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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이태준 단편소설 『돌다리』

by 언덕에서 2023. 11. 28.

 

이태준 단편소설 『돌다리』

 

 

월북작가 이태준(李泰俊, 1904~?)의 단편소설로 1943년 1월 [국민문학]에 발표되었다. 일제 강점하에 쓰인 작가의 마지막 작품에 속한다. 작가는 그 해 두 편의 소설과 몇 편의 시국 관련의 글을 썼지만, 끝내 붓을 꺾고 낙향하였기 때문이다. 작가의 대표작으로 꼽는 <농군>, <토끼 이야기>, <밤길> 등이 1938년부터 1943년 사이에 창작되었다는 사실에서도 그의 현실 인식 변화를 뚜렷이 감지할 수 있다.

「돌다리」에는 서울의 권위 있는 의사가 된 창섭이 고향 땅을 팔아 서울의 병원을 늘리고, 부모님을 서울로 모시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온다. 하지만 아버지는 창섭의 말을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창섭에게 하늘과 땅에 대해 그리고 사람이 가야 하는 길에 대해 말한다. 결국 창섭은 아버지의 뜻에 충분히 공감하고, 서울로 올라간다는 내용이다. 

 특히 이 작품에서 작가는 그동안 관념으로 이해하던 상고주의의 의의를 성공적으로 용해시키고 있다. 그것은 무분별한 근대 추구에의 정면 도전이며 전통 옹호를 위한 확고한 신념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노인 특유의 아집으로 자식의 정당한 의사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할 가치를 내세워 거부하고 있기에 설득력이 있다. 이 작품은  땅을 팔아서 병원을 확장하려는 아들과 땅을 하늘처럼 여기며 소중히 하는 아버지의 갈등을 통해 물질적, 정신적 가치만을 중시하는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가치관을 비판하고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창섭은 어려서 의사의 오진(誤診)으로 허무하게 숨진 누이를 위해 의사가 된다. 창섭은 서울에서 맹장 수술로 정평이 난 권위 있는 의사가 된다. 창섭은 병원 확장을 위해 모자라는 돈을 고향땅을 팔아 채우고, 부모를 서울에서 모시리라 결심하면서 고향으로 내려오지만 그 계획은 의외로 완강한 부친의 반대로 직면한다.

 창섭의 부친은 동네에서 근검하기로 소문난 사람인데, 부지런히 일할 뿐만 아니라 논과 밭을 가꾸는 일에 모든 정성을 들이고 아들 학비로 동네 길들을 물론 읍내 길과 정거장 길까지 닦는 사람이다. 창섭이 고향에 도착했을 때 부친은 장마에 내려앉은 돌다리를 보수하고 있었는데, 창섭이 서울로 올라가자는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한다.

 부친은 창섭이 땅을 허술히 생각하고 있는 것에 가슴 아파하지만, 창섭은 자기 세계와 아버지 세계와의 결별을 체험하고 서울로 다시 올라간다. 아버지는 다음날 새벽이 되자마자 보수한 다리로 나가 세수를 한다.

 

 

 이태준의 부친 이문교는 개화파 지식인으로서 함경남도 덕원감리서(德源監理署)에 근무한 지방관원이었는데, 당시 한말의 개혁파의 운동에 가담하였던 듯 수구파에 밀려 블라디보스토크 등지로 망명하다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가정형편으로 인하여 어려서부터 어렵게 수학하였다.

 1920년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당시 그 학교의 교원이었던 이병기(李秉岐)의 지도를 받아 고전문학의 교양을 쌓았다. 그런데 학교의 불합리한 운영에 불만을 품고 동맹휴학을 주도한 결과 퇴교를 당하였다. 1926년 일본 동경에 있는 조오치대학(上智大學) 문과에서 수학하다 중퇴하고 귀국하였다.

 이 작품에서 아들과 아버지의 가치관 차이는 나무다리와 돌다리로 형상화된다. 할아버지 상돌을 건너다 모신 다리, 아버지가 천자문을 끼고 글 읽으러 다니던 다리, 어머니가 가마 타고 시집오던 다리……. 가족의 추억이 담긴 ‘돌다리’는 아버지의 땅에 대한 애착과 일맥상통한다. 아버지에게 땅은 이해타산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처럼 돌보아야 할 정신적 가치를 지닌 우리 민족의 삶의 터전이요, 근본이기에 아들 또한 수용해야만 했을 것이다.

 

 

 단편소설 『돌다리』는 전통적 성향과 근대적 성향과의 대변을 통해 세대 간의 자기 성찰의식에서 전통으로의 확고한 수용을 드러내는 노인과는 달리, 보기에 따라 근대적 관념 속에서 우유부단하고 확고하지 못한 세계관을 가진 지식인의 나약한 소신을 보여준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작가 이태준이 이전의 이상적 삶 모색기에 등장하던 인물들에게서 취하던 현실 대응 방식과는 다른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처럼 「돌다리」는 신구 세대가 갈등을 일으키는 것을 넘어 서로 공감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서로 다른 세대가 조화롭게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이 작품에서 그리고 있는 창섭의 부친의 모습에서 청년층과 노년층, 다시 말해서 근대와 반근대(反近代)가 접할 수 있는 거점을 마련해 놓고 있는데, 이는 부자(父子)가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고 존경함으로써 신구 세대 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들 부자가 보여 준 상호 이해와 신뢰의 정신은 서로 다른 가치 지향점을 가진 세대가 근대화의 급류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를 극명하게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