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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황순원 장편소설 『움직이는 성(城)』

by 언덕에서 2023. 9. 25.

 

황순원 장편소설 『움직이는 성(城)』

 

황순원(黃順元, 1915~2000)의 장편소설로 제1부는 [현대문학] 1968년 5월호에서 10월호까지, 제2부는 [현대문학] 1970년 5월호에서 1971년 6월호까지, 그리고 제3부와 제4부도 [현대문학] 1972년 4월호부터 10월호까지 각각 연재되었다. 그 뒤 1973년 [삼중당]에서 단행본으로 간행하였고, 전집으로는 1973년에 [삼중당]과 1980년에 [문학과 지성사]에서 각각 출간하였다.

 이 작품은 작가의 사상적 원숙기에 쓰인 문제작의 하나로서, 근대에 유입된 기독교 사상이 우리나라에 토착화되는 과정에서 민간신앙인 무속적인 주술성과 통합되는 현상을 깊이 파헤치고 있다. 외래 종교인 기독교와 한국 전통의 민간신앙인 무속(샤머니즘) 등을 매개로 인간의 근원적 심성과 의식 세계를 탐구한 작품이다. 특히 작가는 이 작품에서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노력과 숙명적인 고독의 의미 그리고 인간관계의 의미를 추구하고 있는데,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인 민구·성호·준태 세 사람의 개별적인 삶을 통해 이러한 성격이 잘 드러난다.

 민구는 한국 전래의 샤머니즘을 연구하면서도 학문보다는 공리적인 세계에 속하는 상식적인 인물이고, 성호는 기독교 전도사업에 몸담지만 한국 교회 속에 깊이 침투해 있는 샤머니즘의 벽을 깨달은 뒤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 기독교의 토착화 문제를 생각하는 인물이다. 반면에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인물인 준태는 어리석은 샤머니즘에 공감할 수 없고, 그렇다고 종교가 지닌 광신주의에 공감할 수도 없는 이율배반적인 인물이다. 더욱이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민구를 제외하고는 세속적인 의미에서 성공을 하지 못하고 모두 좌절하는데, 이는 준태의 죽음을 통해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농학사 ´준태´는 전직 여고 교사였으며, 어릴 때부터 가난 때문에 숱한 굴욕과 모멸감을 느끼며 자란 인물이다. 때문에 그는 자기 속에 존재하는 유랑민 근성을 혐오하면서도 끝내 그것을 떨쳐 버리지 못한다. 그는 결혼도 하고 집도 있고 직장도 있었지만 그 모든 ´정착생활´을 미련 없이 버린다. 그는 자신의 유랑민 근성을 숙명적인 것으로 결론짓는다. 그것은 그의 천식 발작에서 잘 드러나는데 그가 유일하게 사랑한 여인인 ´지연´과의 사랑의 확인이나 그녀 아버지와의 따스한 해후 다음에 일어나곤 한다. 그는 자신이 결코 정착된 생활을 누리지 못하리란 운명을 깨닫는다. 때문에 조화를 잃은 듯한 그의 모습에는 늘 유랑민의 슬픔이 깃들어 있다.

 전도사를 거쳐 목사가 된 ´성호´는 ´준태´와는 달리 근원적인 유랑민 근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혐오스러운 근성조차 사랑할 가치가 있다고 신념처럼 믿고 있다. 그가 신학을 택한 것은 전에 사랑한 목사 부인과의 불륜에 대해 속죄하는 마음과 함께 많은 사람들을 위해 기독교적 사랑을 실천하고자 함이다. 그는 목사부인 ´홍여사´와의 관계가 교회에 알려지자 여태껏 몸담고 있던 목사직을 전혀 미련 없이 떠난다. 그가 원한 것은 결코 기독교의 명분이나 제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목사의 장성한 자녀들의 폭로에 의해 완전히 자유로운 인간으로 되돌아간 성호는 병약한 아내에게 매질을 해대는 재일교포 청년을 말리기도 하고, 거리출신의 여자들일지라도 그의 판잣집 방 안에서 찬송가를 부르며 잠시나마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하며 조용히 사랑을 베푼다.

 ´성호´와 ´준태´의 친구인 민속학자 ´민구´는 부유한 장로의 딸을 사랑하여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그간 정열을 바친 무속 연구에서 손을 뗀다. 약혼녀가 무속연구에 일일이 제약을 가할 것이 귀찮아 장래 장인의 제약회사에나 몸담아 볼까 하는 그의 생각은 새로운 터전을 찾아 떠난다. ´준태´와의 정착된 사랑에 실패하고 그의 아이를 데려다 기르는 ´지연´이 ´성호´의 동반자로서 함께 사랑을 행한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한국인의 종교적 삶을 분석하였고, 나아가 삶과 관념 및 도덕적 질서와 욕망 사이의 괴리 현상도 높은 시적 통찰로 밝혀내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1970년대 한국 사회가 안고 있던 샤머니즘 대 기독교 사이의 이율배반 그리고 이러한 이율배반 속에서 앞으로 한국 사회와 지식인들이 펼쳐나가야 할 삶의 자세 등을 보여주고 있다. 즉, 등장인물들의 좌절과 패배, 사랑과 죽음, 공리와 순수 등을 병치시키면서 한국 사회에 진실로 필요한 힘은 사랑과 극복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 작품은 우리 문학사에서 종교적 삶의 문제를 가장 밀도 있게 다룬 기념비적 작품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이 작품은 샤머니즘 연구가 ‘민구’, 기독교 교직자 ‘성호’, 농학도 ‘준태’ 등 세 사람이 중심인물로 등장하는 이 소설은, 종래의 그의 어느 소설에서보다 강한 주제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전래적인 것과 외래적인 것이 정신적․물질적임 모든 국면에 있어서 이율배반의 양상을 빚고 있는 것이 오늘날 한국의 상황이며, 낡은 인간상이 등장하는 한국적인 소설과 새로운 인간상이 등장하는 서구적인 소설이 이원적으로 맞서고 있는 것이 오늘의 한국 소설의 기본적 성격이다. 이런 이원적 성격은 황순원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다. 황순원의 단편문학이 추구하여 온 과제가 주로 낡은 인간상들이 빚어내는 서정시적인 분위기를 포착하려는 것이었고, 본격적인 장편작가로서의 그의 과제가 주로 현대인으로서의 모럴을 추구하는 일이었다.

 

 

 이 작품은 그러한 이원적인 요인을 하나로 종합하려는 의욕을 반영하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런 점은 샤머니즘으로 상징되는 한국적인 요인과 기독교로 상징되는 서구적인 요인과의 대결을 통해서 느낄 수 있다. 한국인의 의식의 밑바닥을 지배하고 있는 샤머니즘적인 것과 의식의 상층부를 차지하고 있는 기독교적인 것 사이의 갈등 관계는 이 작품에서 여러 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이 작품의 1차적 명제이다.

 다음으로 이 작품에는 유형이 다른 세 중심인물들이 각기 긴밀한 인간관계를 맺음이 없이 각자 별개의 차원에서 각기 별개의 액션들을 펼쳐 나간다. 말하자면, 각기 고독한 자기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이런 모습을 통해 인간의 숙명적인 고독을 효과적으로 파악한다. 이것이 이 작품이 반영하는 제2의 명제이다.

 그리고 그러한 고독한 인간들이 빚어내는 사랑의 양상이 펼쳐진다. ‘준태’와 ‘지연’의 사랑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숙명적으로 결합될 수 없다. 그들은 각기 사랑할 수 없는 병자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고독한 현대인이 간직한 바 사랑의 불모성을 상징한다. 이것이 이 작품이 반영하는 또 하나의 명제이다. 이 작품은 오늘의 한국을 종합적인 자리에서 점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