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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손창섭 단편소설 『신의 희작(戲作)』

by 언덕에서 2024. 3. 22.

 

 

손창섭 단편소설 『신의 희작(戲作)』

 

 

손창섭(孫昌涉. 1922∼2010)의 단편소설로 1961년 5월 [현대문학]에 발표되었다. 손창섭은 1950년대의 우리 문학계를 빛낸 작가로 1955년 <혈서>로 [현대문학] 신인문학상을 받았고, 1959년에 단편 <잉여인간>으로 제4회 [동인문학상]을 받았다. 손창섭은 문단의 기인으로 알려졌으며, 이상인격의 인간형을 그려내어 1950년대의 불안한 상황을 잘 드러냈다. 독특한 시니시즘의 필치, 불의에 참지 못하는 다혈질의 성격 창조, 거침없이 파국으로 몰고 가는 주제의 결말은, 중래 상식적인 문학관을 크게 뒤바꾸어 놓았다.

 단편소설 『신의 희작』은 6부로 구성되며 "시시한 소설가로 통하는 S-좀 더 정확하게 말해서 삼류작가 손창섭 씨"으로 시작하는 작품의 서두 때문에, 손창섭 본인의 삶을 다룬 자전 소설인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켰던 작품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소설은 자전적인 작품이 아니다. 손창섭의 부인 우에노 치즈코가 이에 대해 직접 확증해 주었으며, 2009년에 있었던 [국민일보]와의 인터뷰 '전후 최고 문제작가 ‘손창섭 살아있다' <손창섭 문학의 진실 밝혀지다>에 해당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다만 해당 기사는 손창섭의 어린 시절을 다 알 수는 없는 일본인 아내의 의견일 뿐이고, 현실적으로 그가 스스로에 대해 쓴 것은 이 작품 하나밖에 없으므로, 그에 관해서 알려고 하면 좋든 싫든 거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심리 묘사가 세밀하며, 민감한 소재(성폭행, 정신적 결함 등)를 가감 없이 서술하고 있다. 언뜻 고해성사, 혹은 작가 자신이 걸어온 인생에 대한 해설 같은 느낌이 든다. 곳곳에 자학적이고 냉소적인 정서가 묻어난다. 손창섭 개인을 연구하기 위한 자료로써는 가치가 있을지 몰라도 문학 작품으로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렵다. 

 

소설가 손창섭 (孫昌涉. 1922-2010)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삼류 작가 S-손창섭"은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정서적 학대와 버림을 받고, 이 때문에 자살 기도까지 한다. 이것은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어 자기모멸, 애정결핍, 폭력적 성향을 갖게 만든다. 소학교를 졸업하고 1년 가까이 만주를 전전하다, 일본으로 건너가 고학을 하며 학교를 다닌다. 그러나 애정결핍과 폭력적 성향 등의 성격적 결함 때문에, 원만한 학교 생활을 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키고 만다.

 여성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문제가 보이는데, 여성에 대한 증오심과 폭력적 성향이 결합되어 결국은 성폭력의 형태로 표출된다. 원래 일본인 친구의 여동생이었던 지즈코도 이런 관계를 통해서 결혼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지즈코는 작가의 이런 정서적 결함을 비난하지 않고 다정하게 감싸준다.

 해방 이후 조국에 대한 희망을 갖고 손창섭은 아내와 아이를 일본에 두고 먼저 귀국한다. 그러나 혼란한 사회상 때문에 자리를 잡지 못하고 비참한 생활이 계속된다. 잠시 고향인 평양에도 갔으나 "방자한 그의 인간성이 결코 뿌리박을 수 없는 볼모의 지역"임을 깨달았고, 반동분자의 낙인이 찍히자 다시 월남했다. 이후에도 계속 어려움을 겪지만, 6.25 이후 부산으로 피난을 가면서 극적으로 아내와 재회하고 살게 된다.

 

 

 이 작품은 어려서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환경 속에서 폭력적으로 살아온 주인공의 삶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소재와 서사가 꽤나 충격적인, 가히 손창섭 최고의 문제작이라 할 만한 작품이다. 소설에서 S의 아내 이름이 치즈코인 점 등으로 인해 오랫동안 자전적 소설이라는 학설이 정설로 취급되어 왔었고, 손창섭 문학의 전반적인 연구에서도 중요한 자료로 취급되어 왔다. 때문에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았으나, 그의 부인인 치즈코 여사가 손창섭 본인의 자전적 이야기라는 종래의 설에 대해서 완전한 허구의 창작이라고 밝히면서 자전적 소설이 아님이 드러났다.

 하지만 이도 손창섭의 과거를 알 리 없는 치즈코의 주장일 뿐으로 진실은 그와 함께 죽었다고 봐도 될 것이다. 소설에서 주인공인 S는 소년 시절 어머니의 외간 남자와의 정사 장면을 목격하고 그 충격으로 야뇨증에 걸리는 이상 증세를 보였고, 어머니의 가출로 야생적으로 자라나는 반항기를 거쳐 일본인 친구의 여동생을 강간하고 살림까지 차리는 문제적 인간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앞서 서술되었듯이, 치즈코 여사의 증언에 따르면 실제 손창섭의 어머니는 청상과부로 있다가 젊은 나이에 재가하였고, 손창섭은 할머니 손에 의하여 자라났다고 한다. 또한 소설에서 S는 성도착 증세가 있는 폭력적인 인간으로 나타나지만 실제 손창섭은 내성적인 성격의 애처가로 알려져 있다.

 

 

 단편소설 「신의 희작」은 극단적인 사회 부적응자로서의 자아를 과시적으로 폭로한다. 작품 속에 그려진 나의 형상은 사회화될 기회를 애초에 부여받지 못한 인물이면서 사회에 편입되고자 하는 의지 또한 갖지 못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작가로서의 자신의 이름과 삶을 온전히 소설 속으로 던져놓고 그것을 짓밟아버리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작가 손창섭이 가진 전복적 사유의 힘을 「신의 희작」이라는 문제적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나를 고백하고 있는 서술하는 나는 마치 타자의 삶을 이야기하듯 기만적인 태도를 취한다. 작가는 이에 대해 '공존과 공감을 허용하려 하지 않는 기성사회, 기성권위에 대한 억압된 나의 인간적 자기 발산이 문학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라고 표현한다.

 소설 속 S의 삶은 유년기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이어져 오는 야뇨증과 걸식, 음식 절도, 극단적인 배고픔, 가학적 성충동과 성폭력, 전신에 달라붙은 이 잡기, 싸움과 폭행 등으로 요약된다. 독자는 주인공 S를 악의 총체적 집합소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또한 소설을 읽는 내내 극단으로 치닫는 폭력과 살인 충동, 성폭력 사건 등이 독자를 당혹스럽게 한다. 혹자는 이를 작가가 독자와의 사이에 미리 설정해 놓은 긴장 혹은 기폭장치라고 말한다. 소설의 후반에 커다란 반전을 기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설은 주인공의 비현대성, 비문화성, 비일반성을 그의 생활과 문학에다 비극과 희극을 동시에 투영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