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에게 바치는 송가(頌歌)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1904∼1973)
아침마다 너는 기다린다.
옷이여, 의자 위에서
나의 허영과 나의 사랑과
나의 희망, 나의 육체로
너를 채워 주길 기다린다.
거의 꿈에서 나오자마자
나는 물을 하직하고
너의 소매 끝으로 들어간다.
나의 발은 너의
발의 빈 구멍을 찾는다.
그렇게 해서
나는 너의 지칠 줄 모르는 성실성에 힘입어
목장의 풀을 밟으러 나온다.
나는 시 속으로 들어간다.
창문으로
사람들을 바라본다.
남자들, 여자들
사실들과 싸움들이
나를 이루어 간다.
나와 맞서서
나의 손을 만들고
나의 눈을 뜨게 하고
나의 입이 닳도록 한다.
그렇게 해서
옷이여
나도 너를 이루어 간다.
너의 팔꿈치를 빼고
너의 실을 끊고
그렇게 해서 너의 일생은 나의 일생의 모습으로 성장해 간다.
바람에
나부끼고 소리를 낸다.
나의 영혼처럼.
불행한 순간에는 넌 나의 뼈에 붙는다, 밤이면 텅 비는 나의 뼈
어둠과 꿈이 도깨비 모습을 하고
너의 날개와 나의 날개를 가득 채운다.
나는 어느 날
어느 적의
총알 하나가
네게 나의 핏자국을 남기지 않을까
걱정해 본다.
또 어쩌면
일은 그렇게 극적으로 벌어지지 않고
그냥 단순하게
네가 차차 병이 들어가리라는 생각도 해 본다.
옷이여
너는 나와 함께
늙어 가며
나와 나의 몸과 함께
같이 살다가 같이 땅 속으로
들어가리라.
그래서
날마다
나는 네게 인사를 한다.
정중하게. 그러면 또 너는
나를 껴안고 나는 너를 잊어도 좋다.
우리는 결국 하나니까.
밤이면 너와 나는
바람에 맞서는 동지일 것이고
거리에서나 싸움터에서나
어쩌면 어쩌면 언젠가 움직이지 않는
한 몸일 것이다.
이 시는 일상의 평범한 '옷'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부여한 네루다의 대표작이다. 매우 일상적인 소재이므로 인식조차 하지 않았던 '옷'을 새로이 발견하고 의미를 찾고 있는 작품이다. 이 시를 읽으면 결국 옷에 대해 특별한 존재 의식을 느끼게 된다. 이 작품에서 특이한 점은 화자와 운명을 함께할 동반자로까지 옷이 격상되어 있다.
"그렇게 해서 너의 일생은 나의 일생의 모습으로 성장해 간다."라는 구절에서 그런 생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너는 나와 함께/늙어 가며"도 마찬가지의 의미를 지닌다. 특히 옷과 내가 정말 하나라는 의미는 "총알하나가 네게 나의 핏자국을 남기지 않을까 걱정해 본다."는 구절에서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즉 몰아일체가 된다. 이 작품의 작자는 칠레가 모국이다. 곧 제3세계 문학의 작가인 셈이다. 이 지역의 독특한 문화적 특성이 작품에 잘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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