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詩)를 읽다

심훈 / 그날이 오면

by 언덕에서 2022. 8. 15.

 

 

 

그날이 오면

                                                                                           심훈(沈薰, 1901 ~ 1936)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며는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漢江)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지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鍾路)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恨)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六曹)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 1930. 3. 1

 


<그날이 오면 (한성도서, 1949)>

 작품집 <그날이 오면>(1949)의 표제 작품인 이 시는 제일고보에 재학 중 3ㆍ1운동에 참가, 진두지휘하다가 투옥된 바 있는 심훈의 투철한 현실 인식과 애국심을 집대성한 걸작으로 이육사의 <절정>과 함께 30년대를 대표하는 저항시의 하나이다.

 일제하 저항시의 계보를 보면, 경술국치 당시 황현의 절명시로부터 1920년대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한용운의 <님의 침묵>, 1930년대 심훈의 <그날이 오면>, 그리고 일제 말기 이육사와 윤동주의 시를 꼽을 수 있다. 이 시는 제목이 말해주듯이 해방의 그 날에 대한 열망이 직접적으로 표출된 시이다. 해방의 그 날이 오면, 시인 자신의 육체를 환희의 제물로 삼아 머리로 종로의 인경을 두들기고 가죽으로 북을 만들어 치며 행렬의 앞장을 서겠다는 단순하고 격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격렬한 감정에 휩싸여 시적 균형성을 잃고 있는 측면이 없지 않으나 민족 해방을 향한 강렬한 애국적 열정은 식민지 시대를 살아온 어느 시인보다도 뜨겁게 느껴진다. 작품 자체는 대응하는 두 개의 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연이 '그날이 오면'이라는 가정적 미래로 시작하는 대신 제2연은 '그날이 와서'의 가정적 현재로 되어 있다. 한편 제1연의 '삼각산'이 제2연에서 '육조'로 변화되고, 제1연의 '인경'이 제2연에서 '북'으로 변화되고 있다. 그러나 제1연에서 제2연으로 넘어가면서 시상이 크게 진전되지는 않는다.

 이 작품은 시집 <그날이 오면>(1949)의 표제작이기도 하다. 1930년 3월 1일 기미독립선언일을 기념하여 쓴, 식민지 시대의 대표적인 저항시의 하나이다. 가정법을 사용하여 광복의 기쁨과 격정의 순간을 역동적으로 포착하고 있는 작품으로, 남성적인 어조가 특징이다.  특히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와 같은 표현은 남성적인 어조로 민족의 독립을 염원하는 시인의 간절한 소망과 그것을 지향하는 시인의 의지가 잘 형상화되어 있다. 비록 언어적 세련성의 척도에서 볼 때 거칠고 투박하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지만, 식민지 시대의 민족적 저항 의지를 적극적으로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를 간과할 수 없는 작품이다.

 

1935년 <상록수>를 영화화하고자 부곡리 본가에 내려와 영화관계자들과 함께 한 심훈(좌측)

 

 

 이 작품은 일제하에서 햇빛을 못 보고 광복 후에야 알려지게 된 치열한 저항시다. 민족 해방을 고대하는 마음이 너무도 크기 때문에 해방이 되는 그날이 오기만 한다면, 목숨은 스스로 초개같이 저버려도 좋다는 것이 이 시의 모티브가 되고 있다. 이 시가 실제로 쓰인 것은 1930년이다. 당시 가혹한 일제의 압박은 갈수록 암담하고 조국의 미래는 한 점의 서광도 없었다. 광복을 신념하고 <그날>을 갈망하는 것은 공상(空想)의 세계에서만이 가능했다. 춤추는 삼각산, 뒤집혀 용솟음치는 한강 물……. 이런 활유법ㆍ과장법의 표현에 스며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공상의 요소가 압도적인 것은 이 때문일 듯하다.

 그는 고등보통학교 시절인 3ㆍ1운동 때 운동에 가담, 학교를 퇴학당하고 4개월간 복역했다. 시집 <그날이 오면>을 출간하려다 검열에 걸린 것은 1932년, 그의 나이 32세 때였다. 지은이의 이런 행적은 이 시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말하자면 심훈은 조국의 광복에 불퇴전의 애국 사상과 불굴의 의지를 지닌 작가였다. 이 시에서도 조국 광복만 된다면 자신은 얼마든지 희생되어도 좋다는 굳건한 저항을 보인다.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가 그것이다. 그리하여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하고 절규한다.

 사실 이와 같은 저항시에서는 세련된 정서나 아름다운 표현은 도리어 작품의 질을 떨어뜨리는 쓸데없는 장식물이 될 뿐이다. 한편, 이 시는 1930년 3월 1일에 쓴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영국의 비평가 바우라(Bowra)는 그의 비평서 <시와 정치>에서 이 시를 세계 저항시의 한 본보기로 들며, "일본의 한국 통치는 가혹하였으나, 그 민족의 시는 죽이지 못했다."라고 평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