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일남 단편소설 단편소설 『고향에 갔더란다』
최일남(崔一男, 1932~ 2023)의 단편소설로 [한국문학](100호. 1982.2)에 발표되었다. 이 소설은 1970년대 소설의 한 형식으로 자리하고 있었던 ‘출세한 촌놈의 귀향기’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할 수 있는 작품이다. 금의환향을 하는 1970년대식 귀향기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출세를 가능케 해 준 고향, 여전히 옛적의 생활로 머물러 있는 그 고향에 대해 은밀한 부채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흔히 우골탑이라 표현되듯, 그들의 출세 밑에는 농투성이 부모들의 희생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귀향기에서는 전혀 사정이 다르다. 주인공 이기수는 여전히 1970년대식 귀향기 주인공들의 심정을 가지고 출발했으나, 그를 맞아주는 고향의 풍경은 딴판이다. 그는 당연하게도 열패감을 느낀다.
고향은 그의 성공을 더 이상 우러러보지 않으며, 그러한 대우를 은밀히 기대했던 주인공을 오히려 질타하고 교정하려 한다. 고향이 칭찬하지 않기에 이제 그들에게 고향은 존재할 수 없다. 1970년대식 주인공들에게는, 비록 돌아갈 수 없는 곳이긴 하지만 고향은 또 그대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들이 느꼈던 부채의식이나 죄책감은 고향이 그들을 우러러보는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고향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주인공 이기수가 느끼는 열패감은 궁극적으로는 고향이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과 자신의 허위의식에 대한 절망감으로 읽힌다. 소설 말미에 등장하는 의사의 말과, 기수의 가슴에 이는 찬바람이 그것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이기수는 고향으로 가는 차에 올랐다. 그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우수한 성적으로 서울대에 합격했으며, 미국 유학을 거쳐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가 귀국한 것은 3년 전, 이제야 비로소 어릴 적 은사의 정년 퇴임식을 빌미 삼아 귀향길에 올랐다.
그가 그의 마을에서 최초로 서울대에 합격했을 때, 마을의 유지들은 그에게 장학금을 모아 주었으며, 미국 유학을 떠나기 전에는 그를 위해 마을 잔치를 베풀어 주었다. 그는 과거의 일들을 회상하며 금의환향의 기분에 잠긴다. 그는 그 기분을 천천히 즐기기 위해 자신의 운전사에게 천천히 가자고 한다. 그러나 그가 당면한 고향은 전혀 딴판이었다. 미국 박사도 대단한 출세가 아니었으며, 고향 사람들은 생각만큼 그를 추켜주지 않았다. 마을은 이미 예전의 고향이 아니었고, 친구들의 생활수준도 그러했다. 그들은 겉보기와는 달리 상당한 재력가들이었고 세련된 취미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그가 예상했던 친구들과의 술자리는 목로에 걸터앉아 마시는 막걸리의 풍경이었으나, 친구들은 그를 고급 살롱으로 안내했고 세련된 미희들이 시중을 들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가 살던 옛집은 헐리고 새집이 들어섰다. 그는 열패감을 느낀다. 애초에 그는, 고생하며 살아갈 고향의 친구들을 넉넉한 마음과 시선으로 다독거려 주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사정은 딴판이다. 그는 서둘러 고향을 떠난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그는 운전사에게 빨리 가자고 재촉한다.
소설이라는 장르는 20세기에 와서 모더니즘의 영향으로 많은 변신을 거듭하고 있지만, 원래 그것의 기본적인 주제는 겉치레 속에 숨어있는 진리를 인생의 문맥 속에서 발견하려는 데 있다. 그래서 소설의 구조와 전행 과정은 신에 의해 주어진 인간의 숙명적인 궤도, 그것처럼 오만한 인간의 욕망과 현실 사이에 반어적인 현실로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현실에 대한 영원한 탐구’이며, 그것의 진폭은 ‘본질적인 것과 외형적인 것, 실제적인 것과 단순히 그렇게 보이는 것 사이에 존재하는 양극 관계’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소설의 주인공은 보통 번쩍이는 외적 현상이나 혹은 관념적이고 한상적인 이상에 눈이 어두워 참된 현실을 똑바로 보지 못한 결과 끝내는 참혹한 죽음이나 심각한 파멸에 이른다.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과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그리고 프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의 비극과 같은 고전적인 패러다임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중편소설 「고향에 갔더란다」는 비록 짧은 소설 공간을 지니고 있지만, 위에서 말한 ‘현실 탐구’란 리얼리즘의 패러다임에 기포를 두고, 기지와 해학에 넘친 서정적인 풍자를 통해 오만과 편견, 그리고 주관적인 자기도취 속에 빠져 정신적인 방향을 잃고 있는 오늘날 도시인들의 삶과 그들이 고향인 농촌에 대해 가지고 있는 허위적 환상의 꿈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
10년이 넘도록 외지에 나가 있던 주인공은 금의환향으로 인한 무의식적인 자기도취와 ‘추상명사로서 고향의 원질성’만을 생각하는 ‘상류의 센티멘털리즘’에 젖어 그립던 고향을 찾는다. 그러나 그는 그가 찾은 고향이 출세한 그의 존재를 알아줄 수 없을 만큼 크데 변모한 사실에 아연실색할 정도로 당황한다. 특히 그가 소학교 시절에 좋아했던 보조개를 가진 여인의 미국인 남편이 그녀 아버지의 전년퇴임 파티에 불쑥 나타나 그의 손을 잡았을 때는 자신이 미국에 갔다 왔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도 없는 말 못 할 패배감에 빠져야만 했다.
끝내 그는 안겼던 모정의 고향으로부터 되돌아와 심하게 배신당한 부끄러움과 황폐한 좌절감에 빠진다. 그가 고향에 대해 이렇게 무서운 환멸과 자괴심의 늪 속에 빠져야만 했던 것은, 그가 고향 땅을 도시의 외곽지역과 다를 바 없는 현실로 생각하지 않고 관념적으로, 혹은 환상적인 과거의 경험 속에서 마지막 인간이 회귀해야 할 이상향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향수라는 자기의 ‘상류 센티멘털리즘’을 충족시키기 위해 농촌사람의 불편함은 생각지도 않고, 그들이 여전히 초가에서 살기를 마음속으로나마 생각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는 정신적 방향을 나타내는 사회적 규범인 ‘매너’에 어긋나는 겉치레적임 몸짓과 어법, 그리고 무의식적인 자만심 속에 그의 참된 자아를 묻어버렸다. 그러나 이 작품이 던지는 문제성은 고행을 찾는 오늘의 현대인들이 영원한 국외자가 된다는 웃지 못할 슬픈 현실을 불 밝게 조명한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산업사회와 근대화의 물결을 타고 우리 농촌사회의 일각에서 기생하는 프티 부르지와의 공해와 그들의 생태학을 사회학적으로 연구할 단서를 제공해 준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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