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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나도향 단편소설 『옛날 꿈은 창백하더이다』

by 언덕에서 2024. 7. 15.

 

 

나도향 단편소설 『옛날 꿈은 창백하더이다』

 

나도향((羅稻香.1902∼1926)의 단편소설로 1922년 [개벽]에 발표되었다. 초기에는 작가의 처지와 비슷한 예술가 지망생으로서의 주관적 감정을 토로하는 데 그친, 일종의 습작기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행랑자식」, 「자기를 찾기 전」 이후로 빈곤 문제 등 현실과 대결하려는 극복의지를 드러내는 주인공을 내세워, 사실주의로 변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단편소설 『옛날 꿈은 창백하더이다』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사이가 좋지 않아 따로따로 사는 집안의 어린 소녀 ‘나’가 열두 살 되던 가을 어떤 날을 회상하는 내용이다. 체면 때문에 없는 살림에 빚을 낸 할머니와 종교에 적대적인 아버지, 속상한 어머니는 나와 동생을 데리고 외가로 향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은 열두 살 난 여자아이다. 사건의 불씨를 제공하는 인물은 열일곱 살 난 새신랑이다.

 소학교 4학년 주인공은 ‘웬일인지 나의 어린 마음이 공연히 우울하여졌다’며 자신의 기분을 자주 읊조린다. 소녀의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아 따로 떨어져 산다. 소녀가 동생을 업고 엄마와 함께 밖에서 하염없이 기다려도 아버지는 날마다 늦게 들어온다. 어느 날 자다가 일어난 소녀는 늦게 들어와 식사하는 아버지가 반가워 “아버지!”하고 부른다. 그러자 “아버진 뭐든지 다 귀찮다. 어서 잠이나 자거라”하는 퉁바리만 돌아온다. 소녀는 ‘얼굴이 홧홧하도록 무참한 기분’이 되고 만다.

 '아버지와 다투는 일에 지친 어머니가 주인공과 동생을 데리고 외가로 가는 길에 소녀는 외가에서 사랑받을 일에 오히려 기분이 좋다. 어머니가 외가에 가서 아버지 험담을 하며 속 시원해할 거라고 생각하는 소녀에게 어머니는 “할아버지 할머니께 어제 저녁에 아버지가 술 먹고 야단했다는 말은 하지 말어라”라고 당부한다. 그때 소녀는 ‘집에서 나올 때부터 무슨 불행스럽고 불안하던 마음이 다시 화평해졌다’고 생각한다.

 

 

 나도향이 문명(文名)을 날린 것은 [동아일보]에 연재된 장편 <환희(幻戱)>(1922)에서이다. 기생(妓生)의 슬픈 사랑을 그린 이 소설이 그의 초기를 대표하는 작품인 셈이다.  「옛날의 꿈은 창백(蒼白)하더이다」를 발표, 신문학사상 낭만주의 운동을 일으킨 나도향은 초기의 낭만주의 작품으로 <젊은이의 시절>, 「옛날의 꿈은 창백하더이다」, <별을 안거든 울지나 말걸> 등이 있고, 후기에는 사실주의, 내지는 자연주의적 작품을 썼다. 단편소설  옛날의 꿈은 창백하더이다」는 매우 센티멘털하고소설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감상문에 지나지 않지만순간순간 빛나는 감수성이 번뜩이는 작품이다

 소학교 4학년인 작중 주인공은 ‘웬일인지 나의 어린 마음이 공연히 우울하여졌다’며 자신의 기분을 자주 읊조린다. 그 시대에는 주로 대가족이었을 텐데 소녀의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아 따로 떨어져 산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부모의 튼튼하고 안온한 울타리가 세상의 전부이다. 나도향의 초기 작품을 미성숙하다고 하지만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이 안기는 감동이 짠하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랑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이다. 사랑받고 살아야 할 10대는 사랑하며 보내야 아름다운 시절이기도 하다. 어린 소녀의 가느린 마음이 잘 묘사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나도향은 「벙어리 삼룡이」, 「물레방아」, 「뽕」에서는 애정 윤리와 궁핍의 문제에 대한 깊은 관심과 객관적인 관찰은 당시 사회를 부정적으로 예리하게 묘사하였다는 평을 받는는데, 1920년대 한국 소설의 한 전형으로 꼽힌다.

 이 작품은 남의 시선이 중요해 빚을 내며 교회에 헌금하는 시어머니, 그런 자신의 어머니가 싫어 아내에게 화풀이하는 아버지, 그리고 어려운 현실과 시어머니와 남편의 관계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어린 딸의 눈으로 그려진 소설이다. 한 여자로, 아내로, 며느리로, 엄마로 살아가는 여인의 힘겨운 삶이 독자에게 공감을 준다. 남성위주의 가부장적 시대에서 여성의 인권에 접근하는 작품을 쓸 수 있었던 작가의 용기가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