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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최서해 단편소설 『홍염(紅焰)』

by 언덕에서 2023. 11. 29.

 

 

최서해 단편소설 『홍염(紅焰)』

 

최서해(崔曙海. 최학송. 1901∼1932)의 단편소설로 1927년 1월 [조선문단]에 발표되었다. 프로문학의 성격을 잘 나타낸 대표적 작품 중의 하나다. 최서해의 빈궁문학(貧窮文學)의 대표적 작품인 이 단편은 자연주의적 리얼리즘에 바탕을 둔 최서해 자신의 빈궁한 삶의 체험을 작품화한 소설이다.

 1920년대 겨울, 백두산 서북편 서간도에 있는 바이허(白河)라는 곳을 중심 배경으로, 중국인 지주 '인가(殷哥)'에게 착취당하는 조선인 소작농의 울분과 저항을 그린 신경향파 소설이다. 빈곤과 민족적 대립의 문제가 중심 갈등 요인이 되고 있으며, 특히 결말의 방화와 살인은 신경향파 소설의 전형적인 문제 해결 방식이다. 스토리는 무산자(無産者)의 전형적 인물인 소작인 문서방의 인물 설정과 주지인 중국인 인가의 설정 그리고 결말에 처리된 방화(放火)와 살인이라는 계급투쟁으로 전개된다. 서간도(西間島) 한 귀퉁이에 있는 가난한 촌락 ‘바이허(白河)’ 마을을 배경으로 하여 그린 러시아풍의 침울하고 장중한 묘사가 뛰어나다.

 1920년대 한국 문학의 중요한 일부를 차지하는 것이 신경향파문학이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시작된 계급주의 사상이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에 유입되면서 이를 바탕으로 한 문학 운동이 전개되었는데 이것이 신경향파 문학이다. 신경향파문학의 특징은 첫째, 소재를 궁핍한 데서 찾은 것. 둘째, 지주 대(對) 소작인 또는 공장주 대(對) 노동자의 대립을 중심 플롯(plot)으로 한 것. 셋째, 결말이 살인ㆍ방화로 끝나는 내용 등이다.

 

1930년대 후반 북만주로 이민을 갔던 조선인들이 움막집을 짓고 사는 모습이다.<사진=동아일보> 출처 : 강진일보(http://www.nsori.com)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경기도에서 소작인 생활 10년에 겨죽만 먹다가 서간도로 이주한 문서방은 이곳에서 흉년으로 소작료를 갚지 못해 매까지 맞는다. 어느 가을, 마당에서 깨를 떨던 문서방의 아내는 인가가 오는 것을 보고 걱정한다. 인가는 올해는 빚을 갚으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억센 손으로 문서방을 구타한다. 문서방의 아내는 인가의 팔에 매달려 살려달라고 애원하나, 인가는 그녀를 자기 아내로 삼겠다고 데려가려 한다. 그러자 안에서 바느질을 하던 문서방의 딸 용례가 달려 나와 어머니를 잡은 인가의 손을 물어뜯는다. 용례를 본 인가는 문서방의 아내를 놓고 대신 용례를 데려간다. 문서방 내외가 허둥지둥 달려가지만, 소용없었다. 영영 용례는 인가의 손에 넘어갔고, 그 후 문서방은 땅날갈이나 받고 지금의 ‘바이허(白河)’로 이주한다. 그리고 인가는 용례를 문서방 내외에게 보이지 않는다.

 가난한 촌락 바이허에 겨울이 찾아들며 몹시 추운 날 아침 문서방이 집을 나서려는데 한 관청 사람이 찾아와 그들은 되놈(胡人)이니 일절 욕을 하지 말라고 한다. 문서방은 분개하며 집을 나선다. 언덕길을 올라 강가에 이르자 파리꾼들이 문서방을 보고 욕을 하지만, 문서방은 허둥지둥 빙판을 건너 사위 인가가 사는 달리소라는 땅에 올라선다. 조선인의 마을을 지나면서 그는 죽어가는 아내가 용례를 데려다 달라고 애원하던 광경을 떠올린다.

 문서방이 인가의 집 대문에 들어서자 개무리가 덤벼든다. 일꾼이 나와 개를 쫓고 그를 수수깡이 너절한 방으로 안내한다. 인가는 웬일인지 서투른 대로 곧잘 하던 조선말을 하지 않고 알아듣지 못하는 중국말을 하며, 담뱃대를 문서방 앞에 내민다. 문서방은 20년 가까이 기른 딸을 빼앗긴 것도 원통한데, 자유로 볼 수 없음을 생각하고 운다. 인가는 문서방에게 백조짜리 석 장을 주고 가라고 한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그에게 개들이 쫓아 나와 짖어댄다. 부뚜막에는 문서방의 아내가 누덕이불에 싸여 누웠고, 그 옆에는 이웃사람들이 모여있다. 막 달려서 인가네서 온 문서방은 아내의 손을 잡는다. 문서방의 아내는 용례를 부르다가 오장육부가 쏟아지게 소리를 지른 뒤 검붉은 핏덩이를 왈칵 쏟으면서 쓰러진다.

 한 관청이 귀신을 부르는 경문을 서투르게 읽는다. 손발이 식어가고 낯빛이 파랗게 질려가던 아내는 무엇을 노려보며 죽는다. 문서방의 울음소리는 고요한 방안의 불빛 속에 바람소리와 함께 처량하게 흐른다. 아내가 죽은 이튿날 밤에도 바람이 몹시 분다. 우렁찬 바람에 날리는 눈발 속에 문서방은 달리소 언덕으로 올라가서 인가네 보리짚더미에 불을 붙인다. 불은 울타리를 타고 집으로 옮겨 붙는다. 인가가 도망치는 것을 발견한 문서방은 인가를 도끼로 찍어 죽이고 딸 용례를 부둥켜안고 운다. 그리고 불길은 모든 것을 태워 버릴 것처럼 하늘하늘 피어올랐다.

 

소설가 최서해 ( 崔曙海 . 최학송 .1901 &sim; 1932)

 

 백두산 서북 편 서간도 한 귀퉁이에 있는 가난한 촌락 바이허(白河)의 눈발 날리는 1920년경의 어느 겨울, 한국 이민 농부들이 사는 곳이 배경이 된 이 소설의 등장인물은 중국인의 땅을 소작하는 중늙은이인 문 서방과 중국인 지주이며 문 서방의 딸 용례를 빚 대신 강제로 데려간 은(殷)가, 문 서방의 외동딸인 용례, 용례를 빼앗기고 발광하다 죽는 문 서방의 아내 등이다.

 딸을 빼앗긴 문 서방은 되놈으로부터는 ‘조선 거지’, 한국인으로부터는 ‘딸 팔아먹은 놈’으로 궁지에 몰리고, 1년 후에 아내마저 잃는다. 아내가 죽은 이튿날 밤 문 서방은 은가의 집으로 달려가 불을 지르고, 도끼로 은가를 찍어 죽이며, 딸을 품에 안는다. 그것은 딸을 안은 기쁨만이 아니라고 작자는 토를 달고 있다.

 이 작품의 한계성은 자연 발생적인 상태에서 쓰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살인 방화는 일시적, 발작적 행위이지 어떤 문제의 해결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힘은 매우 직선적이고도 간결한 문체에서도 오고 있다. 그가 우리말의 문장 수업을 열심히 한 증거이다.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는 다음 세 가지를 주목해야 한다. 첫째, 최학송은 만주 등지를 방랑하며 직업을 전전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창작을 했다. 둘째, 소재를 궁핍한 것에서 찾았으며 구성은 지주 대 소작인, 또는 공장주 대 노동자의 대립으로 되어 있고, 결말이 살인, 방화로 끝나는 이른바 '신경향파' 적인 요소가 전형적으로 나타나 있다. 셋째, 결말의 살인, 방화는 신경향파의 한계를 나타낸다는 점이다. 살인, 방화는 자포자기의 상태에서의 충동적 행위이지 문제의 올바른 해결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일제의 경제 수탈로 궁핍을 면치 못하던 1920년대 서간도 바이허를 배경으로 그곳에 사는 조선인들의 비참하고 억눌린 삶을 그리고 있다. 지주에게 딸을 앗기고 그 충격으로 아내마저 죽게 되자, 방화와 살인으로 보복을 감행하는 주인공의 극단적인 행동은 민족적 울분의 심도를 짐작하게 하는 한편으로 그 한의 극복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알려주고 있다. 극적인 줄거리를 묘사보다 서술에 의존해 이끌어감으로써 '들려주는 이야기'의 효과만을 얻게 된다. 또한, 이 작품은 신경향파적인 작품으로서 빈곤과 민족적 대립 문제가 중심 갈등 요인으로 되어 있다. 이야기의 결말이 살인으로 끝난다는 점에서는 김동인의 <감자>와 유사하고, 결말이 방화로 나타난다는 점에서는 현진건의 <불>과 유사하다.

 '작다고 믿었던 자기의 힘이 철통 같은 성벽을 무너뜨리고, 자기의 요구를 채울 때 사람은 무한한 기쁨과 충동을 받는다.'라고 소설은 결론 맺고 있다. 복수의 방법으로 방화와 살인이 등장하고, 그것은 파괴의 전형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