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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오정희 중편소설 『유년의 뜰』

by 언덕에서 2024. 7. 12.

 

 

오정희 중편소설 『유년의 뜰』

 

오정희(吳貞姬. 1947∼)의 중편소설로 1981년 발표되었고, 1998년 4월 표제명의 단편집으로 출간되었다.

 1968년 <완구점 여인>으로 등단하여 7, 80년대 한국의 여성 문학을 대표해 왔던 오정희의 소설은 여러 가지 면에서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양상을 띤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 양상이 매우 여성적이라는 점이다. 흡사 수많은 인상과 흔적들이 모여 소설을 이루는 듯, 그의 소설은 삶과 존재의 진실에 관해 나지막한 목소리들을 마치 모자이크처럼 엮어 놓는다.

 이 작품은 1981년에 발표된 중편소설로, 6·25전쟁을 배경으로 하여 가장인 아버지가 징집되어 집을 떠나고 다시 귀환하기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어린 여자아이의 시선을 통해 비극적 현실의 구체적 상황이 그려지고 있는데 주인공 '노랑눈이'는 일곱 살 난 여자아이로, 그녀의 가족은 피란민이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대신하여 가장을 자임한 큰오빠는 수시로 언니를 때리는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고, 어머니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밥집에서 일하지만, 밤마다 술 냄새를 풍기고 돌아오거나 외박하며 큰오빠와 갈등을 겪는다. 그리고 그 틈바구니에서 불안정한 상황에 부닥쳐 있는 노랑눈이는 식탐과 도벽 등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인다. 노랑눈이는 엄마의 지갑에서 훔친 돈으로 사탕을 사서 빨며 혼자 길거리를 배회하는 동안 아버지를 막연히 그리워한다. 그러나 그러한 기다림과 달리 막상 돌아온 아버지를 대하는 노랑눈이는 알 수 없는 공허함과 허무함을 느끼게 된다. 전쟁이라는 외부적인 상황과 아버지의 부재라는 내부적인 상황이 한 가족에게 가져다준 시련과 생활의 변화,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어린아이의 시선에 주목하여 작품을 감상할 필요가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나는 일곱 살로 노랑눈이라고 불린다. 아버지가 전쟁터에 강제 징병 되어 나가자, 정신없이 마을로 피난을 와서 조그마한 방 한 칸에서 할머니와 어머니, 오빠, 작은오빠, 언니, 동생과 살고 있다. 어머니는 생계유지를 위해 저녁마다 거울 앞에서 화장하고 일하러 간다. 오빠는 작은 방을 꽉 채우듯이 시위라도 하듯 큰소리로 영어책을 읽어 나간다. 동생은 너무나도 마르고 연약해서 언제 곁을 떠날지 모른다.

 나는 한밤중에 나와 앉아 부네의 방을 바라보곤 한다. 부네는 외눈박이 목수의 가장 아끼는 딸이었는데, 부네가 집을 나가 살림을 차리자 목수는 부네를 끌고 와 방에 가둬 놓는다. 그래서 부네의 방에는 항상 큰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부네가 언제부터 그 방에 갇혀 있었는지는 확실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사람들이 볼 때는 부네의 방은 한 번도 열린 적이 없다. 그래서 부네에 대한 사람들의 추측만 무성하다. 폭군인 오빠는 엄마가 외박하면 언니를 때려서 코피 나게 만든다. 언니는 항상 오빠의 그런 폭력에 대항하지 않고 묵묵히 맞고만 있다. 할머니는 가끔 임자 없는 닭을 잡아 온다. 전쟁이 끝나면 아버지가 돌아온다고 할머니는 말했고, 우리는 불안과 두려움 속에 아버지를 기다렸다.

 어느 날 가을, 부네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부네가 정말 그 방에서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전쟁이 끝나가는지 피난민들은 하나둘씩 마을을 떠난다. 내 가족도 이사한다. 나는 언니가 다니는 학교에 입학을 한다. 여름이 갈 무렵, 학교로 아버지가 찾아오지만 반갑지 않고, 자꾸 서러움으로 눈물만 난다.

 

 

 이 작품은 일곱 살에서 여덟 살로 넘어가는 한 소녀의 아픔과 그 아픔에 따른 내면의 왜곡과 굴절을 다루고 있다. 굳이 성장이라는 말을 놔두고 '왜곡’과 '굴절'이라고 표현한 것은 백신의 예로 짐작할 수 있다. 성장을 위한 고통은 백신과 다르지 않다. 비록 순간적으로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그것을 이겨 내고 나면 우리는 한 차원 성숙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백신 주사에 지나치게 많은 양의 병원균이 들어가 있다면 어떻게 될까? 항체를 형성시키기는커녕 우리 몸을 병들게 할 정도의 병원균이 들어가 있다면, 우리는 그 병을 앓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처럼 그녀에게 투여된 병원균의 양이 지나쳐서 그녀의 내면에는 씻을 수 없는 후유증이 남았기 때문에 왜곡과 굴절을 다루고 있다. 우리는 보통 이를 가리켜 '심리적 외상(트라우마)'이라고 한다. 심리적 외상이라는 말은 일종의 역설, 형용 모순이다. 심리란 내면의 세계이고 외상이란 겉으로 드러난 상처, 그래서 상처가 아물더라도 흉터가 남아 평생을 살면서 종종 그 상처의 유래를 기억할 수밖에 없는 것, 그게 바로 트라우마이다.

 

 

 '노란눈'에게 심리적 외상을 입힌 것은 전쟁이었다. 혹은 전쟁으로 상징되는 이 세계의 잔인성과 폭력성이었다. 전쟁은 그녀의 가족을 모두 뒤바꾸어 버렸다. 아버지는 사라졌고, 어머니는 갈보 소리를 듣는 여인이 되었으며, 오빠는 심한 매질을 하고, 할머니는 남의 닭을 아무렇지 않게 훔치고 죽이는 일에 이골이 나 버렸다. 전쟁으로 상징되는 이 세계의 폭력성은 그녀를 둘러싼 모든 사람을 뒤바꾸었고, 그 뒤바뀐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녀에게 상처를 입혔다.

 즉, 주인공 ‘나'는 비록 일곱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가족의 와해와 가난으로부터 모는 다양한 상처들에 일찍 노출된 탓으로 외부 세계와 타인을 바라보는 눈은 이미 상당한 착색이 진행된 인물이다. 작품은 회상의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그 회상의 세월은 전쟁 직후부터 휴전 직후까지이다. 전쟁은 이 작품의 배경이자, 함축된 상황이자, 상처의 근원이다. 그것이 역사적 현실로서의 전쟁이냐, 인간 사회에 존재하는 폭력성의 상징으로서의 전쟁이냐는 분명하지 않으며 이 작품에 관한 한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다. 중요한 것은 전쟁과 피난이 있었고, 그 속에서 고통과 상처가 자라났으며, 한 개인의 내면에 결코 씻을 수 없는 심리적 외상을 입힘으로써 그가 삶에 대한 비극적인 전망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