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어원
우리말에서 ‘우리’라는 말 한번 재미가 있다. 이건 홑셈(單數)으로도 쓰이고 겹셈(複數)으로도 쓰이는 낱말이기 때문이다. 또 겹셈으로 쓰일 때라 하더라도 여럿의 뜻을 갖는 ‘들’이라는 발가지(접미어)까지 달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금수강산이며’나 ‘우리들은 민주국가에 살고 있으며’ 따위는 분명히 겹셈 구실을 하는 것인데, ‘자네, 섰다 할 줄 아나?’ 하는 물음에 대해, ‘우린 그런 거 할 줄 모른다'로 되면, 이건 홑셈이다. 즉 '나'라는 뜻으로 '우리'가 쓰이고 있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우리 아버진 아주 인자하시지’ 할 때의 ‘우리’는 ‘나’라는 뜻과 그 겹셈으로서의 ‘우리’ 하는 뜻을 함께 가지고 있어서, ‘나의 아버지’라는 뜻과 ‘내 형제 모두의 아버지’라는 뜻까지를 곁들이고 있는 것이다.
‘들’이 붙는 것은, 이를테면 ‘너희’·‘저희’로써도 이미 겹셈인데 그 위에 다시 ‘들’을 붙여 ‘너희들’·‘저희들’ 하는 따위와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도 있는 일이지만, 홑셈·겹셈이 함께 쓰이는 ‘우리’야말로 어학 그것만으로는 설명하기 곤란한 낱말이라 아니할 수 없다.
여기 이르러서 우리는 우리의 씨족사회(氏族社會) 혹은 부족사회(部族社會) 시대의 한 편린을 엿볼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오늘날에도 역시 짐승을 가두어 두는 곳이 ‘우리’이며, ‘울’ 또는 ‘울타리’는 어떤 ‘바운더리’의 경계를 뜻해 주는 말로 쓰임을 보거니와, 그 ‘울’은 다른 패거리에 대해 이쪽의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족속이나, 동아리를 이르는 말로도 쓰이는 것이어서, ‘그는 울이 세다’고 하면 그를 봐줄 수 있는 동아리가 많아 든든하다는 뜻으로 되는 것이다.
한 국어학자는 이 ‘우리’를 따지자면, 광명이세(光明理世) 사상을 나타내는 ‘밝’으로까지 소급할 수 있는 것이어서 그것이 ‘부리’ → ‘우리’로 될 수 있는 것으로, 알 → 아리 → 오리 → 우리' 따위와도 같은 줄기라 했으나, 그런 어학적인 해석 위에 다시 우리 고대사회의 생활여건과 생활감정을 덧붙여 생각해야 활 것도 같다.
‘나’는 나로서 대표되는 것이 아니라, 씨족이나 부족 속의 ‘나’였다. 말하자면, ‘울’은 그 씨족이나 부족의 정신적인 경계선이며, 또 지주가 되는 것이었다. 그것이 동시에 ‘나’였다. 배타적ㆍ적대적 존재로서의 타(他)에 대하여 ‘울’은 어디까지나 ‘이쪽’ㆍ‘내편’ㆍ‘우리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이해관계와 생사관계를 함께 할 운명의 내편, 즉 나였다고 볼 수 있다. 전체 속의 나, 그 나는 동시에 전체를 이르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백제 초기의 국도(國都) 위례성을 ‘우리(울) 잣(기)’이라, 읽을 수 있는 것이고, 그 ‘우리’는 정다산(丁茶山)의 <강역고(疆域考)>에 의할 때 ‘돼지우리’ 하는 그 '우리'의 뜻이라는 것이며(우리처럼 둥그렇게 쌓았다 해서) 현대의 학자들은 역시 ‘알’이라는 말에서 출발된 '알 → 아리 →오리 → 우리'의 한 분맥이라 하기도 하거니와, 그는 어쨌든 ‘우리 잣(재)’은 나 또는 나를 포함한 ‘우리 동아리’와 함께 지켜야 할 터전 그것이 아니었겠는가?
이리저리 따져보니, ‘우리’라는 말은 우리 조상의 살내음을 가장 따뜻하고 밀접하게 풍겨주는 말이 되고 있는 느낌이다.
- 박갑천 : <어원수필(語源隨筆)>(19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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