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란 단편소설 『곰팡이꽃』
하성란(河成蘭, 1967~)의 단편소설로 계간지 [문학동네] 1998년 여름호에 발표되었으며 1999년 제30회 [동인문학상]을 수상작이다. 하성란의 소설은 자본주의에 소외되어가는 현대인의 심리, 무력함이 파편화된 인물들을 그리는데, 제대로 된 소통이 되지 않아 생기는 고독한 내면을 아주 정밀하고 섬세하게 표현한다. 작가는 현대인의 고독함을 묘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인간에 대한 믿음이나 소통을 욕망하는 경향이 다분하다.
『곰팡이 꽃』은 쓰레기봉투 속에 진실이 있다고 믿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타인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남자를 통해 현대인에게 만연한 소외와 고독의 문제와 소통에의 욕구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곰팡이꽃」은 아파트 단지의 쓰레기통을 뒤져 이웃집 타인들에 대한 개인정보를 모으는 익명의 사내를 그린 특이한 작품으로 작가 특유의 속도감 있는 현재형 문장, 그리고 인간 심리와 사물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밀하게 묘사한 개성적인 작품이다. 2023년 심혜정에 의하여 <너를 줍다>라는 제목으로 영화로 만들어져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 에 출품되어 2개 부문에 수상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우연히 자신이 버린 쓰레기봉투를 발견하게 된 남자는 자신이 버린 쓰레기임에도 불구하고 낯선 느낌을 받게 된다. 쓰레기봉투를 집으로 가져다 파헤친 남자는 그 쓰레기들 속에 자신 삶의 진실이 있다고 믿게 된다.
이후부터 남자는 진실이란 쓰레기봉투 속에 있다는 생각을 고수하며 남몰래 아파트 단지의 쓰레기통을 뒤져 그 속에서 나온 정보들로 이웃들을 파악해 나간다. 이렇게 쓰레기통을 뒤지던 남자는 507호 여자에게 호기심을 가지게 되고 그녀가 연인과 헤어졌음을 알게 된다. 남자는 여자와 그 연인인 사내를 이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여자의 쓰레기를 더욱 집중적으로 살핀다.
그러나 남자가 507호 여자의 쓰레기 속에서 알아낸 정보들은 모두 버려진 쓰레기였을 뿐이다. 남자가 연인인 사내에게 알려준 버려진 정보, 즉 잘못된 정보로 인해 두 남녀는 다시 만나게 되지만 곧 여자는 아파트를 떠나고 만다.
직장도 있고 신체 건강한 이 사람은 왜 하필 쓰레기를 뒤지고 있었을까? 작중 주인공은 한밤 중에 버려진 쓰레기 봉지를 헤쳐보는, 아무도 하지 않을 행동을 하고 있다. 그의 수첩에는 세상의 숨겨진 진실이 담겨있다. 매일 밤마다 욕조를 가득 채울 만한 쓰레기를 비집은 결과이다. 그런데, 이 호기심 많은 남자는 대체 왜 하필 쓰레기를 뒤지고 있는 걸까?
작가는 이야기 한다. “쓰레기는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보기만해도 구역질 나는 쓰레기 더미에 자라는 곰팡이는 그 순간 ‘꽃’이 되어 버린다. 깜깜한 암흑 속에서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옳은 것인지 분간하지 못할 때, 무엇보다 아름답게 빛나는 진실이, 생각만 해도 불쾌한 곰팡이와 함께. 쓰레기 안에 담겨 있다.“
이 소설은 밤이면 쓰레기를 뒤지는 한 남자의 거동을 미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지역의 생활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서는 애매모호한 설문지보다는 쓰레기장을 뒤지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서로에 대해 알고 있다는 확신이라는 것이 터무니없는 오해에 불과하다.
♣
정보의 홍수와 대량생산 사회 속에서 정작 진실과 인간적 소통의 길은 폐기물 속에 숨어 있다는 것이 이 소설의 주제이기도 하다. 3인칭 시점에서 기술된 이 소설은 이웃끼리 익명의 관계로 지내는 아파트 단지를 무대로 삼고 있으며, 소설의 등장인물들도 철저하게 무명씨들이다. 주인공인 남자, 옆집에 사는 여자, 그 여자의 집 앞에서 사랑의 회복을 호소하는 또 다른 사내가 등장한다. 이처럼 단순한 인물 삼각형 중 남자가 옆집 여자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그녀의 집에서 나온 쓰레기 봉투를 수거한다. 주인공 남자는 쓰레기 종량제를 어긴 후 겪은 사건으로 인해, 쓰레기가 인간 내면의 진실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이후 주인공은 밤마다 이웃의 쓰레기를 뒤지고 다닌다. 그는 ‘콩깍지’, ‘맥주뚜껑’같은 사소한 정보에서 90가구의 취향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짝사랑 실패 이후 인간관계에 겁을 먹고 있던 그에게 ‘쓰레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명제는 진리에 다름 아니었다. 때문에 이웃집 ‘여자’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으면서도 그는 인간적인 접근과 대화 대신, 쓰레기를 통해 그녀와 소통하려고 한다.
주인공 남자는 그녀의 쓰레기에서 그녀의 애인도 모르는 ‘진실’을 발견한다. 저열량의 음식 쓰레기에서 그녀가 다이어트 중이라는 것을 알았으며, 곰팡이 꽃이 핀 생크림 케이크를 발견함으로써 ‘여자가 생크림 케이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쓰레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거짓말을 한 것은 사람이다. 생크림 케이크에 곰팡이 꽃을 피우게 만든 것은 그들 인간관계의 허상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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