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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김승옥 단편소설 『생명연습(生命演習)』

by 언덕에서 2024. 7. 16.

 

 

김승옥 단편소설 『생명연습(生命演習)』

 

소설가·극작가 김승옥(金承鈺, 1941~ )의 단편소설로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1962년도 작품이라고 보기에는 문체가  기존의 다른 작가들에 비해 판이하게 달라서 상당히 신선하고 매력적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과 주인공 그리고 한교수의 대화 사이사이에 옛 추억 혹은 기억들이 되살아나 현실과 과거를 넘나드는 방식으로 소설이 전개된다.

 김승옥의 작품은 인간의 내면묘사와 주위 인물들에 대한 예리한 관찰 그리고 그 시대가 지닌 아픔이나 슬픔을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이들에게 가르쳐 준다. 또한 사회적 상황을 예리한 필치로 형상화하여 소설을 읽는 이로 하여금 '시대공감'을 하도록 이끄는 매력이 있다. 단편소설 「생명연습」에서는 수많은 은유와 섬세한 어휘 선택을 엿볼 수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대학생인 나는 평소에 좋아하고 존경해마지 않던 한교수와 다방에 들어가 대화를 나눈다. 다방 한편을 지나가는 학생의 외모(머리카락과 눈썹을 말끔히 밀어버림)때문에 화젯거리가 되어 한교수의 입에서 '극기(克己)'라는 말을 들은 나는 과거에 사로잡혀 회상을 하게 된다.

 6ㆍ25사변이라는 민족적 대수난으로 인해 피난생활을 하던 중 1년 후 피난지에서 옛집으로 돌아온 어머니와 형, 누나, 나는 전쟁이 남긴 황폐함을 수습하고 살아간다.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가장의 자리를 어머니가 대신하게 되고 어머니는 자식들을 위해 힘든 장사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간다. 하지만, 아버지의 빈자리는 어머니에게 공허함을 안겨다 준 것일까? 어느 날인가부터 어머니는 아버지의 외모처럼 쌍꺼풀이 있는 사내들을 집으로 들여보내고 이런 어머니가 못마땅한 형은 차츰 어머니를 향해 독기를 품게 된다. 여러 남자들을 집안으로 끌어들여 밤을 함께 보내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형의 시선은 따갑기만 한데, 중학교 3학년이 된 형은 급기야 어머니를 때리기까지 한다.

 형에게 맞은 날이면 어머니는 큰아들에게 대항하지 않고 단지 복종과 약간의 억울함 같은 감정을 숨긴 채 보낸다. 영리한 누나는 어머니의 남자관계는 단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의 대체일 뿐이라고 형을 설득하려 하지만 형은 이렇게 대꾸한다.

 "어머니의 '남자관계'를 너는 그렇게 해석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실은 그것에서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극기일 뿐이다. 극기일 뿐이다. 극기일 뿐이다. “

 한교수의 '극기'라는 말은 아마도 어린 시절 형의 '극기'라는 말을 떠올리게 만든 회상의 매개체일 것이다. 누나에게 형은 이런 말도 덧붙인다.

 "어머니의 나에게 대한 운명적인 요구에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 남들에게는 지극히 평범하고 세속적인 관계일 수밖에 없는 것이 내게는 왜 이렇게 험악한 벽으로 생각되는지, 나는 참 불행한 놈이다. 절망, 풀 수 없는 오해들, 다스릴 수 없는 기만들. 그렇다고 장난꾸러기 같은 미래를 빤히 내다보면서도 눈감아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절망. 절망. “

 그러던 어느 날, 형은 나와 누나에게 어머니를 죽이자고 꼬드긴다. 당황한 누나와 나는 역으로 형을 죽이기로 작정을 하고, 등대가 보이는 절벽에 서있는 형을 바닷속으로 밀어버린다. 하지만 형은 늦은 밤에 물에 젖은 채 살아 돌아와서 누나와 내게

 "흐흥 귀여운 것들. “

 이렇게 한 마디하고 다락방으로 올라간다. 그 일이 있은 사흘 뒤 형은 등대가 서있는 그 낭떠러지에서 스스로 몸을 던져 자살을 하고 만다.

 

 김승옥의 소설은 어둡고 답답한 세계를 소재로 삼고 있다. 첫 작품인 「생명연습」에서  <야행(夜行)>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세계는 주로 패배한 인간들의 신변잡기를 묘사하는 데 바쳐져 있다. 그 속에는 수음을 하는 선교사와 형을 살해하려는 음모를 꾸민 남매에서부터, 불륜의 정사를 꿈꾸며 밤마다 취한과 부딪치기 위해 거리로 나가는 여인에 이르기까지, 밝고 긍정적인 삶을 사는 주인공들이란 서식할 자리가 없도록, 일그러지고 찌그러진 인간들만이 서식한다.

 이러한 진술은 아마도 오해를 불러일으킬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의 세계 속에서 서식하고 있는 인물들과 가령 손창섭적(孫昌涉的)인 인물들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같이 어둡고 우울한 세계를 묘사하고 있지 아니한가? 라는 의문은 즉각 제기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의문에 대답한다는 것은 손창섭으로 대표되는 1950년대 작가와 그로 대표될 수 있는 1960년대 작가와의 차이를 밝힌다는 일과 같다. 그와 동시에 김승옥의 소설을 이해하는 일과도 상통한다.

 

 

 1950년대 작가들이 만든 주인공들의 가장 큰 특성 중의 하나는 그들이 대부분 자신의 상황을 무의지적으로 수락해 버린다는 것이다. 상황의 절대적인 압력을 그들은 선험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손창섭의 <비오는 날>에 실린 여러 단편들, 서기원ㆍ이호철의 초기 단편들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런 인물들은 그 의식의 수동성을 극명히 하기 위해 병을 잃거나 군대를 갔거나, 돈이 없거나……하는 류의 상황 설정을 배당받는다. 반면에 1960년대 작가에 이르면서 소설의 주인공들은 섬세한 변모를 감수한다.

 이러한 특성은 1960년대 작가들의 의식의 문을 대담하게 두드린 「생명연습」에서부터 뚜렷이 드러난다. 「생명연습」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거의 모두가 손창섭적인 왜소함을 내보인다.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감성적인 판단이 더욱 앞서고, 마찬가지로 교활하며 간교한 인물들이다. 그렇지만 그의 인물들은 그 간교함을, 왜소함을 하나의 필요조건으로 파악한다. 그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악덕이라면, 그것을 숨기거나, 음험하게 발산하는 것보다는, 그것을 인정하고 수락함으로써 그것을 극복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