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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황순원 단편소설 『이리도』

by 언덕에서 2024. 7. 13.

 

황순원 단편소설 『이리도』

 

황순원(黃順元 1915∼2000)의 단편소설로 1950년 [백민(白民)]에 발표되었다. 간결하고 세련된 문체, 소설 미학의 전범을 보여주는 다양한 기법적 장치들, 소박하면서도 치열한 휴머니즘의 정신,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에 대한 애정 등을 고루 갖춤으로써 황순원의 작품들은 한국 현대소설의 전범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그의 소설들이 예외 없이 보여주고 있는 서정적인 아름다움과 소설문학이 추구할 수 있는 예술적 성과의 한 극치를 시현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소설문학이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데 주력할 경우 자칫하면 역사적 차원에 대한 관심의 결여라는 문제점이 동반될 수 있지만 황순원의 문학은 이러한 위험도 잘 극복하고 있다. 그의 여러 장편소설들을 보면,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충실하게 살려놓으면서 일제강점기로부터 이른바 근대화가 제창되는 시기에까지 이르는 긴 기간 동안의 우리 정신사에 대한 적절한 조명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단편소설「이리도」는 일본인이 몽골 지방에서 이리 떼에 총질을 하다가 흔적도 없이 죽어 버렸다는 이야기가 중심 내용으로, 이것을 '만수 외삼촌'이 '나'에게 들려주는 액자 양식을 취하고 있다. 하찮은 '이리'마저도 그 생존의 위협을 받으면 반발하고 투쟁한다는 것을 통해서 독자에게 어떤 깨달음을 느끼게 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만수'와 '나'는 만수네 단칸방에서 꿈과 동경을 키워 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느 추운 겨울 밤 '만수 외삼촌'으로부터 그가 실제로 겪었던 '흥안령 저쪽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더욱 넓은 세계로 통하게 한 이야기였다.

 몽골 땅에 간 '만수 외삼촌'은 어떤 집에서 묵게 되었다.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일본인, 그리고 주인과 함께 세상 이야기를 하던 중, 개 짖는 소리를 들었다. 주인이 이리 떼가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이리 떼는 직접 총격을 받으면 미친 듯이 달려드는 속성이 있다면서 그 예로써 국경을 지키던 군인 셋이 죽은 사실을 말해 주었다.

 그러나 총을 빼 든 일본인은 '대일본 제국 신민의 솜씨'를 보여 주겠노라며 주인의 만류를 뿌리치고 이리 떼를 향해 집을 나섰다. '만수 외삼촌'과 몽골인 주인은 어서 돌아오라고 외쳐댔지만 잠시 후 몇 발의 총성이 울리더니 잠잠해졌다. '만수 외삼촌'은 일본인이 무사하기를 바라면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집주인은 '만수 외삼촌' 앞에 일본인 권총을 내밀었다. 권총에는 검붉은 피가 묻어 있었고, 손잡이에는 이리의 이빨 자국이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이리 떼를 모두 없애겠다던 일본인은 이리 떼의 공격으로 처참한 죽음을 당한 것이다.

 이리의 이빨 자국? 음, 이게 바로 이리의 이빨 자국이라?

 다음은 주인의 설명을 듣지 않아도 좋았다.

 이리도, 그러면 이리까지도?

 

 

 황순원의 소설 「이리도와 <목넘이 마을의 개>는 민족의 생명력과 그 생명력을 장애하는 것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생명에 대한 애착이 곧 민족정신의 상징임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이리의 끈질긴 저항을 통해 한민족의 끈질긴 생명력을 그린 작품이다.

 액자식 구성으로서 생명에 대한 의지와 이를 장애하는 데 대한 증오의 비극적 결말을 보여 줌으로서 민족의 생명력을 형상화하고 있다. 동물의 본능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주제를 제시하고 있으며, 환경의 변화에 관계없이 지켜져야 하는 모든 생명에 대한 존엄성과 이를 옹호하려는 범생명적 휴머니즘의 바탕 위에서 씌어졌다. 간결한 표현과 함축적인 결말이 특이하다.

「이리도는 민족의 심성을 부각시키는 작품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감정에 치우쳐 예술적인 시각을 유지하기 어렵다. 이러한 위험성을 비껴나기기 위해 작가는 이 작품에 액자식 구성 방법을 도입했다. 또, 서술 시점의 변화를 보여 주기도 하는데, 과거를 회고하는 도입 부분이 이에 해당된다.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나가는 '나'가 서술자이다. 그리고 내부 이야기는 이리에 얽힌 사건을 직접 경험한 '만수 외삼촌'('그')이 서술자가 된다.

 

 

 이 작품은 외면 구조에서 드러난 것처럼 단순히 한 일본인의 무모한 행동과 처참한 죽음만을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다. 몇 가지 상징물에 의해 그 주제가 내면화되어 있다. 중심 이야기의 인물은 한국인, 몽골인, 일본인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것은 곧 당시 삼국(三國)의 역사적, 지정학적인 대립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자 한 작가의 의도적 배려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권총만으로 이리 떼를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이리 떼를 공격한 살상용 권총은 한반도를 강제 침략한 일제 침략성의 상징물이다.

 또, 이리 떼를 모두 없애겠다고 무모하고 강압적인 행동을 하던 일본인은 이리 떼의 공격으로 처참한 죽음을 당한다. 이때 권총에 새겨진 이리의 이빨 자국은 침략자에 대한 피압박 민족의 끊임없는 저항의 상징인 동시에 일제 침략 행위를 엄중히 고발하고 경고하는 의미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