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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근사하다’의 어원

by 언덕에서 2023. 9. 7.

 

‘근사하다’의 어원

 

 

쌍둥이, 일란성쌍둥이의 얼굴은 비슷하다. 정말로 근사(近似)한 것이 쌍둥이의 얼굴이다. 요즈음 브라운관에 무슨 쌍둥이 자매의 듀엣이 나오던데, 일란성인지 아주 얼굴이 근사했다. 비슷하다고 행각하다 보니까 그것이 또 그럴듯하다 싶어지기도 했다.

 동양의 그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가짜가 저 유명한 동진의 화가 고개지의 <전여사잠도권(傳女史簪圖券)>이라는 것이다. 어엿이 문헌에까지 올라 있는 터이지만, 그 사람의 진짜 작품으로는 믿고 있지 않는 것이 학계의 견해인 모양이다.

 여자에 대한 훈계를 그림으로 풀이한 것인데, 지금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진열되어 명물이 되고 있다. 오늘날의 그 관계 학자들은 고개지가 그린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수 나라나 당 나라 때 이르러 고개지의 원본을 모사한 그림이라는 말을 정설로 내세우고 있는 형편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원체 오래된 것이고, 또 이 명인의 진적(眞蹟)은 없고 하는 판이니, 이 가짜를 가지고 고개지의 화풍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어서, 진짜에 내리지 않는 가치를 부여해 주고 있다. 비슷한 것이 그럴듯하고 또 멋있으며, 잘된 것이다. 말하자면 근사한 것이 참으로 근사한 대접을 받고 있는 셈이다.

 “그 참 근사한데”

 무엇이라고 내세우지는 않았지만 그 무엇엔가 비슷한 것이다. 그 비슷하다는 베일에 싸인 대상물은 좋고 아름답고 바람직한 추상적인 존재일 뿐이다. 고개지의 그림에 비슷한 그림이 비슷한(근사한) 그것으로 해서 그럴듯하고 아름답고 빛나는 것으로 될 수 있었던 것과도 같이. 이러고 보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동안에 어떤 상징적인 샘플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에 근사한 것에 대하여 어떤 값어치를 부여하려는 생각 속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근사한 모습을 한 신사가 근사한 사고를 하여 근사한 결과를 낳아야만 근사한 모습의 몫을 하게 된다는 것이 근사한 생각 같아지기도 한다.

 ‘근사하다’는 말과 거의 같은 시기에 쓰이기 시작한 말에 ‘걸작’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또한 ‘근사하다’는 말과 같은 발상법에서 출발한 말이었다.

 “그 친구 보통 걸작이 아니야.”

 “걸작으로 놀 덴데 그래?”

 ‘걸작’이란 본디 아주 훌륭하게 잘된 작품을 이르던 것인데, 그것은 동시에 남의 눈에 띄고 또 그만큼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 존재였던 데서, 아주 남의 눈에 띄게 재미나는 사람을 이르게까지 되어버렸던 것이 아닌가 싶다.

 “오늘밤 파티에서 그 친구 아주 걸작으로 논 때문에 그 파티는 더욱 근사한 것이었어. 안 그래?”

 

 

- 박갑천 : <어원수필(語源隨筆)>(19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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