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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이효석 단편소설 『도시와 유령』

by 언덕에서 2023. 9. 5.

 

이효석 단편소설 『도시와 유령』

 

이효석(李孝石, 19071942)이 지은 단편소설로 1928년 [조선지광(朝鮮之光)] 7월호(통권 79호)에 발표되었고, 1931년 작자의 최초의 단편집 <노령근해(露領近海)>에 수록되었다. 학생시절 때부터 작품을 발표했던 이효석의 초기 작품은 유진오와 함께 프로 문학, 신경향파 문학에 동조적이며 그들 작가와 밀접하다는 면에서 동반작가의 면모가 나타난다. <노령근해>에 수록된 작품들은 그러한 경향의 대표 작품이다.

 「도시와 유령」은 이효석이 21세 때 발표한 작품으로 일인칭소설로 미장이인 ‘나’에 의하여 관찰된 현실의 단면을 제시하는 고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념적으로는 프롤레타리아를 부르짖으며 현실적으로는 부르주아적 생활을 지향하는 당대 인텔리 청년들의 분열된 성격을 추출해냄으로써 암울하고도 폐쇄된 어두운 시대에 일부 지식인들의 비극적인 방황과 몸부림을 확인할 수 있다. <노령근해>에 수록된 이외의 다른 작품과 함께, 한때 동반작가로서 이효석의 문학사적 위치를 밝히는 데 의의가 있는 작품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일정한 일터도 없는 뜨내기인 나는 매일 밤 일정한 거처도 없이 동대문 혹은 동묘 처마 밑에서 노숙을 한다. 어느 날 동료인 김서방과 술 한 잔을 한 뒤 동묘 처마 밑으로 자러 오나 이미 사람들이 차 있어 동묘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그곳에는 희미한 도깨비불과 산발한 노파가 있어 혼비백산을 하고 나온다.

 다음날 나는 도깨비의 정체를 확인하러 동묘 안으로 몽둥이를 들고 들어가 내리치려고 하다가 그들이 도깨비가 아니고 헐벗은 거지 모자임을 발견하게 된다. 노파는 달포 전에 어느 부자의 자동차에 치여 다리병신이 되어 구걸도 못하고 그곳에서 연명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부끄러운 마음에 있는 돈을 모두 털어주고 그곳을 빠져나오며 카프의 선전원처럼 외쳐댄다.

소설가 이효석(1907 &sim; 1942)

 

 주인공 나는 어느 날 밤 문명을 자랑하는 서울에서 유령을 목격하고 깜짝 놀란다. 도깨비장난 같은 유령의 출현에 반은 호기심에 유령의 진면모를 밝히기 위해 나서는데 함께 일하는 박 서방은 그런 유령이 밤이면 서울 시내 여러 곳에 나타나 시글시글하다며 의미심장한 말과 뜻있는 웃음을 보인다. 결국 유령의 정체를 밝혀내지만 그것은 쓰디쓴 도시의 전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을 알게 되면서 다시 한번 독자의 행동을 촉구하고 나선다.

 도깨비 같은 거지 모자의 밑바닥 인생을 충격적으로 제시하여 시민들의 빈곤 문제를 더욱 부각시킨다. 「도시와 유령」은 거지 모자의 참혹한 상황을 통해 일제 강점기 무산계급의 소외 현상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소설이다. 도깨비나 유령 같은 거지 모자를 바라보는 '나' 또한 노숙하며 사는 빈곤한 도시 근로자로서 다소 처지가 나은 또 다른 유령일 뿐이다. <메밀꽃 필 무렵>등 아름답고 세련된 문체로 일제 강점기 순수문학을 대표했던 이효석의 초기 경향문학적 성향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이념적으로는 프롤레타리아를 부르짖으면서 현실적으로는 부르주아적 생활을 지향하는 당대 인텔리 청년들의 분열된 성격을 추출해냄으로써 암울하고도 폐쇄된 어두운 시대에 일부 지식인들의 비극적인 방황과 몸부림을 확인할 수 있다.

 


  (전략) 어슴푸레한 저녁, 몇 리를 걸어도 사람의 그림자 하나 찾아볼 수 없는 무인지경 산골짝 비탈길, 여우의 밤이 다 되어버린 해골덩이가 똘똘 구르는 무덤 옆, 혹은 비가 축축이 뿌리는 버덩의 다 쓰러져가는 물레방앗간, 또 혹은 몇 백 년이나 묵은 듯한 우중충한 늪가!
 거기에 흔히 나타나는 유령이 적어도 문명의 도시인 서울에 오히려 꺼림 없이 나타나고 또 서울이 나날이 커가고 번창하여 가면 갈수록 유령도 거기에 정비례하여 점점 늘어가니 이게 무슨 뼈저린 현상이냐! 그리고 그 얼마나 비논리적 마술적 알지 못할 사실이냐! 맹랑하고도 기막힌 일이다. 두말할 것 없이 이런 비논리적 유령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 유령을 늘어가지 못하게 하고, 아니 근본적으로 생기지 못하게 할 것인가?
 현명한 독자여! 무엇을 주저하는가. 이 중하고도 큰 문제는 독자의 자각과 지혜와 힘을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 본문 82쪽 

 이 작품은 일인칭 형식을 취함으로써 보다 독자와 밀착된 관계를 노리면서 아울러 ‘나’의 일상생활의 일부를 고백함으로써 빈한한 근로자의 단면을 제시한다. 또한, 도깨비 같은 거지 모자의 밑바닥 인생을 충격적으로 제시하여 빈한의 문제를 더욱 가중시킨다. 작가는 무산대중이 소외된 사회의 병리를 첨예화함으로써 구세대적 기존 질서를 철저히 통박하고 독자로 하여금 새 질서를 위한 투쟁에 참여할 것을 역설한다. 따라서, 경향문학의 짙은 징후를 배태하고 있는 것으로서 이효석 문학의 초기 특징인 동반작가 시절의 작품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경향문학이 흔히 빠지기 쉬운 과잉 주제의식의 노출로 대체로 성공하지 못한 작품에 머무르고 만다. 세련된 문장과 문체를 인정하더라도 구성과 구조적 측면에서 미흡함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단편집 「노령근해」 :

 

 

 

1931년 동지사(同志社)에서 같은 제목으로 출간한 그의 첫 단편집에 「도시와 유령」·「기우(奇遇)」·「행진곡」·「추억」·「상륙」·「북국사신(北國私信)」·「북국점경(北國點景)」 등의 단편과 함께  8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었다.

  표제작 「노령근해」는 그의 초기 소설의 특징으로 불리는 동반작가(同伴作家)라는 명성과 결부되는, 하나의 대명사로 간주되기도 한다. 이 작품은 「상륙」과 「북국사신」과 함께 연작 형식을 취한 것으로 그의 초기 대표작으로 거론된다. 이 작품의 서술은 3인칭 전지적 시점에 의하여, 마지막 항구를 떠나 연해주에 있는 소비에트 러시아로 향하는 국제여객선을 배경으로 하여 각양각색의 인생축도를 조명한다. 

 의도적으로 설정된 일등 선실의 부르주아적 유산계급의 흥청댐과, 삼등 선실 프롤레타리아들의 밑바닥 인생과의 대조적 정황설정은 당대 삶의 축도를 상징적으로 묘사하려고 했다고 하더라도, 하나의 소설문학으로서의 성공 여부에는 상당한 의문의 여지가 있다. 특히,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톤(tone), 즉 소설 속에 등장하는 러시아인에 대한 영웅적 대접과 호의에 찬 묘사는 작가의 관념의 과잉 노출을 보여준다.

 일제의 압정으로 대다수의 민중들이 삶의 뿌리를 잃은 채 방황하고 신음하던 시대에, 때마침 지식인들 사이에 일기 시작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론은 비단 마르크스주의 노선에 심취된 자뿐 아니라, 조국의 광복을 지상의 목표로 여기고 있던 당대 여건으로 볼 때 상당히 절실한 현안문제로 부각되었을 가능성이 짙다.

 그러므로 예술보다도 이데올로기의 격앙된 주창을 높이 샀던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의 입장에서는 작품의 예술적 수준보다는, 그들의 행동강령이나 이념과 동궤(同軌)라고 생각한 이효석과 유진오를 동반작가라 칭하고 그들 편으로 묶으려는 저의를 가졌음을 확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