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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성석제 단편소설 『조동관 약전』

by 언덕에서 2024. 1. 17.

 

성석제 단편소설 『조동관 약전』

 

 

성석제(成碩濟. 1960~)의 단편소설로 1997년 발표된 단편소설 <아빠 아빠 오 불쌍한 우리 아빠>의 개정판으로 2003년 발간된 단편집 『조동관 약전』의 표제작이기도 하다.

 성석제 특유의 문체는 소설의 재미를 가중시키는 또 다른 요소이다. 때로는 사투리로 범벅된, 때로는 세련된 서울 말씨로 작가는 자신만의 목소리를 낸다. 주어와 목적어가 모조리 생략된 단문도, 쉼표도 없이 네다섯 문장이 한꺼번에 결합된 장문에서도 작가의 기지는 빛을 발한다. 독자의 호흡을 미리 예측해 가며 글을 써 내려가기라도 한 듯, 중간에 끊기는 법이 없다. 그의 손이나 머리 둘 중의 하나에는 마법이 걸려있다. 경운기, 오리고기, 고액과외, 군대.. 주제어만을 나열하면 그다지 별나거나 우스워보이지 않을 소재임에도, `성석제`를 거치면, 유별나고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는 이야기로 변신한다. 평범한 것을 특별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너무도 어려운 일임을 알고 있기에, 대중들과 뭇 평론가는 그의 상상력에 후한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일부는 그에 대해 `재미는 있으나, 시종일관 가볍게만 쓰는 것은 아니냐`라는 평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분명 시골 장터처럼 구수하고 편안하게 흐르다가도 찰나를 찌르는 `번쩍하는 황홀한` 글발과 재치가 있다.

 소설집의 표제작 「조동관 약전(略傳)」은 지방 소읍을 주름잡는 한 깡패의 인생 유전을 ‘성장-사랑의 좌절-죽음’이라는 궤도에 따라 기술한 작품이다. 작품집 속 등장인물 ‘경두’는 오토바이를 몰아 음식 배달을 하는 소년의 척박한 삶을 속도감 있는 문체로 묘사한 작품이다. 단편소설 「조동관 약전」은 1997년 <동인문학상> 후보작이기도 했다. 성석제의 소설은 마치 농담처럼 진행되는데 이는 사회의 억압적인 권위와 권력에 대한 도전이자, 조롱으로 판단된다.

 

소설가 성석제 (成碩濟 . 1960~)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조동관은 은척읍 역사상 불세출의 깡패로 일명 ‘똥깐’이라고 불린다. 은척 사람들 누구도 똥깐의 망나니짓을 막지 못한다. 어느 날 똥깐은 한 여인과 함께 살림을 차린다. 얼마 후 똥깐의 어머니와의 갈등으로 여인이 떠나자 똥깐은 화를 참지 못해 난동을 부린다. 급기야 똥깐이 역전 파출소로 쳐들어가 기물을 파손하자 똥깐을 체포하기 위해 기동타격대가 출동한다.

 하지만 기동타격대는 섣불리 그를 제압하지 못하고 술에 취한 똥깐이 잠에 곯아떨어지기만을 기다린다. 제풀에 지친 똥깐은 결국 잠이 들고 그 사이에 기동타격대가 그를 체포한다. 이후 감옥에서 출소한 똥깐은 여인을 찾아 전국을 누비지만 여인을 찾지 못해 실의에 빠진다. 그러던 중 똥깐은 자신에게 시간과 힘, 억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똥깐이 역전에서 술을 마시고 있을 때 마침 새로 부임한 경찰서장 일행이 역전 파출소를 순시한다. 똥깐의 행각을 알지 못하는 경찰서장은 똥깐에게 호통을 치다가 심한 봉변을 당한다. 경찰서장은 똥깐을 체포하기 위해 대규모 추격전을 벌이고 똥깐은 인근 야산의 동굴에 숨어서 경찰과 대치하던 중 얼어 죽는다. 똥깐의 죽음 이후 마을에서는 똥깐을 기리는 전설이 생겨나게 된다.

 

영화 [우아한 세계]

 

 똥깐의 본명은 동관이며 성은 조이다. 그럴싸한 자호(字號)가 있을 리 없고 이름난 조상도, 남긴 후손도 없다”로 시작되는 표제작 「조동관 약전」은 제목 그대로 조동관이라는 사람의 일생을 간략히 정리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조동관은 위인전에 나오는 위인이나 영웅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시골 소읍의 깡패일 뿐이다.

 작가는 어려서부터 온갖 개망나니짓에다 마구잡이 행패와 드잡이질로 깡패의 명성을 쌓아온 똥깐이라는 인물의 짧은 일생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놓는다. 예를 들면, 도망간 마누라를 잡으러 나왔다가 실패하고 돌아오는 길에 역전 파출소 유리창을 모조리 작살낸 똥깐이 재판을 받고 최종적으로 가게 된 곳이 ‘소년범을 수용하는 교도소’였다는 식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 ‘조동관’은 원래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러나 성장 과정에서 그는 평범하지 않은 인간으로 알려지는데, 그 이면에는 주인공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그 시선의 변화 과정이 드러나 있다. 이를 바탕으로 평판의 특징을 이해할 수 있다. 평판은 어떤 원인에 의해 생성되고 축적되는 결과물인 까닭에 혹자는 평판을 타인의 시선에 비친 누군가의 모습이다. 이러한 평판의 속성으로 인해 때로는 다수의 사람들이 정보를 교환하는 과정에서, 정보량 및 인식의 차이에 의해 의도와 상관없이 대상에 대한 정보가 왜곡, 은폐, 과장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이 군중의 인식에 영향을 주어, 대상이 본질과 다른 방향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도망간 마누라를 향한 순애보로 읍내를 다시 한번 놀라게 한 똥깐이 술에 취해 경찰과 대치하다 산에서 얼어 죽고, ‘똥깐이 바위’를 신화로 남기기까지 「조동관 약전」은 ‘전(傳)’으로 쓰기에는 너무도 허접스러운 인물을 통해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깡패’를 그려 보여준다. 작가는 똥깐의 생애를 신화적 어조로 너스레를 떨며 과장함으로써 그것의 보잘것없음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데, 그 과정에서 보잘것없음의 건너편에 도사리고 있는 더 큰 제도적 폭력을 자연스럽게 환기시킨다.

 이 작품은 은척읍에 살고 있는 조동관이라는 인물의 삶을 전(傳)의 형식을 차용해 그리고 있는 소설이다. 작가는 건달이면서도 사람들과 커다란 은원을 지고 있지도 않고, 한편으로는 사리 판단이 부족한 어리숙한 모습으로, 또 한편으로는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를 찾기 위해 몇 년이나 소비할 정도로 과감한 모습을 보여 주는 인물을 그리면서, 경찰서장으로 상징되는 공권력의 부당한 행사와 그에 대한 저항을 풍자적 기법으로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