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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리 단편소설 『황토기(黃土記)』

by 언덕에서 2024. 4. 4.

 

김동리 단편소설 『황토기(黃土記)』

 

 

김동리(金東里. 1913∼1995)의 단편 소설로 1939년 [문장]지에 발표되었다. 우리 설화에 자주 등장하는 절맥(絶脈)과 상룡의 모티프를 전경으로 하여, 억쇠와 득보라는 두 장사의 힘겨루기를 줄거리로 담고 있다. 제대로 힘을 써 보지 못하는 억쇠, 유랑의 삶을 사는 득보. 그들의 무모한 힘겨루기는 설희에 대한 애정 문제로 옮겨지면서 비극을 맞이한다.

 작품의 서두에 다음과 같은 쌍룡의 전설이 소개돼 있다.

 “등천하려던 쌍룡 한 쌍이 바로 그 전야에 있어 잠자리를 삼가지 않은지라, 황제께서 노하시고 벌을 내리사 그들의 여의주를 하늘에 묻으시매 여의주를 잃은 한 쌍의 용이 슬픔에 못 이겨 서로 저희들의 머리를 물어뜯어 피를 흘리니, 이 피에 황토곡이 생기느라.”

 이 작품의 억쇠와 득보는 전설 속의 두 마리 용, 그리고 설희는 여의주에 대응한다. 두 장사도 한 쌍의 용처럼 보람이 있을 리 없는 자학적인 유혈을 거듭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인생이 아무런 의미도 가질 수 없는 허무한 심연’ 임을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허무의 세계’는 <무녀도>의 신비적ㆍ몽환적 세계와 더불어 김동리 초기 문학을 지탱하는 두 개의 지주이기도 하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경상도 금오산 자락 황토골에는 상룡, 또는 쌍룡, 절맥설의 전설이 서려 있다. 용이 피를 흘려 흙을 붉게 적셨기 때문에 황토골이라고도 하고, 산의 맥을 찌르니 붉은 피가 흘러내려 황토골이 되었다고도 한다. 용냇가의 두레패와 떨어져 혼자 논을 매고 있던 억쇠는 분이를 기다리고, 술 동이를 이고 온 분이는 설희와 득보를 한칼에 찔러 죽이겠다고 악을 쓰다가 풀 위에서 잠을 잔다.

 억쇠는 장정들도 겨우 든다는 들돌을 열세 살에 들어 올린 장사이다. 그런데 황토골에는 '장사가 나면 부모에게 불효하고 나라에 역적이 된다.'는 속설이 있었다. 억쇠는 백부의 근심스러운 말을 듣게 되고, 본인도 집안의 안전을 위해 힘쓰기를 삼가며 어깨를 자해하기도 한다. 허무감에 젖어 술을 마시다가 득보를 만난다. 그리고는 냇가에 오두막 한 채를 마련해 준다.

 득보는 이복형제를 죽이고 서울로 달아났다가, 어느 대갓집 부인과의 관계가 탄로 나서 황토골에까지 떠돌아 들어오게 되었다. 득보와 분이 사이에는 아이까지 하나 두었는데, 득보는 분이를 억쇠에게 주고, 분이는 억쇠와 득보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생활하는데, 득보가 여자를 얻어 오면 어떤 구실을 붙여서라도 쫓아낸다.

 그러던 사이 억쇠가 과수댁인 설희를 맞아들이자 득보는 설희에게 추근거리고, 분이는 설희를 죽이려고 노리게 된다. 억쇠와 득보가 설희에게만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드디어 분이가 임신한 설희를 죽이고, 자고 있는 득보에게 중상을 입히고 사라진다. 분이를 찾아 나선 득보가 분이 대신 딸을 데려온다. 억쇠는 득보가 사라질까 봐 노심초사한다. 억쇠와 득보는 마지막 대결을 위해서 용냇가로 내려간다.

 

 

 『황토기』는 황토골이란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의 극화이다. ‘억쇠’와 ‘득보’는 둘 다 굉장한 장사이다. 솟아오르는 힘을 감당할 수가 없어 두 사람은 술을 들이키면서 서로 싸우는 것으로 세월을 보낸다. 그 허망한 힘겨루기 ― 초인적인 힘의 잔인한 낭비가 이 작품의 골격을 이루고 있다.

 천하를 휘어잡을 힘을 가졌으나, 그것을 제대로 한번 써 보지 못하고 허공을 향해 투사하는 탕진의 반복으로 세월을 보낸다는 이야기는 결국 작가의 청춘이 품었던 기록인 동시에 민중 속에 잠재된 힘의 학살의 증언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는 허무라든지 숙명이라든지 하는 막연한 추상어로 요약될 수 없는 구체적 역사의 그림자가 어둡게 도사려 있다. 첫머리에 제시되어 있는 세 전설, '상룡설(傷龍說), 쌍룡설(雙龍說), 절맥설(絶脈說)'은 모두 좌절(挫折)의 전설이란 공통점을 갖는다.

 이 작품은 좌절의 한을 그린 작품이다. 억쇠와 득보라는 두 힘센 장사를 통해 전설 속의 두 마리 용을 은유하고, 여인(설희)를 여의주에 은유하여 설희를 차지하려는 두 장사의 아무 보람도 없는 자학적인 싸움을 설화적으로 처리하였다. 이처럼 설화를 바탕으로 한 허무주의적 성향은 샤머니즘과 함께 김동리 초기문학의 특징이다.

 작가는 서두에서 황토골의 세 가지 전설을 소개하고 있다. 상룡설, 쌍룡설, 절맥설이 그것이다. 이 세 개의 전설은 주인공인 억쇠의 운명에 암시적인 조명을 던져 준다. 첫 번째 상룡설의 황룡 한 쌍은 승천 때 바윗돌을 맞아 출혈한다. 이것은 황토골 장사인 억쇠의 비극적 좌절을 암시한다. 두 번째 쌍룡설에선 황룡 한 쌍이 승천 전야에 '잠자리를 삼가지 않아' 여의주를 잃게 된다. 즉, 이 황룡의 좌절은 성의 불근신이 그 원인이었다. 억쇠의 생애를 두고 저장된 정력이 득보와의 무모한 싸움에서 소비된다는 것은 성의 무절제로 좌절하는 황룡의 운명과 비슷한 것이다. 세 번째 절맥설 역시 억쇠의 좌절을 암시하지만 이것은 좀 더 구체적이다. 장사가 날 곳에서 이미 당나라의 장수가 와서 혈을 잘랐으니 독수리가 날개를 찢기운 것이나 다름없다.

 

 

 억쇠가 단순한 불세출의 장사로 그치고 만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이 절맥설은 시사하고 있다. 주인공 억쇠는 '나라에서 안다.'는 황토골 장사를 구현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가 불세출의 장사로 남아 있다는 사실, 그리고 힘을 쓸 날을 기다리며 헛되이 청장년 시절을 보냈다는 사실은 그 자체가 가슴에 불을 간직한 억쇠에게는 허무한 일이다. 그러나 더욱 허무한 것은 억쇠의 허무의 의식과 이에 따른 자포자기적인 정력 처리의 형식이다.

 사실 억쇠와 득보의 기묘한 우정(?)의 성립도 득보가 기운인 엄청나게 세다는 데서 억쇠가 막연한 운명의 공감을 깨닫고 또 자기의 정력 처리의 적수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최초의 상봉에서 억쇠는 '문득 자기의 몸이 공중으로 스스로 떠오르는 듯한 즐거움'을 느끼며 그의 멱살을 놓았다.

 천변에서의 무승부 격투는 외관상 치정적 양상을 띠고 있지만, 억쇠에게는 좀 더 근본적으로 자포자기적 정력 처리였다. 격투에서 짐짓 수세를 취하고 자기의 전 체력을 발휘하지 않는 것도 그것이 허무감에서 빚어진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가 격투 중 주먹세례를 연거푸 받으면서도 그저 홍소를 터뜨리는 것도 자기가 비장해 왔던 힘의 무상성, 그리고 득보를 겨우 적수로 삼고 있다는 허무감이 주는 허탈 의식, 그리고 득보 같은 위인은 도저히 자기의 참다운 적수일 수가 없다는 공허감에서 터져  나왔다. 득보가 척상을 입었을 때 억쇠가 '죽든 않겠나, 죽든'하고 진정으로 걱정하는 것도 득보를 잃음으로써 이러한 허무주의적 감정을 제공하는 자를 잃을까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억쇠와 득보의 허무한 격투, 치솟는 힘을 바르게 써 보지 못하는 억쇠의 아픔은, 쌍룡설 및 절맥설과 연관되면서, 한국인이 지닌 운명론적 비극성을 강렬한 허무주의로 채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