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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손소희 단편소설 『갈가마귀 그 소리』

by 언덕에서 2023. 9. 6.

 

손소희 단편소설 『갈가마귀 그 소리』

 

손소희(孫素熙, 1917∼1987)의 단편소설로 [현대문학]지 1970년 11월호에 발표되었다. 작가가 완숙한 경지로 접어들면서 작가의 문학세계가 가장 잘 드러난 완벽한 시정(詩情)의 소설이다.

 한국인의 숙명적인 심성, 회귀적인 갈망, 슬픔의 미학이 깊은 공감을 몰고 오는 수작이다.  지리적 배경은 북만주에서 고국으로 걸쳐 광범위하고, 시대적 배경은 전통적 인습이 통용되고 그것을 최고의 선으로 여기던 시대를 중심으로 쓰였다.

 특히 처녀과부 고을댁(처녀명 곱단이)의 한과 인고와 체념, 그리고 노년의 고독과 후생에 대한 기다림을 작품화한 「갈가마귀 그 소리」는 고향회귀의 강력한 인간본성을 밝힌다. 그리고 가부장제도와 여성의 기본인권에 도전하는 새로운 여성상의 부각이 아닌 존재론적인 인간본성의 회귀에 대한 구원적 의지를 재확인하고 있다.

소설가 손소희(孫素熙,  1917∼1987 )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정혼(定婚)을 해놓고 혼수 준비에 바쁜 어느 날, 신랑이 홍역을 앓다가 죽었다는 연락이 온다. 처녀로 정혼한 남편의 장례도 치르고 3년 상을 마친다. 그동안 처녀청상과부의 기구한 운명으로 시집살이를 한다.

 처녀과부를 가엾게 여긴 시댁이 아내가 죽고 아들이 있는 송영감에게 새댁을 시집보낸다. 그들은 만주에 가서 노후까지 행복하게 살며 재산도 모은다. 시댁은 죽은 이 앞으로 조카를 양자로 입적시키고 제사를 받들게 하였고 이 양자는 고을댁을 모셔 가겠다는 것이며, 죽어서 아버님과 함께 묻히시라고 권유한다.

 그동안 행복하게 살던 고을댁은 송 영감은 죽어서 전처와 만나게 될 것인데 자기는 그래도 정혼했던 짝을 찾아 내세(來世)를 어엿하게 살고 싶었다. 그러나 재산을 노린 양자의 학대를 받으며 점점 고독에 빠져들고, 떠나온 만주의 송영감을 잊으려고 한다.

 

 이 소설은 전통적인 한국 여인의 한(恨)을 미학으로 심화, 원숙해져서 죽음과 융합하며, 회귀(回歸)의 사상에 젖어드는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그가 소녀적인, 혹은 감각적인 미의 추구로부터 토속적인, 한국인 특유의 정서를 파악, 체질화하고 있음을 말해주는데, 여기에는 세련된 문장력과 함경도 사투리의 효과적인 도입에 큰 힘을 얻고 있다.

 한국의 전통적 삶 의식 속에서 재혼한 과부가 다시 옛 시가로 복귀하며 겪는 격심한 정신적 갈등을 다루어, 삶의 내부에 숨은 모순을 여성수난의 심화된 주제로 드러내었다.

「갈가마귀 그 소리」는 작가 자신이 밝힌 단편소설 가운데 꼽은 그의 대표작이다. 이 소설의 특성을 홍기삼은 북방의 서민생활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고 고을댁과 그의 남편 되는 송 영감과의 아름다운 인간관계에 있어서 늙은 남편과 부인의 응석 섞인 사랑, 깊은 신뢰, 감각적인 사랑을 넘어서는 인간애, 이런 것들이 너무도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고 하였고, 이인복은 구수한 함경도 사투리 사용과 우리 민족의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혼령들이 다시 만나 사는 내세신앙의 근거가 대변되어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이 작품은 여성적인 경험에 대한 여성작가의 증언문학이라는 특성 속에 한국문학에 나타난 전통적인 여성상으로 희생ㆍ기원ㆍ사랑ㆍ한의 여성상을 묘파했으나 여성해방 논리에 의한 여성의 창조적 비전을 제시하는 데서 실패하였다. 3년 동안 빗도 대지 않고 물에다 머리를 감아 빗지도 않았던 한국여인의 죽은 남편에 대한 철저한 유교적 추모를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또한, 혼전 남편의 무덤가에 묻히겠다는 일념으로,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고 있는 현실적 삶을 냉정하게 계산도 없이 정리할 수 있는 전통적인 한국 여인상을 보여 준다.

 

 더운 지방인 고향 땅을 향해 날아간다는 갈까마귀의 울음소리에 이 소설은 제목에서 이미 고향회귀라는 인간본성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따라서 주인공 고을댁은 갈까마귀 우는 소리를 듣고 40여 년이나 송영감과 정답게 살던 만주땅을 떠나 고향을 찾게 된다. 물론 시댁의 양자가 정혼한 혼전 남편의 제사까지 지내다가 이제 노모까지 모시겠다고 수천리 길을 달려왔으니 여기에 대한 인간적 감격도 큰 것이었으나 늘 자신의 밑자락에 고인 고향회귀에의 강력한 소망이 그러한 동기를 시작으로 행동할 수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1970년에 「현대문학」에 발표된 이 소설은 초기작품은 소녀다운 예민한 감수성을 벗어나서 전통적인 한국여인의 한의 미학과 한국적인 결혼관, 도덕관이 그대로 나타난 가장 한국적인 소설의 하나이다. 때문에 새로운 여성상을 제시하지 못한 아쉬움을 남긴다. 그러나 한국여인의 투박한 삶에 대한 끈질긴 집념과 현실에 순응하는 심화된 인간상, 그리고 단절의 미학 속에 스스로 도덕적인 의리를 다시 일으킬 수 있는 서릿발 같은 단호함이 있다. 또한, 오늘날 다시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 노인문제를 부각함으로써 이 시대의 영악한 젊은 세대의 부조리한 실상을 여지없이 고발한 세태풍자성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