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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희곡

다리오 포 희곡 『무정부주의자의 사고사(Mort accidental d'un anarquista)』

by 언덕에서 2023. 1. 31.

 

다리오 포 희곡 『무정부주의자의 사고사(Mort accidental d'un anarquista)』

 

 

이탈리아 극작가 다리오 포(Dario Fo, 1926~2016)의 희곡으로 작가의 대표작으로 1970년 초연되었다. 1969년 일어난  밀라노 폰타나 광장 폭력과 경찰의 심문을 받던 주세페 피넬리의 죽음이 모티브가 되었다. 철도 노동자가 취조받는 도중 경찰서 창문으로 뛰어내려 사망한 실제 사건이었다. 다리오 포는 이 작품을 통해 철도 노동자의 죽음이 자살이라는 사법 당국의 발표와는 달리 취조 중에 발생한 의문사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다리오 포는 사법 살인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풍자극’ 형식에 담아내며 경찰국가, 사법 정의의 허점을 재치 있고 날카롭게 꼬집는다.

 다리오 포는 1926년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 바레세현 산자노에서 철도역 역장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1940년에 가족들과 함께 밀라노 이주, 브레라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기 시작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학업을 중단해야만 했다. 그의 가족들은 2차 대전 때 반(反) 파시스트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다. 그는 2차 대전 이후 밀라노에서 학업을 재개했으며 소극장 전용 즉석 독백극 전문 배우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1951년에 여배우 프랑카 라메(Franca Rame)를 만났으며 라메와 함께 여러 시사풍자극을 기획, 제작했다. 처음에는 정부와 교회 당국으로부터 검열을 받은 탓에 그와 극단이 이를 공연할 만한 극장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혹평을 받았지만 후에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후 그는 라메와 결혼한다. 1959년 <다리오 포-프랑카 라메 극단>을 설립했으며, 1968년 이탈리아 공산당과 연합하여 또 다른 연극 단체인 <누오바 스케나>를 결성했다. 그 후 1970년 공동체 집단 극장을 시작하면서 공장, 공원 등 대중들이 모이는 장소에서 순회공연을 시작했다. 그들의 극 중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무정부주의자의 사고사(事故死)」가 있고. 연기자로서 포는 <우스꽝스러운 비밀>이라는 1인극에 출연하였다. 그는 연극적인 풍자만화 작가, 사회 선동가, 급진적 광대로 묘사되기도 한다. 199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탈리아 극작가 다리오 포(Dario Fo, 1926~2016)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테러리스트로서 경찰의 심문을 받던 남자가 밀라노 경찰서 4층 심문실에서 아래로 떨어져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어느 날  '미친 사람'이라고 불리는 한 남자가 경찰서에 왔다가 판사가 그 사건에 관해 조사하기 위해 경찰서에 방문할 예정임을 우연히 알게 된다.  '미친 사람'은 자신을 판사로 위장하여 형사들을 상대로 한 편의 연극을 꾸민다.

  ‘무정부주의자의 그 사건’에 대해 집요하게 캐묻는, 사법부의 고위 관계자로 보이는 한 사내(사실은 '미친 사내'로 불리는 남자) 때문에 경찰서 간부들이 모두 긴장한다. 사내는 경찰 간부들의 빈틈을 파고들며 날카로운 질문 공세를 퍼붓고, ‘무정부주의자의 그 사건’에 감춰진 진실이 경찰 간부들의 입을 통해 하나둘 밝혀진다. 심문 과정에서 무정부주의자의 죽음이 자살로 위장됐음이 밝혀진다.

 미친 남자의 연극이 계속되면서 무정부주의자 죽음의 진실이 밝혀진 것이다. 발작을 일으켜 경찰서 창문에서 떨어져 사고사 했다는  ‘무정부주의자의 그 사건’은 무정부주의자였던 한 철도 노동자가 폭발 테러범으로 지목되어 취조를 받던 도중 형사들이 밀어서 경찰서 창문으로 떨어져 죽은 사건이었다. 

 

연극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사고사]

 

 다리오 포와 프랑카 라메는 1968년에 회전 무대 전문 극단인 누오바 세나(Associazione Nuova Scena)를 설립했으며 같은 해에 극단 비아 콜레타(Il Capannone di Via Colletta)를 설립했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이탈리아 공산당과 연관이 있는 행동으로 여겨졌고 이로 인해 그는 물론 그의 연극에 등장하는 정책과 연극 방식도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심지어 공산주의를 적대시하던 가톨릭 교회에서도 그가 가톨릭을 적대시한다는 이유 때문에 그의 연극 상영을 취소하기도 했다. 그는 공산당 당원은 아니었지만 후에 공산당과 결별을 선언했고 공산당 당원이었던 라메는 공산당을 탈당하기에 이른다.

 극단 ‘누오바 스케나’는 공장·체육관 등 대중이 모이는 장소에서 순회공연을 갖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발표된 작품이 「무정부주의자의 우연한 죽음」이다. 그는 특히, 파시스트 정당 권력에 대한 고발과 뚜렷한 민중주의 시각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전에는 파시스트들로부터 공격대상 1호로 꼽히는 예술인이었다. 그의 대표작 『무정부주의자의 사고사』는 이탈리아의 1970년대 기득권 체제를 풍자하고 있다. 무정부주의자 기세페 피넬리를 경찰이 경찰서 4층 창문에서 밀어버린 뒤 자살했다고 주장한 것을 공개적으로 비난한 것이다. 당시 이탈리아 사법 당국은 그의 자살이야말로 그가 폭탄 테러의 진범이라는 자백이라며 사건을 덮어 버렸고 언론은 '무정부주의자'를 괴물로 몰아붙였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뒤 폭탄 테러의 진짜 범인이 잡힌다. 무정부주의자의 죽음도 자살이 아닌 의문의 사고사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대중은 초유의 사법 살인 사건에 분노한다. 다리오 포는 해당 사건에 힌트를 얻어 『무정부주의자의 사고사』 극본을 만들었다. 다리오 포는 단지 이탈리아의 역사적 상황만을 잘 풍자한 것이 아니라 정치·경제·사회적 위기를 겪는 모든 사회를 통찰하는 극작가였다. 그의 연극은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위한 도전이자 체제 밖에 있는 자를 대변한 그 무엇으로 평가된다.

 

 

Lo stupro di Franca Rame(1929-2013)

 

 다리오 포는 연극 『무정부주의자의 사고사』에서 죄 없는 노동자를 신문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것도 모자라 사건을 은폐, 조작한 경찰 당국을 조롱하며 신랄하게 풍자하여  연극을 무기 삼아 경찰 당국의 사법 살인에 강력히 항의한다. 재치 있는 입담으로 경찰 간부들을 쩔쩔매게 만드는 정체불명의 ‘미친 사내’는 분노한 이탈리아 민중을 대변한다. 극 중 ‘미친 사내’의 기지는 사실을 은폐하려던 경찰의 허점을 폭로하며 공포를 조장해 민중 위에 군림하던 경찰을 한순간 조롱거리로 전락시킨다. 이처럼 권위에 격렬하게 도전하면서도 예술과 삶을 분리하지 않고 ‘한쪽 발은 무대에 한쪽 발은 무덤에 걸쳐 놓고 산다’라던 다리오 포의 진정성이 인정받은 연극 『무정부주의자의 사고사』는 그의 진정성이 발휘된 최고의 작품 중 하나다.

 이는 풍자야말로 민중이 통치자들의 부정부패에 대항하기 위해 사용해 온 가장 효과적인 무기라고 말해 온 다리오 포의 평소 생각과도 맥을 같이한다. 다리오 포의 무정부주의자의 사고사는 이처럼 코메디아델라르테라는 이탈리아 희극 전통에 기반해 웃음과 풍자로 공권력에 묵직하고 강력한 한 방을 선사한다.

 풍자극 『무정부주의자의 사고사』의 진가는 언제 어디서나 현재적인 의미로 해석되어 부정한 권력을 고발하고 비판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는 다리오 포가 ‘풍자의 효과’라고 강조한 바이자 극의 궁극적인 목적이기도 했다. 다리오 포는 이처럼 현대 사회의 부정과 부패, 악습에 초점을 맞춘 보편적인 주제, 코메디아 델라르테라는 전통적 희극 기법을 계승해 현대적으로 주제를 전달하는 극작 기법, 무엇보다 권력에 대항해 언제나 약자 편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온 노력을 인정받으며 199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