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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오정희 단편소설 『동경(銅鏡)』

by 언덕에서 2024. 1. 23.

 

오정희 단편소설 『동경(銅鏡)』

 

 

오정희(吳貞姬. 1947∼)의 단편소설로 [현대문학] 1982년 4월호에 발표되었다. 노년부부의 삶을 통해 인간 본연의 고독과 존재의 소외감을 다룬 이 작품은 1982년 제15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소설은 유일한 혈육이었던 아들을 잃고 정년퇴직한 채 살아가고 있는 노부부의 초여름 어느 하루 낮 시간을 통해 삶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오정희는 1947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였다. 196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완구점 여인>이 당선, 등단하였다. 그는 섬세한 내면의 정경 묘사를 통해 인간의 존재론적 불안과 내면의 고뇌를 자의식적인 측면에서 예리하게 묘사한다. 특히 여성의 심리 갈등을 묘사하는 데 능숙하다. 탄력 있는 문체와 여성만이 포착할 수 있는 야릇한 심리적 갈등을 즐겨 다룬다. 1979년 <저녁의 게임>으로 [이상문학상], 1982년 동경(銅鏡)으로 [동인문학상], 1996년 <불꽃놀이>로 제9회 [동서문학상], [오영수문학상], 2003년 독일 [리베라투르상등을 수상했다.

 

소설가 오정희 ( 吳貞姬 . 1947 &sim; )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그는 밀가루를 함지박에 붓는 아내를 보고 식사 전 산책을 나간다. 초여름 무더위, 이웃집 계집아이는 잃어버린 만화경을 찾는다. 예정되었던 교인들의 심방이 취소되고 밀가루 반죽이 남는다. 수도 검침원이 찾아온다.

 시청 하급 관리인 필경사로 정년퇴직한 그는 틀니와 어울리지 않게 염색한 까만 머리이고 그의 아내는 호호백발이다. 아들 영로는 20년 전에 스무살의 나이로 죽었다. 그는 아내 몰래 죽은 아들이 쓰던 서랍에서 아이의 만화경을 꺼낸다. 아내는 남은 반죽으로 맥이라는 형체를 만든다.

 이웃집의 계집아이가 찾아와서 꽃을 꺾는다. 무서운 꿈을 꾸는 아이에게 아내는 맥을 주지만 아이는 그것을 팽개친다. 아내는 수없이 많은 맥을 만든다. 어느샌가 이웃집 아이는 거울장난으로 아내를 괴롭히고 마침내 아내는 그치지 않는 울음에 잠기고 만다.

 

동경(銅鏡)

 

 이 작품에는 제명이 의미하는 구리거울이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옛사람들이 무덤에 넣던 부장품 동경이 주변에 널려 있음을 이야기 구석구석에 제시하고 있다. 작가는 섬세한 내면 정경을 묘사하면서 인간의 존재론적 불안을 섬뜩하게 드러내는 작품들로 크게 주목을 받았다. 초기에는 육체적 불구와 왜곡된 관능, 불완전한 성(性) 등을 주요 모티프로 삼아 타인들과 더불어 살지 못하고, 철저하게 단절되고 고립된 채 살아가는 인물들의 파괴 충동을 주로 그렸다. 그러다 1980년대 이후에는 중년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사회적으로 규정된 여성의 존재보다는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여성성을 찾는 작업에 주력하였다.

 이러한 작품 경향은 낯설고 유배당한 듯한 고독감을 그린 <유년의 뜰>, 여성의 정체성을 찾으려 하지만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 날 수 없어 갈등하는 여성의 삶을 그린 <중국인 거리>, 여성 영혼의 복합 심리를 그린 <별사>, 신화와 생명의 공간인 우물을 통해 삶과 죽음, 있음과 없음, 빛과 어둠, 그리움과 사랑의 관계를 그린 <옛 우물> 등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소설은 노년의 쓸쓸함과 죽은 아들에 대한 추억이 어느 하루 무덥고 나른한 오후에 펼쳐지고 있다. 아내는 쓸모가 없게 된 남은 밀가루로 나쁜 꿈을 모조리 잡아먹는 맥을 만든다. 이들 부부에게 삶이란 나쁜 꿈과도 같다. 동경(銅鏡)은 옛사람들의 껴묻거리[副葬品] 중의 하나인 구리거울을 말한다.

 작가의 작품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이 소설도 특별한 사건의 전개나 흐름이 없이 인물의 내면 심리 묘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또 작가는 주변의 예사로운 사물들 즉, ‘만화경’, ‘동경’, ‘틀니’ 등으로부터 노인들의 지루하고 일상적인 삶의 고독함과 황폐함, 아픔을 적나라하게 묘사해 내고, 삶과 죽음에 관해 고찰하고 있다.

 작가는 특유의 시적 문체로 그의 소설 안에서 현실과 기억, 꿈과 사실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그의 소설 안에는 언제나 죽음이 신화적인 세계와 통해 있다. 작가가 죽음과 삶을 하나로 여기는 태도는 이 소설의 곳곳에서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