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창섭 단편소설 『혈서(血書)』
손창섭(孫昌涉. 1922∼2010)의 단편소설로 1955년 1월 [현대문학]에 발표되었다. 그해 [현대문학] 신인상 수상작이다.
‘혈서 쓰듯 / 혈서라도 쓰듯 / 순간을 살고 싶다. // (1련 생략) // 모가지를 / 이 모가지를 / 뎅겅 잘라 / 내용 없는 / 혈서를 쓸까!’ 라는 시적 서두를 통해서, ‘모가지를 뎅겅 잘라 내용 없는 혈서를 쓰고자 한다’라고 소설을 시작한다. 이처럼 작가는 작중 주인공을 통하여 한국전쟁 이후 불의에 참지 못하는 다혈질의 성격을 가진 인간을 창조하였다.
이 작품은 한국전쟁 이후 사회에서 소외된 비정상적 인간들의 '병적 도착심리(倒錯心理)'를 그린 문제작이다. 작중 달수, 준석 두 사람은 규홍에게 기생하는 이들이며, 그들은 누가 창애의 신랑감인가를 주제로 논쟁을 벌인다. 준석은 규홍이를 후보자로 밀지만, 위선자 준석은 어느 겨울밤 창애 방에 침입하여 육체관계를 맺고, 창애는 이내 임신한다. 이 사실을 달수가 폭로하자 준석은 앙갚음으로 병역 기피자로 고발당하든가 아니면 혈서를 써 보라고 달수에게 강요한다. 급기야 달수의 손가락을 도마 위에 놓고 식도로 내려친 후 준석은 도망치고 만다.
손창섭의 <비 오는 날>, 「혈서」 등은 우리 문학의 전후 소설 중에서도 '대표작'에 속하는 작품이다. 1920년에 잉태한 한국 현대소설은 손창섭의 전후 소설에 이르러 드디어 그 의식이나 기법 면에서 현대 소설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불이라고는 지펴 본 적이 없는 판잣집 방안에는 준석이가 이불을 둘러쓰고 누워 있다. 취사도구가 놓여 있는 한쪽 구석에는 석유풍로와 나란히 창애가 앉아 있다. 같은 집에 기거하는 달수와, 준석, 창애는 해당 집의 주인 격인 대학생 규홍의 하숙비에 기생해 사는 존재들이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빈집이 된 규홍의 하숙집에 기거하게 된 창애의 아버지 박 노인은 행상(行商) 때문에 늘 집을 비운다. 규홍이는 무명 시인이며 대학생이다. 규홍의 친구 고학생 달수는 직업을 구하기 위하여 매일 거리를 쏘다니다 밤에야 기어든다. 역시 규홍의 친구인 가짜 상이군인 준석은 다리 하나가 없는데 달수만 보면 병역기피자라며 공연히 시비를 거는 이다.
규홍은 충남 시골의 고향에서 면장을 하는 부유한 집안의 장남으로 법대를 나와서 판검사가 된다는 조건으로 서울에 유학을 왔다. 고향 집에서 매달 하숙비를 보내오는데 그는 부친의 뜻과 달리 국문과에 적을 두고 문학 공부에 몰두한다. 전쟁 후 서울에 돌아온 규홍은 하숙집에 박 노인의 딸 창애가 돌부처처럼 머물고 있음을 발견한다. 창애는 정신지체에다 간질병이 있는 처녀이다. 하는 일 없이 규홍의 하숙비를 뜯어먹는 두 남자와는 달리 창애는 밥을 해주고 설거지도 한다. 그녀의 아비인 박 노인은 지방으로 먹과 붓을 팔러 다니다 한 달 혹은 두 달에 한 번씩 창애를 보러 온다.
대학 졸업 후 입대하겠다는 계획을 가진 달수는 구직한다며 종일 거리를 헤매다가 돌아온다. 준석은 달수가 병역기피자라며 조속히 입대하라고 강요한다. 규홍은 문학을 공부한다며 프랑스어를 강습받고 아홉 시가 훨씬 넘어서 집에 들어온다. 그는 신문과 잡지 등 여러 곳에 투고하지만, 그의 시가 어디에도 발표된 적은 없다. 최근 그가 심혈을 기울여 쓴 작품은 '혈서'라는 제목의 시이다. 불구자 준석은 규홍이 시를 쓰는 데 불만이며 그가 없는 사이 그의 시를 비판하다가 달수와 논쟁을 한다.
창애는 밥을 끓이고 설거지를 하는 일 외에는 언제나 돌부처처럼 앉아 있다. 박 노인은 가끔 규홍에게 자기의 딸과 결혼할 것을 부탁하는 편지를 보내온다. 그러면 준석은 달수더러 규홍과 창애의 결혼을 찬성하라고 강요한다. 달수는 그들의 결혼에 반대하는 태도를 보이지만 준석의 주먹다짐에 맥없이 무너진다. 규홍과 창애는 두 사람의 논쟁에 상관하지 않는다. 혹독한 추위가 기승을 부리자 규홍의 양쪽 옆에 누운 달수와 준석은 논쟁을 벌인다. 남자 셋이 덮기에는 이불이 작으므로 누군가가 옆방의 창애와 이불을 같이 덮고 자기로 합의하나 누가 가느냐로 고심한다. 준석은 자신이 가겠다고 하며 달수는 규홍이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준석이 창애의 방으로 들어가 버리자 규홍은 웃기만 한다. 순간, 달수는 오래전부터 준석이 창애에게 손을 대어왔다고 의심한다.
방학이 되어 규홍이 고향으로 내려갈 무렵 박 노인의 편지가 다시 온다. 준석은 또 규홍과 창애의 결혼을 주장한다. 달수는 용기를 내서 창애가 임신한 사실을 폭로한다. 창애의 임신이 자기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면서 준석이 격분하자 달수는 분해서 눈물을 흘린다. 준석은 달수를 병역 기피자로 몰면서 혈서를 쓰라고 강요하다 달수의 손가락을 절단한다. 선혈이 도마와 방바닥을 적시자 달수는 기절하고 준석은 지팡이를 짚고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달수는 길을 걷다가 거리에서 문득 인간 실존의 문제에 직면한다. 한 번은 거리에서 바로 자기 앞을 걸어가던 사람이 미군 트럭에 깔려 즉사했다. 그때 달수 자신도 하마터면 트럭 앞대가리에 이마 빼기를 들이받을 뻔했다. 그날 이후 달수는 자기가 살아 있다는 데 불안을 느끼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대량 살육이 자행되었던 6.25 때가 아니라, 그러한 불안은 실로 그날부터였다. 따라서 자기는 왜 죽지 않고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을까가 문제 되기 시작했다.
그 생각은 납덩어리처럼 무겁게 잠시도 쉬지 않고 그를 짓누른다. 그러한 달수에게는 준석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더욱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살아 있음'에 대한 실감은 인간 위기의 자각을 의미한다. 전후 세대들이 갖는 절망감 속에서 실존의 문제가 제기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전쟁을 겪고 났을 때, 그들은 '우연히 살아 있는 인간'이었다. 그들의 인생은 스스로 선택한 삶이 아니라, 그렇게 선택된 삶이었다. 전쟁의 와중에서는 오히려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훗날 전쟁이 휩쓸고 간 피난지에서 그들은 자신이 살아 있음을 실감한 것이다.
손창섭 소설에서 실존의 문제는 허무주의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허무의 정체는 우선 책임의 부재로 나타난다.
이 자식아, 창애의 배가 불렀건 꺼졌건, 그게 나하구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냐? 창애의 배는 어디까지나 창애의 배지, 내 배는 아니다. 창애 배가 부른 게 어째서 내 죄란 말이야. -본문에서
창애라는 정신지체 여자를 두고 준석과 달수가 벌이는 한판 논리다. 창애 부친은 이 집주인 격인 규홍이가 창애와 결혼해 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달수는 창애가 간질병 환자이기 때문에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한다. 준석은 결혼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 두 사람에게는 어디까지나 자기의 생각과 주장만이 문제이다. 그러던 어느 날, 창애가 준석의 애를 임신하는 사건이 생긴다. 달수가 볼 때 그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준석은 그게 뭐 문제가 되느냐는 것이다. 전후 세대들은 전쟁이 바로 자기 책임이 아니듯, 어떤 일도 자기 책임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는다. 심지어는 자기가 저지른 일까지도 자기 책임이 아니라는 논리적인 강변을 낳는다. 극단의 무책임과 허무주의다.
♣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비정상적인 성격의 소유자이거나 신체의 장애를 가진 이들이다. 즉, 불구자들이다. 이러한 인간의 불구성(不具性)은 손창섭 소설의 특징이기도 하다. 한 집에서 동거하고 있는 「혈서」의 인물들의 삶은 매우 일그러져 형상화된다. 달수는 가능하지도 않은 일자리를 찾아 끝없이 거리를 헤매는 젊은이고, 군속으로 전방에서 다리 한쪽을 잃은 준석은 비틀어질 대로 비틀어진 성격을 가진 이며, 창애는 선천적으로 정신 작용이 온전하지 못한 데다 간질병 환자이다. 달수와 준석은 파열되고 분열된 인간으로서 언제나 무의미한 입씨름으로 서로를 헐뜯는다. 특히 달수의 손가락을 자르는 준석의 가학적 폭력은 자기 다리를 잃은 데 대한 과잉된 보상심리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비록 그 사실 여부를 알 수는 없으나 준석이 자기 다리를 전장에서 잃었음을 강조하는 대목은 이들의 결함이 인간의 본성 자체에서 연유하는 것이 아니라 전후 현실의 상황에서 비롯된 것임을 추측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들이 살아가는 '비생활적'인 '생활'의 공간은 자주 '동굴 속'으로 표현된다. 그 동굴 속은 어둡고, 그 안에 불구자가 누워 있고, 그 옆에 하릴없는 실업자가 그것을 지켜보고, 그래서 그곳은 가난과 사랑의 위험 지대로써 모든 손창섭 소설을 하나의 암울한 폐허로 그려낸다.
이 겨울 들어 불이라고는 지펴본 적 없는 방 한가운데 다리 하나 없는 준석(俊錫)은 이불을 쓰고 누워 있는 것이다. 그는 낮이나 밤이나 한 장밖에 없는 이불속에 엎드린 채 일어나려 하지 않는 것이다. 첫째 춥기도 하려니와, 일어나 앉아 그에게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것이다. 준석이가 누워 있는 발치 쪽으로 취사도구가 놓여 있는 석유풍로와 나란히 창애(昌愛)는 언제나 그 자리에 그렇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었다. - 본문에서
그 안에 한쪽 다리가 없는 불구자 준석과, 그 곁에 또 간질병 환자인 창애가 누워 있는 동굴 속 같은 풍경은 모든 손창섭 소설을 하나로 모습 짓는 전후 피난 생활의 음화다. 불구자가 있는 풍경은 음산하지만, 그 불구자를 향한 시선은 따뜻하다는 점 또한 손창섭 소설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들은 불구자와 함께 어울려 산다. 간질병자인의 창애는 달수가 돌본다. 그의 소설 속에 어차피 완벽한 인물은 없다. 경제적으로 궁핍하거나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결핍된 인물들뿐이다. 결핍된 인물이 결핍된 인물을 돕는 모습은 불합리하지만 따스한 모습이다.
한국 문학에 있어서 전후 소설은 6․25 전쟁 이후 나타나게 되는데 전쟁 이후의 상황에서 비롯된 허무주의와 실존적 불안감을 근거로 하여 출발한다. 즉, 기존의 전통적 모럴에 대한 부정 의식과 극도의 불안과 허무주의가 나타난다. 여기에 서구의 '분노한 젊은이(Angry younng man)'나 '비트 세대(Beat Generation)', 실존주의 등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 작품에는 전쟁의 참혹성과 거기에서 오는 허무 의식, 인간성의 파괴 그리고 생활의 의욕을 잃고 방황하는 황폐한 삶의 양태 등이 짙게 반영되어 있다.
'한국 현대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서해 단편소설 『홍염(紅焰)』 (2) | 2023.11.29 |
---|---|
이태준 단편소설 『돌다리』 (2) | 2023.11.28 |
이청준 장편소설 『자유의 문』 (0) | 2023.11.22 |
허준 단편소설 『습작실에서』 (0) | 2023.11.21 |
김동리 단편소설 『바위』 (20) | 2023.1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