 현저하게 다르게 나타난다. 전반기 『신태양』의 매체전략은 정론성, 대중성, 시사성으로 요약 할 수 있는데, 시사성을 매개로 상호보완적으로 결합ㆍ강화되는 선순환 관계를 발휘하는 특징을 보인다. 정론성은 철저한 반공주의노선이다. 멸공에 입각한 북진무력통일론을 옹호한 이 같은 정론성은 종군문학의 집중적 문학적 배치로 현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