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족(四足)을 못 쓰다'의 어원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동물 분류학에서는 포유동물이라 치고 있는데, 어쨌건 동물은 동물이다. 그러기에 사람들을 두고 ‘동물적’이라는 비유가 쓰이고 있다. 그러나 ‘생각하는 동물’의 처지 때문에 그 '동물적'이라는 말이 사람마다 듣기에 거북해진다.
'동물적 욕구'라고 하면, 사람마다 이성을 차리지 못한 욕구 충족을 위한 행위여서 불쾌하게 들린다.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역시 염치에서 출발된 이 '불쾌감' 같은 것이기도 하리라. 그런데 말에서 이 '동물적 처지‘가 드러난다.
“앞발 번쩍 들어버렸지.”
“너, 꼭 그놈의 앞발질 계속할 테냐?”
8ㆍ15 전에는 별로 안 쓰이던 것 같던 ‘앞발’이 해방되고부터 조금씩 빈번히 속어의 형식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군국주의가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 때문에 앞발 든 것이 계기가 되었다는 것일까?
어쨌건 단군 할아버지 초상화가 지금의 우리 몸 형태와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곤 해도 그 단군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로 추구해 나가노라면 다윈 선생의 생각을 빌 것도 없이 아마 네 발로 엉금엉금 기어 다녔을지도 모를 우리 인간이다. 다른 동물보다는 앞발 쓰는 법을 일찍 익히기 시작해서 그것이 진화된 것이라고 할까? 그렇다고는 해도 ‘앞발’은 앞발이었다. 뒷발 두 개는 걸어 다니는 데 유용한 것이었고, 앞발 두 개는 다른 일상사의 자잘한 집일에 필요했던 것이리라.
조선 왕조 초기의 문헌에도 지금의 ‘팔(腕)’이 ‘발’로 나와 있음을 보는데, 이렇게 볼 때 ‘앞발’의 근거는 두드러진다. 서산에 지는 해가 한 발 남짓 남았다는 ‘발’도 이 ‘팔’의 형태다. 왜 그러냐 하면, 지금도 시골에서는 새끼를 꼬아 그 길이를 잴 때 ‘한 발, 두 발, 세 발’ 하면서 제 어깨 길이에 맞추어 재어가는 것이다. 분명히 팔도 발은 발이었다. 생각이 고상해지면서 진짜 발과 구별하고 싶은 생각이 앞발 쪽에 대해서는 ‘팔’이라 했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와 똑 같은 말이 ‘사족을 못 쓴다’는 말이다. ‘사죽‘은 ’사족(四足)‘의 잘못 이름이거니와 너무나도 놀랍고, 너무나도 감격적이고, 너무나도 즐겁고, 너무나도 흥분되었을 때, 곧 감정 상태의 극치 속에서 인간은 미처 판단에 의한 행동으로 나타내지 못하는 일이 많다. 사지(四肢)는 늘어뜨린 채, 눈만 말똥거리는 것이다. 말하자면, 고양이 앞에 어쩌다 길을 잘못 들어서게 되어버린 쥐의 처지는 사지를 못 쓰는 꼴이다.
그런 것이 ‘생각하는 동물’인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사족을 못 쓰는’ 것은 팔다리를 움쩍도 못하는 것이다. 판단 중지의 상태인 것이다. 그 ‘사죽’은 ‘사족’, 사족은 다시 말하여 ‘네 발’이니, 네 발이란 다시 말할 것도 없이 앞발 뒷발 그것이 아니겠는가. 까딱하면 외박이요, 끄떡하면 젊은 계집 차고 나가서 1년이고 2년이고 소식도 없던 남편이 병들고 돈 떨어져 돌아와 아랫목에 누워있는 것을 보는 아내의 악담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흥, 사족 못 쓰고 계집년 꽁무니 쫓아다니더니, 사족을 못 쓰게 된 신세 좋기도 하겠소!"
- 박갑천 : <어원수필(語源隨筆)>(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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